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5부 지혜는 내면의 절제에서 나온다.
내면
158.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원래 적다.
오늘 아침, 우연히 읽은 구절이 있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원래 적다. 친구들을 이용할 줄 알라. 그러려면 잘 분별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어떤 친구는 멀리 있는 게 좋고, 어떤 친구는 가까이 있는 게 좋다. 그리고 어떤 친구는 대화 상대로는 별로지만, 편지를 주고받기에는 좋다. 멀리 있으면 가까이 있을 때 참을 수 없는 결점들이 가려진다. 우정은 불행을 막는 유일한 해결책이자 영혼의 휴식이다.
분리수거 하는 날이다. 일주일 지났는데 버릴 쓰레기는 항상 가득하다. 일반 쓰레기까지 버리고 집안을 둘러보았다. 버렸는데도 정돈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를 옷걸이에 걸어서 정리해본다. 조금은 정리가 되어 보인다. 집 정리를 하고 나니 머리가 아파온다.
엄마 목욕을 시켜드리고 잠시 쉬어야겠다. 엄마에게 "목욕을 해야지?"라고 말을 했다. 힘든데 뭘 하냐며 내일 요양사님에게 부탁한다고 말한다.
둘째언니가 주말에 와서 엄마 목욕을 도와주었는데, 초등학교 동창회에 갔기 때문에 이번 주에 못 왔다. "엄마, 힘들어도 몸이 개운한 게 좋지, 어서 준비해요."라고 하니 또 운동하는 것도 아닌데 뭘 하라고 하냐며 움직이지 않는다. 이럴 때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다시 설득해서 목욕을 시켜드렸다.
잠시 욕실에 혼자 있는 시간에 엄마는 머리를 감았다고 말했다. 어떤 걸로 했냐고 물어보니 바디워시로 머리를 감았다고 한다. 다시 샴푸로 머리를 감겨드렸다. 비눗칠을 하고 행궈드리고, 바디로션을 듬뿍 발라드리고, 옷을 입혀드린다. 워커를 이용해 밖으로 나온 뒤 발에 약을 발라드렸다. 시원해 보이는 엄마를 보니 기분이 좋다.
내 몸은 곧장 침대로 가서 누워야 할 판이다. 세탁기에서 빨래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세탁이 끝나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 있으니 바람을 좀 쐬고 오면 머리가 맑아질 것 같다. 외투를 입고 나갈 준비를 한다. 금방 또 버려야 할 것이 쌓여 들고 나간다.
버릴 것을 다 버리고 집에서 해방되었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났다. 걷는데 무릎이 아프다. 그래도 맑고 파란 하늘을 보고 걸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시장을 지나 공원으로 걷기 시작한다. 제법 사람들이 공원으로 향한다. 남녀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사람, 여자 둘, 셋이 걸어가는 사람들, 운동복을 입고 뛰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혼자 걷는데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싶다. 고등학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학교 친구한테 걸어볼까? 암 친구한테 걸어볼까? 고민하다가 그만 생각을 접었다. 주말이고 가족들이 같이 있을 수 있을 거야,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내가 공허하다고 해도, 좋은 친구가 있다고 생각해도 쉽게 연락을 하게 되지 않는다. 뭔가 도와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민폐일까 봐 더 적극적인 연락을 할 수가 없다. 조금은 움츠러든다.
지나치는 카페를 들여다본다. 둘, 셋이 웃으며 좋은 시간을 보내는 듯하다. 그 속에서 혼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본다. 핸드폰을 보다가 잠시 졸기도 하는. 아침부터 피곤했던 내 몸이 조금은 안쓰럽다. 그곳에서 30분 정도 있으려니 저녁밥이 걱정이다. 다시 일어나 집을 향해 걷는다.
암 친구한테 전화가 온다. 콧속, 입 주변이 모두 헐었다고 말했다. 독성 항암제의 부작용이다. 약을 바르고 있지만,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담담히 친구는 뼈에도 암세포가 더 늘어났고, 간이 제대로 안 보일 정도라고 말한다. 지금 이 상태를 항암을 하면서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암세포야 연정이의 몸에서 사라져라."라고 말을 하니 깔깔 웃는다. "연정아, 우리 하루만 잘 살았음에 감사하자! 그리고 생각은 우리가 선택하는 거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라고 말을 했다. 친구는 그래야지, 라고 말을 한다. 친구는 나에게 제발 호중구 수치가 좋아져서 항암을 받을 수 있는 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장 아플 때 서로에게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행복하다. 죽어서는 아프지 않고, 우린 만날 것이다.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