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5부 지혜는 내면의 절제에서 나온다.
내면
162. 상대의 성공을 품어 자신의 독으로 만들어라.
경쟁자와 악인을 상대하는 가장 지혜로운 방식은 그들을 경멸하거나 비난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정중하게 대하고, 그들이 가진 장점에서 배움을 얻어 자신의 힘으로 바꾸는 데 있다. 누군가가 나를 비방할 때조차 그에 대해 좋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우아한 복수도 없다. 그리고 자신의 내공으로 이룬 성취만큼 확실하게 상대를 넘어서는 복수도 없다.
사회복지를 공부하기 시작한 뒤, 나는 교수님들의 성향과 강의 방식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사례를 곁들여 2차·3차 해설을 이어가는 교수님들을 보며 ‘가르침’이라는 일이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평생교육원 강단에 선 교수님들 역시 늦은 나이에 학업을 시작해 석·박사 과정을 마친 분들이다. “지금도 공부 중입니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새로운 강좌와 변화된 자격 기준에 맞춰 꾸준히 학습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큰 가르침이었다.
회사가 희망퇴직을 요구했던 시기, 나는 불안과 고민 속에서 ‘이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계속했다. 인사 발령을 받아 들였을 때는 이미 마음속이 복잡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오랜 시간 쌓았다고 믿었던 노력이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는 듯한 허탈감. 전혀 다른 직무, 낯선 지역으로의 발령은 내가 쌓아 온 경력과 마음을 무자비하게 뒤흔들었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자 씁쓸함이 더 컸다.
이후 6개월을 버티고 큰 수술을 앞두면서 결국 병가를 냈다. 그 시간이 오히려 나에게 자신을 들여다볼 여유를 주었다. 수술과 회복, 그리고 요양보호사·사회복지사 공부로 이어진 시간은 이전과 전혀 다른 길을 열어 주었다. 가정과 회사를 떠나 학교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지식을 접하면서 ‘공부하길 참 잘했다’라는 결론에 닿았다. 돌아보면 내 삶에서는 늘 배움이 가장 확실한 길이었다.
강당에서 강의하는 교수님들의 모습은 늘 내게 감동을 준다. 일흔이 넘은 주임교수님은 여전히 새로운 강의를 고민하고 연구한다. 다른 교수님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지식을 업데이트하기 위해 인강을 듣고, 제도 변화에 맞춰 또 다른 공부를 이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나에게 배움의 본보기가 된다. 나이가 들수록 배움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힘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오십 중반이 되니 사회복지 공부의 필요성이 더욱 분명해졌다. 사회복지는 특정 집단만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나와 가족, 이웃, 공동체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는 도구다. 전 연령대의 삶을 이해하고 지원할 수 있는 시각을 열어 주는 공부이기에, 결국은 ‘나의 복지’를 위한 공부라고도 할 수 있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어느덧 졸업을 일주일 앞두고 있다. 이 과정이 없었다면 자녀와 전 남편, 아픈 친정엄마, 형제를 깊이 이해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 배우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들’을 보며,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들의 열정은 나에게 건강한 자극이 되고, 배움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제 사회복지 분야에서 더 공부해 보고 싶고, 면접을 준비하는 중이다. 공부의 결이 더해진다면 언젠가 내 삶이 들려준 이야기들을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고 싶다.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면, 그 또한 나의 복지가 될 것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비슷한 아픔과 고비를 겪는다. 나이 들어 알게 된 사실 하나는 ‘나는 아닐 거야’라는 말만큼 허망한 착각이 없다는 것이다. 삶의 힘든 때를 피할 수 없다면, 그 시간을 버티게 해 주는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이 없다면 고통은 배가된다. 그래서 나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내 가족과 이웃이 조금 더 편안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마음 하나로 더 열심히 배우는 길을 선택한다. 배움은 경쟁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방식이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꾸준한 훈련이다.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 진실이다. 그리고 나는 그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