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5부 지혜는 내면의 절제에서 나온다.
내면
166. 말만 하는 사람은 바람과 같이 허무하다.
말만 앞세우는 사람은 바람과도 같다. 스쳐 지나가는 소리만 요란할 뿐, 손에 남는 실체가 없다. 그래서 나는 말과 행동을 분별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나무는 결국 속이 비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열매를 주고, 어떤 사람은 그늘만 제공한다. 그 차이를 알아보는 눈은 살아가며 반드시 갖춰야 할 지혜다.
며칠 전, 정장으로 멋을 낸 일흔셋의 지인과 점심을 함께 했다. 그는 늘 말이 많고, 자주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시간을 가져 보자며 다른 지인들까지 합쳐 다섯 명이 식당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자 설렁탕 네 그릇과 오징어볶음밥 하나를 주문했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오늘은 다 같이 먹자.” 그는 늘 이런 식이었다. 말은 언제나 ‘함께’를 향했지만, 정작 그 말이 실제 행동과 닿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오징어볶음을 주문한 사람에게 미역국이 나오자, 그는 직원에게 미역국 하나를 더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직원은 “안 됩니다”라며 웃어 넘겼다. 그런데 잠시 뒤, 직원은 결국 미역국 한 그릇을 더 가져왔다. 그는 한 숟가락 뜨자마자 얼굴을 찌푸리며 휴지통을 찾았다. “이건 도저히 먹을 수 없네.” 주위에서 그냥 두면 직원이 정리할 거라고 말해도, 그는 계속 두리번거리며 투덜댔다.
“미역국이 어떻게 끓여도 맛없기 힘든 음식인데, 이렇게 맛없는 건 처음이네.”
그의 말은 불편할 정도로 거칠고 가벼웠다.
반찬 세 가지가 차례로 놓였을 때, 그는 오늘 상가집에 들러야 한다고 말했다. 누군가 “평소보다 더 차려입으셨네요”라고 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는 원래 이렇게 다녀. 오늘이 특별한 건 아니야.” 더 멋지다는 칭찬이 이어지자 그는 흐뭇한 얼굴로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그러다 갑자기 눈이 커졌다.
“앗, 오늘이 발인이네?”
그는 혼잣말을 하며 당황했다. 장례식장이 노원인데 이미 발인이 시작됐을 시간이니, “집안에서 서운해하겠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스피커폰으로.
“지금 병원에 왔는데 아무도 없네.”
전화기 너머에서 대답이 들렸다.
“형님, 지금 선산에 와 있어요.”
당황을 숨기려는 기색도 없이 그는 상주를 바꿔 달라고 했다.
“지금은 작업 중이라 어렵습니다.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통화가 끝났다.
설렁탕을 먹던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방금까지 보여 준 그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는 실수한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거짓으로 상황을 꾸몄다. 장례식장에 ‘갔던 것’처럼, 자신은 성의를 다한 사람처럼. 어색한 연기였지만, 그는 그것을 전혀 창피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한 일처럼 행동했다. 나이가 들면 마음도 더 단단해지고, 말과 행동도 깊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와는 달랐다.
그의 말은 언제나 크다. 자신이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이야기, 고향에서 인기스타처럼 대접받는다는 이야기, 친척들이 자신을 얼마나 존중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런 말들은 늘 화려하지만, 정작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진 그의 행동은 그 화려한 이야기들의 무게를 모두 가볍게 만들어 버렸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묘한 충격을 받았다.
‘연륜이란 이런 연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인가?’
‘나이가 들면 자신의 실수를 이렇게 모면해도 되는 것인가?’
‘이것을 스스로 선의의 거짓말이라 부르는 걸까?’
나는 그가 나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체면이 있고, 자리에서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감추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말만 하는 사람’과 ‘행동하는 사람’의 차이를 분명히 보고 있었다. 말은 끝없이 높이 쌓을 수 있다. 하지만 행동은 그 사람의 바닥과 깊이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의 행동을 보고 난 후, 나는 오히려 내 삶을 돌아보게 됐다. 나 역시 말로만 떠들며 행동은 뒤따르지 않는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남을 평가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이가 든다는 것은 체면을 지키기 위해 거짓을 덧바르는 일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담담히 인정하는 용기가 쌓이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격은 나이를 먹는다고 자연스레 높아지지 않는다. 스스로를 다듬고, 작은 행동 하나에도 책임을 지려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격이 생긴다. 나는 그날의 풍경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바람처럼 흩어지는 말 앞에서,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떤 나무는 잎만 무성하고, 어떤 나무는 열매를 준다. 그 차이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내가 살아가며 배워야 할 또 하나의 지혜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