캄보디아에서 온 전화 - 자수는 목표와 방향이 중요하다
새벽 무렵이었다.
캄보디아 번호로 시작되는 국제전화가 울렸고, 망설임 끝에 전화를 받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변호사님, 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말단 상담원이었다.
처음부터 범죄자일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돈이 필요했고, 해외라는 말에 혹했고, 돌아보니 이미 빠져나오기 어려운 구조 안에 들어와 있었다고.
캄보디아의 좁은 숙소에서 그는 매일 같은 불안 속에 살고 있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현지 경찰, 한국에서 내려졌을지도 모를 수배, 그리고 점점 무거워지는 죄책감.
그 전화는 도피의 끝에서 나온 구조 신호였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바로 귀국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자수는 결심보다 순서가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수를 ‘돌아가는 선택’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형사 절차에서 자수는 귀국 자체가 아니라, 귀국 이전에 이미 시작되어야 한다.
아무 준비 없이 입국했다가 공항에서 체포되는 순간, 그 선택은 자수가 아니라 단순 검거가 된다.
그 차이는 재판에서 생각보다 크게 작용한다.
그에게 가장 먼저 물은 것은 이것이었다.
어느 경찰서가 당신을 찾고 있을 것 같습니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게 정상이다. 해외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어디에서 수배됐는지를 아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건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을 따라간다
보이스피싱 사건은 흩어져 있지만, 수사는 한곳으로 모인다.
조직 범죄의 특성상 누군가는 먼저 잡히고, 그 사람을 중심으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다.
우리는 먼저 공범의 행방을 추적했다. 이미 국내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인물이 있었고, 그를 조사하던 경찰서가 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다.
만약 그 경찰서를 건너뛰고 다른 곳에 자수했다면, 사건은 다시 복잡해졌을 것이다.
서로 다른 판단, 엇갈린 정보, 그리고 불필요한 긴장.
자수의 효과는 그런 혼선 속에서 쉽게 사라진다.
관할이 정리되자, 우리는 자수서를 준비했다.
그가 한국 땅을 밟기 전, 이미 그의 이름과 선택은 수사관의 책상 위에 올라가 있었다.
조사는 태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귀국 후 조사에서 그는 모든 범행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겪은 구조를 설명해야 한다고.
누가 지시했고, 성과에 따라 어떤 보상이 있었고, 왜 빠져나오기 어려웠는지를 말해야 한다고.
그는 조직도를 그리듯 설명했다.
상선과 하선, 중간 관리자, 숫자로 매겨진 목표와 압박.
그 진술은 사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되었고, 수사는 그 지점에서 속도를 냈다.
재판에서 이런 협조는 ‘공적’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기록에 남는다.
피해 회복 앞에서 선택은 늘 부족하다
가장 어려운 단계는 피해자 문제였다.
피해자는 여러 명이었고, 모두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사과를 받아준 사람도 있었고, 연락조차 닿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몇몇은 끝까지 용서를 거부했다.
모든 피해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법원에 돈을 맡겼다.
용서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책임을 외면하지는 않았다는 최소한의 표시였다.
금액을 정하는 데에도 고민이 많았다.
이미 합의한 피해자들과의 균형, 사건 전체에서 차지하는 무게.
적어 보이면 변명이 되고, 과하면 형식이 된다.
그 경계에서 우리는 가장 조심스러운 선택을 했다.
판결은 한 문장이었지만
선고일, 법정은 조용했다.
검사가 요청한 형량은 무거웠다.
하지만 판결문에 적힌 문장은 그보다 훨씬 짧았다.
자수 경위, 수사 협조,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
그 문장들은 길지 않았지만, 그가 걸어온 선택의 순서를 정확히 담고 있었다.
그는 실형을 피하지는 못했다.
다만, 처음 그가 두려워했던 최악의 결과와는 다른 결론이었다.
법정을 나서며 그는 말했다.
“도망치던 시간보다,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수는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라는 것을 그 역시 알게 되었을 것이다.
※ 본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각색되었으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수정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법률사무소 어스에 문의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