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영화광이다.
한 때는 영화감독을 꿈꿨다.
그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꿈이라는 건 대학을 입학하고 금방 깨우쳤지만 말이다.
그래도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는 극장에서 보려고 한다.
한 때 할리우드 키드를 꿈꿨던 아빠의 소박한 일탈이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는 그 일탈마저 허용되지 않았다.
코로나도 있었지만 지난 4년간 영화를 극장에서 본 적은 딱 한 번이다.
그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다.
그런데 하필 그날이 문제였다.
내가 영화를 보러 간 사이 아기는 열이 났고 응급실에 갔다.
아기 엄마한테 욕 한 바가니를 들었다.
진짜 기생충 한번 보려다가 기생충이 될 뻔했다.
그 뒤로 영화 이야기는 못 꺼내고 있다. 가끔 예고편은 찾아본다.
그런데 지난 주에 아기 엄마가 이제 아기랑 영화를 보러가도 되겠다고 말했다.
아기가 영상물을 꽤나 잘 본다고 했다.
아빠는 아기의 반응이 심히 궁금했다.
아빠 : 아기, 영화 볼 수 있어?
아기 : 응
아빠 : 어떤 건 볼까?
아기 : 공주
맞다.
엄마 말대로 극장에는 곧 갈거 같다. 코로나만 끝나면 말이다.
그리고 아마도 스케일이 큰 영화를 볼 것 같다.
다만 우리 아가 조건은 꽤나 까다롭다.
공룡이나 공주가 나오는 영화여야 한다.
그런데 마녀랑 육식공룡은 나와서는 안 된다.
우리 아기는 무섭다고 말하며 중간에 나가자고 할 것이다.
그래. 그렇게 시작하는 거다.
기억은 안나지만 아빠도 그랬을거다.
아빠는 꿈꾼다.
언젠가 아기도 할리우드 키드를 꿈꾸며
나와 함께 영화 이야기를 할 날을 말이다.
겨울왕국을 시작으로 나홀로 집에, 그리고 데이빗 핀처, 마틴 스콜세지까지......
아빠는 아기를 기다릴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아기와 눈 높이를 맞춰 공주에 집중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