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3부 인생은 짧지만 잘살아낸 삶의 기억은 영원하다.
안목
79. 유머를 사용하면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쾌활하고 재밌는 성격. 과하지 않다면, 이것은 단점이 아닌 뛰어난 장점이다. 약간의 재치는 모든 면에서 적절할 양념이 된다. 가장 위대한 사람들도 유머를 구사해 많은 사람의 호의를 얻으며, 그들은 늘 지혜롭고 예의를 지킨다.
아픈 사람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통화하면 상대는 마음이 불편해 빨리 전화를 끊고 싶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밝게 이야기한다. 가끔 지인들에게 전화가 오는데, 한 통화를 끝내면 또 다른 지인이 전화를 건다. 그때마다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주 씩씩하게 말하네. 다행이다.”
그러면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목은 하나도 안 아파요.”
그럼 상대방이 웃으며 말한다.
“오, 그 상황에서도 긍정적이네!”
그 말을 들으면 나도 따라 웃는다. 웃을 일이 거의 없는 나지만, 그 순간만큼은 기분이 좋아진다. 잠시나마 다리 통증, 손가락·발가락 통증도 잊는다. 사실 아프다는 소리를 해도 그 고통을 똑같이 느껴본 사람은 없다. 그리고, 대신 아파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굳이 죽을 것처럼 힘든 목소리를 낼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이렇게 씩씩하게 굴다 보니, 엄마는 착각을 한다. 암에 걸린 딸이 아니라 건강한 딸이라고. 내가 아프다는 소리를 안 하고 겉으로도 멀쩡해 보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엄마는 나에게 양말을 신겨 달라고 하고, 벗겨 달라고도 한다. 선풍기 바람을 조절해 달라고, 물을 가져다 달라고, 간식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한다. 무릎을 꿇는 것도 힘든 몸인데, 엄마가 더 힘들어 보여서 그냥 다 해 준다.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고 약도 발라드린다. 요양사나 다른 형제들에게는 차마 못 하는 부탁도 나한테는 스스럼없이 한다. 그러다 보니 가끔 이런 말을 하게 된다.
“내가 엄마 심부름꾼이야?”
그러면 엄마는 태연하게 말한다.
“너도 움직여야 기운 나지.”
엄마 말이 얄미워서 웃음이 나다가도, 또 웃고 만다. 아픈 딸이지만 하루 종일 엄마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좋다. 엄마도 나와 같은 마음일 거다.
우리의 일상은 거창하지 않다. 그냥 소소하다. 놀이터에 다녀온 엄마는 할머니들과 나눈 이야기를 전해준다. 누가 고양이 집을 지었는지, 누가 음료수를 사줬는지, 혹은 말다툼 끝에 머리채를 잡은 이야기까지. 엄마는 늘 들려줄 이야기가 많다.
“사람들이 나보고 말 참 잘한다고 칭찬했어.”
엄마가 자랑하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그 자리 뜨면 바로 욕하는 거 알지?”
엄마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한다.
“설마, 그럴 리가?”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한다.
“뒤에서 욕하는 거, 얼마나 재밌는데!”
엄마는 한 박자 늦게 웃고, 나도 따라 웃는다.
그렇게 우리는 유머로 하루를 버틴다. 웃음이 잠시 고통을 잊게 해주고, 우리 모녀의 하루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