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길을 찾기 위해 존재한다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6부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있다.

평정심


212. 자기 바닥을 드러내지 말라


늘 최신 기술의 기밀을 유지하라. 이것은 위대한 스승들의 말인데. 그들은 가르칠 대도 이런 기술을 적용한다. 늘 뛰어난 상태를 유지하면서 스승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단 한 번의 로그인 앞에서, 3일 동안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금융기관 로그인을 위해 PC와 씨름했다. 안내 매뉴얼대로 범용인증서를 만들고,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본인 인증을 수십 번 반복했다. 화면은 늘 같은 자리에서 멈췄다.


‘왜 이걸 못할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쉽게 한다는 걸까. 편리하다고 안내된 서비스 앞에서,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문제는 시스템에 있다고, 금융기관이 형편없다고, PC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3일이 흘렀고, 그동안 다른 일정까지 흐트러졌다. 짜증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고객센터에 전화할까 수없이 망설이다가, 결국 지점 방문을 선택했다. 직접 가서 물어보는 게 가장 확실하다는 조언 때문이었다. 여의도에만 있을 줄 알았던 지점이 오목교에도 있어 다행이었다. 생각보다 한산한 상담실에서 65번 순서를 기다렸다.

상담석에 앉아 인증서 로그인이 안 된다며 ID 로그인 방법을 물었지만, 반드시 인증서 로그인을 해야 한다는 답만 돌아왔다. PC 문제는 자신도 알 수 없다며 원격 지원 콜센터로 연락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혹시 몰라 보안카드를 받아 나오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아, 전화를 먼저 해볼걸.’


집에 도착하자마자 PC 전원을 켜고 고객센터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고 상담원과 연결되었다. 원격으로 확인해 주겠다는 말에, 그제야 마음이 조금 풀렸다. 그리고 금세 원인이 밝혀졌다.

공인인증서 발행기관을 ‘타기관’으로 선택해 놓았던 것이다. 앱에서 급히 다운받아 자세히 살피지 않은 채 발급했고, 그 작은 선택 하나가 모든 과정을 막아 세우고 있었다. 며칠 동안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었던 셈이다.

문제가 생기면, 늘 자신이 아닌 다른 것에서 원인을 찾게 된다. 시스템, 기계, 환경. 정작 선택과 과정을 다시 들여다볼 여유는 없다. 3일 동안 ‘문제 해결’보다 ‘불편함에 대한 분노’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문제 앞에서 먼저 가져야 할 것은 조급함이 아니라 차분함이라는 걸 배운다.

조금 멈추어 바라보고, 다시 시도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 문제는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시키기 위해 찾아온다. 가고자 하고, 믿는다면, 시간이 걸릴지라도 길은 결국 열린다.

무엇보다, 혼자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는 반드시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문제가 풀리고 나니, 꽉 막혀 있던 체증이 한순간에 내려가는 듯하다. 그리고 알게 된다.

붙잡고 있던 것은 로그인 화면이 아니라,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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