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차_현재 관찰하기
매일 감사 일기를 쓰곤 했다. 무슨 계기로 쓰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름난 자기 계발서 중 하나인 타이탄의 도구들을 읽은 게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타이탄의 도구들 외에도 그 시기에 읽었던 정말 많은 책들에서 감사일기를 써보라는 권유를 자주 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하루에 딱 3가지의 감사할 점을 매일 썼다. 대개 엇비슷한 감사할 점을 늘어놓을 때도 많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하루에 감사, 건강함에 감사, 해야 할 일 목록을 다 끝장내서 감사. 중복되는 감사함의 수가 날마다 계속 늘어날수록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었다. 늘 같은 환경, 같은 장소, 같은 일을 하더라도 어제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하루는 없다는 사실. 쩌렁쩌렁 자랑할 거리가 잔뜩 쌓인 하루만큼이나 별일 없는 조용한 하루에도 즐거움 한 가지는 찾을 수 있다는 사실도.
요즘은 감사 일기를 잘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소소한 일상에서 즐거운 점, 감사할 점, 고마운 점을 찾아냈던 지난날의 관찰력은 녹슬지 않은듯하다. 조용하고 조촐한 시간 속에서도 고마운 점 5가지를 금세 찾을 수 있었으니까.
조용한 산책로
'걷기로 해결 못할 문제는 없습니다'라는 문장을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걷기를 좋아했던 어느 철학자가 쓴 편지에서 발췌한 문장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 문장을 보게 된 이후로는 마음속에서 무언가를 털어내고 싶을 때면 일단 산책로를 향해 걷는다. 차도를 따라 약 10분 정도 걷다 보면 조금씩 주변의 소음은 사라지고 그 대신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산책로가 등장한다. 물가 주위를 맴도는 귀여운 새, 오리, 자라, 그리고 산책 나온 강아지를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걷게 된다. 소음은 없고, 재밌는 건 많은 이 장소를 알게 된 이후로 평온한 시간이 늘었다.
친절한 주변 사람들
작년부터 다이어리에 매달 주변 사람들로부터 주고받은 친절한 말을 기록해두기 시작했다. 연말에 이 기록을 들춰보면 일 년 동안 생각보다 훨씬 많은 친절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되는데, 그러면 생각지도 못한 연말 선물을 받은 것만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누군가에게 먼저 감정을 표현하는데 아직도 많은 연습이 필요한 것 같은데 그럼에도 내게 다채로운 감정을 전달해 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감사하기만 하다. 이들을 볼 때면 나도 좀 부끄럽더라도 진솔하게 감정을 표현하는데 인색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
자신이 맡은 일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자꾸만 움직이고 싶어진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어지고, 뭐라도 하고 싶어진다. 도전은 언제나 두렵고 막막할 거라는 생각은 이들 주위에 있다 보면 단번에 사라진다.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그리고 내가 엿볼 수 있을 거라고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던 길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이들이 있기에 나도 많은 걸 꿈꿀 수 있게 되었다.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다양한 콘텐츠들
작년에 도서관에서 빌렸던 책의 가격을 엑셀로 정리해 보았는데, 약 100만 원 상당의 합계가 나왔다. 도서관이 없었더라면 이 돈이 내 통장에서 빠져나갔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아찔해졌다. 도서관 없이 모든 책을 직접 사서 읽어야만 했다면 100만 원 상당의 도서에 접근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도서관 외에도 각종 강의, 강연, 오디오 등 지식을 전달해 주는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에 쉽게 접할 수 있음에 언제나 감사하다.
꽤 괜찮은 회복 탄력성
스포티파이에서 자주 들은 노래를 영수증으로 만들어주는 사이트에서 작년에 자주 들은 노래의 통계를 내었다. 그런데 최근 6개월 동안 들은 노래의 통계를 분석해 보니 노래의 행복도가 약 92점으로 나타났다.
이 정도로 상당한 행복을 귓가에 쏟아붓는 줄은 나도 몰랐다. 기분이 좋을 때와 마찬가지로 기분이 안 좋을 때도 신나고 흥겨운 노래를 듣는 취향이 이렇게 표현될 줄도 몰랐고 말이다.
아주 강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회복 탄력성을 지니는데 이런 취향이 영향을 주었다고 봐도 괜찮을까? 불만족스러운 기분 속으로 계속 파고들지 않고 다른 종류의 감정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