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1월 1주 차 기록
알고리즘 추천을 따르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이번 주에 우연히 보고, 듣고, 만든 것들을 기록합니다. 인터넷이 제공하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대신, 인터넷 밖에서 의외의 정보를 탐색하고, 나만의 목소리를 담은 창작자로서 살아보기 위한 작은 여정이 담겨있습니다.
지난 몇 주에 걸쳐 읽었던 도서 <덕후의 글쓰기>에 대한 독서 기록을 남겼습니다. 인상적이었던 문장을 스크랩하고, 그 문장을 통해 떠오른 생각을 짧게 남겼어요.
책 <덕후의 글쓰기>는 도서관 신간도서 코너에서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무언가에 푹 빠졌을 때의 심정을 그저 '좋다'는 막연한 감상 외에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에 발견한 책이어서 꼭 끝까지 읽어보고 싶었어요.
몇 주에 걸쳐 책을 천천히 다 읽은 후 페이지 곳곳에 붙여둔 인덱스를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인덱스가 붙어 있는 문장을 정리해 보니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건 내게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책에는 글쓰기에 대한 조언이 여럿 있었지만, 저는 책의 가장 초반에 등장하는 '좋아하는 마음을 언어화해 갈수록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한층 선명해집니다'라는 주장이 반복적으로 나온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단지 그 대상만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자산이 된다는 점이 무언가의 팬이 되는 것의 의미를 넓혀주었어요.
책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Q&A에서 나온 답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최애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나에 대한 이야기와 같으니 왜 하필 그 상대를, 그 존재를, 그 분야를 선택했는가 질문하는 부분에는 저도 책을 덮고 그 답변을 생각해보고 싶어 지더라고요. 제가 오랫동안 좋아했던 분야는 결국 제 삶을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는데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에요.
다만, 좋아하는 것이 내 삶을 어떻게 구성했는지와 같은 질문은 단번에 명확한 답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지 않습니다. 그래서 책에서 소개된 바와 같이, '좋다'라는 감상 외에 들었던 나의 감상을 부지런히 기록하고 공유하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 같아요.
말이 나온 김에 저의 최애를 소개하자면 제게 있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절대 질리지 않고 항상 좋아하기만 했던 분야는 바로 해외 록밴드의 음악입니다. 잔잔하고 슬픈 음악부터 시끄럽게 악을 쓰는 음악까지 가리지 않고 듣지만 선호도를 따지자면 시끄러운 쪽을 훨씬 좋아하긴 해요. 하지만 이런 취향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기란 왠지 부끄럽기도 했고, 정말 그런 분야를 좋아하는 게 맞는지 자격을 검증하려 드는 목소리에도 지쳐서 굳이 취향에 대해 먼저 말을 하지 않은 적도 있어요.
그래도 최애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곧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나의 감정을 신뢰하는 기반이 되어준다는 저자의 말을 믿고 앞으로는 좀 더 용기를 내보려고 합니다. 우선은 다이어리 한구석에 오늘 들었던 음악은 어떤 면에서 왜 좋았는지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서 시작해보고 싶네요.
지난해부터 블렌더라는 3D 소프트웨어를 통해 간단한 사물을 만드는 취미를 시작했습니다. 미술이나 창작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이에 대한 교육을 받은 경험이나 필요한 자원을 갖출만한 여유는 없다는 점이 전부터 항상 아쉬웠어요. 하지만 블렌더는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오픈소스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작년 하반기부터 이 프로그램을 배워가며 창작에 대한 열망을 조금씩 해소하고 있어요.
블렌더로 할 수 있는 작업은 정말 다양하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우선 귀엽고 맛있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관심을 쏟고 있어요. 아직 실력을 키워야 하는 초보이기도 하고, 거창한 작업을 할 만큼 좋은 사양의 기기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간단한 튜토리얼 가이드를 보며 프레첼을 만들어보았어요. 작업을 하는 중간중간 스크린샷을 찍은 뒤, 작업이 완료된 후에는 이 과정을 통해 배운 점이나 어려웠던 점을 노션에 정리하는 시간도 가져보았습니다.
