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차_현재 관찰하기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쓸 때도 '그래도'라는 말을 자주 적는다. 그 뒤에는 대체로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적는다. 재미없고 기력 없는 어른이나 가질만한 냉소적인 시선과 그럼에도 허무주의에 지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애를 써보려는 안간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다 보니 그런 말을 자주 쓰게 된 것 같다. 이건 투입한 시간 대비 가성비가 좋지 않다. 그래도 재미있다. 그건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헛짓거리다. 그래도 세상에 쓰레기를 더하는 것만큼 나쁜 일은 아니다. 방금 전 판단은 좀 바보 같았다. 그래도 창피해서 죽을 정도는 아니다 등등.
정말로 세상의 좋은 점만 눈에 박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냉소적인 생각을 떠올리지도 않을 테니 '그래도'의 사용 빈도는 확연히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매하게 사회의 지저분한 모습을 인식하고, 반대로 또 그런 세상에서도 애매하게 적응하고 나니 항상 머릿속에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떠다닌다. 세상에는 진절머리 나는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이런 곳에서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고, 가치 있게 지니고 싶은 것이 있다. 그래서 부정을 말했다가 긍정을 말하면서 경계를 넘나든다.
'그래도'를 자주 쓰면 쓸수록 앞에 '그래도'를 붙이기 좋은 것들은 세상에 참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오늘 산책로를 걸으며 본 지저분한 길거리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이곳처럼 거칠고 울퉁불퉁한 길거리의 담벼락을 사진으로 찍은 뒤 멋지게 보정해서 포스터로 만든 어느 디자이너의 릴스 영상을 떠올릴 수는 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사진으로 찍을만한 광경이 없는지 눈여겨보며 길을 걸었다. 덕분에 오동통한 참새 열댓 마리가 작은 나무에 나란히 앉아 있는 귀여운 풍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버려진 가구 틈으로 들어가 편안하게 자리를 잡은 길고양이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설날 인사는 친구나 지인에게만 해도 별로 문제 될 건 없다. 그래도 어제는 낯선 사람에게 이메일을 보내면서 설날 인사도 덧붙였다. 나도 예전에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 새해 잘 보내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깜짝 놀라긴 했어도 굉장히 기뻤던 기억이 잊히질 않아서 그랬다.
그래도 이 세상을 아무런 의심 없이 그저 긍정할 날이 오긴 할까 싶다. 그래도를 많이 쓴다고 해서 해서 이 세상이 정말로 밝고, 행복하고, 친절이 넘치고, 사랑으로 뒤덮인 곳이라고 여기진 못하겠다. 비틀즈는 당신에게 필요한 건 오직 사랑이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예전부터 그 메시지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사랑이 너무 과대평가된 가치가 아닌지 늘 의문스러웠다.
그래도 이 세상에 대해 말할 때 항상 '그래도'를 덧붙일 수 있는 이유는 불만족과 불확실이 넘치는 세상 속에서도 가치 있는 것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모든 일에 불평만 늘어놓기에는 이미 우리 곁에는 소중한 것이 있다. 여태까지 어떻게든 꾸려온 삶이라든지, 너무 중독성이 강해서 머릿속에서 빠져나올 새가 없는 오래된 명곡이라든지, 심심할 때 언제든 나를 기꺼이 상대해 주는 인터넷이라든지.
앞으로도 '그래도'를 말하기 전에 일단 삐딱한 말부터 꺼내는 재미없는 냉소적인 어른으로 쭉 살아갈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뒤에는 항상 그럼에도 긍정하고 싶은 점 하나쯤은 찾아내는 관찰력을 계속 지켜나가고 싶다. 이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 좋아하고 싶은 것, 알아가고 싶은 것이 너무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