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범, 집행유예 가능성, 집행유예의 실효까지
문을 열고 들어온 그는 한동안 서류봉투를 품에 안은 채 서 있었다. 눈빛은 이미 결론을 들은 사람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집행유예 중인데… 또 걸렸습니다.”
한 문장에 사건의 절반이 담겨 있었다. 보이스피싱 가담, 동종 전과,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유예기간. 그는 ‘이번엔 무조건 실형이냐’는 질문을 삼키듯 내게 건넸다.
나는 먼저 감정을 걷어내고 시간을 물었다.
“이전 판결 확정일이 언제였습니까. 형은 언제 끝났습니까. 이번 일은 정확히 언제입니까.”
사람들은 죄명을 먼저 말하지만, 나는 날짜부터 적는다. 형법 제35조, 제62조, 제63조. 이 조문들은 죄질보다 ‘시점’을 본다. 달력 위에 점을 찍어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동종전과가 있다는 건 맞습니다. 과거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사기 방조 전력. 보이스피싱 구조 안에서는 충분히 같은 계열로 평가됩니다. 양형에서 불리합니다. 다만, 동종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누범이 되는 건 아닙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누범은 금고 이상의 형 집행이 끝난 뒤 3년 이내에 다시 금고 이상 범죄를 저질렀을 때 성립합니다. 죄명이 같으냐는 핵심이 아닙니다. 기간이 핵심입니다.”
나는 그의 집행 종료일과 이번 범행 시점을 대조했다. 종이 위에서 3년의 경계선을 그었다. 다행히도, 그 선을 조금 넘겨 있었다.
“누범 가중은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왔다. 그러나 나는 곧바로 다음 문장을 이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집행유예 실효입니다.”
형법 제63조. 유예기간 중 고의로 범한 죄로 금고 이상의 ‘실형’이 확정되면 기존 집행유예는 당연히 효력을 잃는다. 동종인지 이종인지 묻지 않는다. 사기든 음주운전이든, 실형이면 자동이다. 재판부의 재량이 아니다.
그는 그제야 상황의 구조를 이해한 듯했다.
“그러면… 이번에 실형만 나오지 않으면 되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핵심은 거기입니다. 이번 사건을 벌금형이나, 최소한 다시 집행유예 범위 안으로 묶어야 합니다. 실형만 피하면 기존 유예는 유지됩니다.”
그는 자신이 단순 전달책이었다고 말했다. 조직의 윗선은 따로 있고, 자신은 지시에 따라 계좌를 전달했을 뿐이라고. 그러나 기록을 보면 단순 가담인지, 범행 구조를 인식했는지가 문제 된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몰랐습니까. 수익은 얼마를 받았습니까. 피해자에게 돌려준 금액은 있습니까.”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동종전과는 재범 위험성 판단을 강화한다. 여기에 피해 회복이 전혀 없다면 실형 가능성은 급격히 높아진다. 반대로 일부라도 변제가 이루어지고, 구체적인 상환 계획이 있다면 형량은 달라진다.
“반성문은 누구나 냅니다. 하지만 법원은 행동을 봅니다. 변제 내역, 차용증, 가족의 지원 계획, 재취업 자료. 이런 것들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전략을 세 단계로 정리해 주었다.
첫째, 구속을 막는다.
둘째, 실형을 피한다.
셋째, 동종 반복의 구조에서 벗어났다는 점을 자료로 설득한다.
그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물었다.
“그래도 전과가 세 번입니다. 판사가 믿어줄까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판사는 과거를 지우지 않습니다. 대신 앞으로 반복될지 멈출지를 봅니다. 누범은 기간으로 판단하고, 집행유예 실효는 실형 여부로 갈립니다. 그 경계선 위에서 우리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득해야 합니다.”
상담이 끝날 무렵, 그는 처음 들어올 때와는 다른 얼굴이었다. 여전히 두려움은 남아 있었지만, 막연함은 줄어들어 있었다.
법은 차갑지만, 구조는 명확하다.
동종전과는 무겁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자동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날짜를 정리하고, 요건을 따지고, 실형을 막기 위한 현실적인 자료를 쌓아가는 일. 그 사이에서 결과는 갈린다.
나는 늘 같은 말을 남긴다.
“이번 재판은 형량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을 끊어내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습니다.”
판결은 법정에서 내려지지만, 선택은 그 이전에 시작된다.
※ 본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각색되었으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수정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법률사무소 어스에 문의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