블렌더를 통해 간단한 사물을 만들며 알게 된 중요한 점 중 하나는 단순히 물체를 만드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완벽하고 일관적인 모습 대신 자연스러움이 느껴지도록 일부러 불완전함을 더하는 과정도 필요하고, 어느 각도에서 조명을 비추어야 할지도 신경 써야 하고, 배경은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지, 카메라 구도는 어떻게 잡아야 할지도 하나하나 직접 정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 프레첼 하나를 만들기 위해 구글에서 프레첼을 검색해 다른 사람들은 어떤 구도, 어떤 배경으로 프레첼 사진을 찍었는지 일일이 들여다보았습니다. 어떤 사진 속 프레첼은 철망 위에 정렬되어 있었고, 어떤 프레첼은 탑처럼 쌓여 있었고, 어떤 프레첼은 체크무늬 보자기가 있는 바구니 안에 담겨 있고, 어떤 프레첼은 접시 한쪽에 노란 디핑 소스와 함께 올라와 있더라고요. 그중에서 저는 어떤 방식으로 배경을 만들지 고민하다가 일단 간단하게 나무 도마 위에 프레첼을 올려두기로 했습니다.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정말 많다는 점이 블렌더 공부의 난이도를 높이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유롭게 장면을 구성할 자유가 주어진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이 세상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나의 의도대로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일을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잖아요.
모든 것이 숨 가쁘게 빨라지는 세상에서, 아무리 단순한 사물이라도 이를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어떻게 그것을 배치할 것인지 시간을 쏟는 여유를 잠시라도 가져보니 세상이 밀치는 대로 밀려나지 않는 삶을 조금씩 구축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국 블렌더 공부를 좋아하는 이유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세상을 자세히 관찰하고, 이를 내 마음대로 표현할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제 막 기본적인 조작법을 배운 초보일 뿐이지만 그래도 이러한 이유 덕분에 공부가 마냥 어렵지만은 않고 즐겁기만 합니다.
이번 주에는 음악 앱에서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신곡을 듣는 대신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은 노래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일단 노래 제목만 알아둔 뒤, 저녁에 잠시 여유가 생길 때 다시 이 노래에 대해 검색해 보았는데요. 구소련 시대부터 활동한 러시아 록밴드의 곡이라는 걸 알고 놀랐습니다.
어쩐지 올드한 느낌이 드는 록 사운드가 제 취향에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로 오래된 밴드가 부른 곡인줄은 예상 못했네요.
쥐들은 쥐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었고, 그들에게는 전혀 나쁘지 않다. 쥐의 규칙대로 살면 신처럼 살 수 있다. 쥐들은 높은 곳이 유혹할지라도 다른 세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쥐들은 굴 속에서는 신이지만, 다른 세상에서는 쥐로 여겨진다.
전혀 알지 못하는 언어로 부른 노래이기 때문에 이 노래의 제목은 무엇이고 어떤 내용을 담은 가사인지 정말 궁금했는데요. 생각보다 비판적인 내용이 담겨 있어서 흥미로웠어요.
노래 제목이자 이 가사의 주제가 되는 '쥐들'은 듣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될 텐데, 어쩌면 밴드의 의도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가사를 보고 쳇바퀴 위에 오른 관성적인 삶이 떠올랐습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익숙한 분야에서, 늘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늘 같은 이야기만 하면 사람은 고이기 마련이고, 어쩌면 그 고인 자리에서는 쥐구멍에서나 나올 법한 견딜 수 없는 악취가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저도 이미 익숙하고 능숙한 일을 하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즐거움보다는 긴장이 좀 더 앞서는 편이기 때문이라 그런지 점차 쥐구멍 속에서만 신이나 다름없는 쥐가 되면 어쩌나 고민스러워졌습니다.
결국 쥐구멍에서 벗어날 방법은 괜히 거부감이 생기고, 괜히 어렵고 낯설게만 느껴지고, 괜히 이해가 안 되는 분야일수록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용기를 갖는 것뿐이겠지요? 익숙한 자리에서 내려오는 건 두렵고 창피한 일이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래도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간직해야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이끌어준 가사였습니다.
https://youtu.be/x2gIkmFRJ3w?si=jVbxSpPm2LW-ck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