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5부 지혜는 내면의 절제에서 나온다.
내면
167. 작은 어려움부터 스스로 감당한다면 자기 운명까지 다스릴 수 있다.
큰 위기를 마주했을 때 가장 든든한 동반자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다. 그러나 그 마음마저 약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주저하지 않고 주변의 손을 빌려야 한다. 스스로 극복할 줄 알면 조바심이 줄고, 운명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지 못하면 인생은 금세 감당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 버린다.
새벽 4시 30분.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투덜거리는 친정엄마의 목소리로 오늘이 시작됐다. 병원에 가야 하는 날이라 서둘러 아침을 차려놓았다. 국, 양배추, 사과, 생강차, 물, 밥. 식탁 위에 조용히 한 줄로 놓여 있는 음식들이 새벽 공기만큼 차분하다.
진료는 오전 9시. 두 시간 전에 채혈을 해야 하니 밥을 먹고 갈지, 빈속으로 갈지 고민이 되었다.
“새벽이라도 먹고 가야지.”
엄마는 단호했다. 결국 착한 딸답게 국물에 밥 한 숟가락을 떨어뜨려 꼭꼭 씹었다. 다 먹고 난 뒤 물 한 컵까지 마셨다. 그러자 엄마는 안심이 되었는지 간식까지 챙겨가라고 한다. 나는 또 순순히 음료와 귤, 물, 좋아하는 과자 하나까지 넣어 가방을 채웠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아이가 까치집이 된 머릴 올리며 “병원 가요?” 하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자기가 모셔다 드리겠다고 말한다.
엄마는 “그럼 너무 편안하게 가겠네.” 하며 웃었다.
아이가 운전하는 게 조금 걱정됐지만, 긴 길을 함께 가주겠다는 마음이 고마웠다. 나는 길 안내를 하면서도 계속 실수를 반복했다. 네비가 있는데도 자꾸 잘못 말하는 바람에 나 스스로도 민망했다. 그래도 아이는 차분했다. 그렇게 운전하는 모습을 보니, ‘나 닮지 않았네’라는 생각이 스쳤다.
병원에 거의 도착할 즈음, 머리가 심하게 아파왔다. 진료에 대한 스트레스와 오랜만의 장거리 이동 탓인지 멀미가 났다. 조금 전 먹었던 음식이 소화되지 않고 그대로 머무는 듯했다. 속이 뒤집히고, 가스가 차오르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겨우 병원 주차장에 도착해 채혈실로 향했다.
파랑 5007번.
오전 6시 30분인데도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자리에 앉자 직원이 성함과 생년월일을 확인했다. 혈관은 이미 몇 번이고 멍이 들어 채혈이 부담스러웠다. 수많은 환자를 상대하는 간호사들의 기계적인 동작도 이해되지만, 그날은 유독 거칠게 느껴졌다. 주사바늘이 들어갈 때 작은 통증이 있었고, 다시 찌르는 순간에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팠다. 내가 놀라 아프다고 말하자, “그럴 수도 있어요.” 하는 퉁명스러운 말이 돌아왔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지금까지 채혈받은 날 중 가장 서툰 손길이었다.
5분간 지혈을 하고 나오는데 머리가 더 지끈거렸다. 토할 것 같았다.
외투도 입지 않고 곧장 밖으로 나왔다.
‘어떻게 하면 이 답답한 가슴이 조금이라도 풀릴까?’
그 생각만 들었다. 몸이 정상이 아니라서인지 추운 줄도 몰랐다. 바람이 덜 부는 곳을 찾아 천천히 걸었다. 건너편 나무 위에 빈 까치집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혹시 먹이를 찾으러 나갔을까?
발걸음을 짧게도 해 보고, 길게도 해 보고, 100보 정도 걸어도 보고, 총총 뛰어 보기도 했다. 답답함 때문에 마스크도 벗어 보았다.
아이는 지하에서 나올까 싶어 그 근처를 지키고 있었다.
조금 지나니 답답함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곳에 오기 전, 나는 ‘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움직여보니 몸은 달랐다. 천천히라도 뛰어졌다.
나는 정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왕복으로 오가며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오디오북을 들으며 심호흡을 크게, 또 작게 해 보았다. 40분 정도 지나자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병원이라는 공간이 주는 무게감 속에서,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보니 조금씩 가벼워졌다.
결국 알게 되었다.
뛰지 못하게 막았던 것은 내 몸이 아니라, 내 생각이었다는 것을.
이제 상쾌해진 마음과 몸으로 다시 진료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