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쓴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6부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있다.


평정심


218. 격에 맞지 않는 고집을 부리면 옳은 일을 할 수 없다.

고집이 아니라 신중함으로 움직여야 한다. 모든 고집은 종양처럼 귀찮고 골치 아픈 요소이며, 정념의 손주다. 고집이 앞서면 판단은 흐려지고, 결국 옳은 일에서 멀어진다. 사소한 일마다 분쟁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관계에서 늘 이기려 들고, 평화를 선택하는 법을 모른다. 그런 태도는 스스로를 불한당의 자리에 세운다.

휴대전화 화면에 OO사이버대학 번호가 뜬다. ‘뭔가 잘못됐나?’ 걱정이 먼저 앞선다. 학점은행제 서류 누락 소식을 듣고 얼마 전 빠른 등기로 보냈다. 포스트잇으로 메모까지 해 두었지만 별다른 연락은 없었다. 3월 말이면 자격증이 나온다. 그때까지만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항암 중에도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학습을 마쳤다. 자격증 신청서를 제출하며 학교 측의 공지 미흡과 반복된 방문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신청 기간임에도 별다른 안내가 없었고, 방문했을 때 돌아온 표정은 “왜 왔느냐”에 가까웠다. 담당자는 이틀 휴가라 서류를 받아둘 수 없다며 다시 오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세 번을 오가야 한다.

아픔을 잠시 잊게 해 주었던 소중한 학습의 시간. 그 결과물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평생교육사 2급 자격증은 활용도가 높다고들 하지만, 실제로는 반반이다. 평생교육학 전공이지만 직장생활로 실습을 마치지 못했고, 휴직 기간에 겨우 마무리했다. 스스로를 토닥였다. 다시 전화가 온다. 오늘 평생교육진흥원에 등록하며 ‘부적합’을 발견했다는 말이다. 선택과목이 기준에 맞지 않아 자격증 발급이 어려울 수 있다고 한다. 등록 마감은 내일인데, 왜 오늘에서야 이야기하는지 의문이 남는다. 대답은 해야 한다. “일단 등록해 주세요. 평생교육진흥원에 직접 알아보겠습니다.” 일 년에 네 번 신청할 수 있으니, 보완 후 2차 신청을 하면 될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담당자는 ‘부적격’을 강조하며 책임을 학생 쪽으로 돌렸다. 예상치 못한 말에 마음이 급격히 가라앉는다.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없는 시기다. 누구의 잘못인가. 알아볼 기회조차 주지 않는 방식은 무엇인가.


AI로 검색해 본다. 선택과목명을 입력하니 ‘가능하다’는 답이 나온다. 누구 말이 맞을까. 불합격일 경우 서류는 돌려받을 수 없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다시 신청할 수도 없다. 시간, 비용, 노력 모두 사라진다. 쉽게 얻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과정 역시 쉽지 않았다. 더 힘들었던 기억도 있다. 졸업한 학교에 자격증 발급 신청을 요청했을 때다. 담당자는 여러 차례 평생교육사 자격증 발급을 도와주지 않았다. 누락 사항을 말할 때마다 시간에 쫓기고 신경은 곤두섰다. 마무리되었다 싶을 즈음, 다시 전화가 왔다. 또다시 ‘부적격’이라는 단어가 앞선다. 심리적으로 혼란이 커진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이렇게까지 거쳐서 무엇을 느껴야 하는 걸까.’ 곧이어 ‘내려놓자’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자격증을 받아도 기쁘지 않을 것 같다. 길은 많다. 더 이상 꼬이는 시간을 만들지 말자. 간절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수없이 봐 왔다. 그중 하나가 더해진 것뿐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가벼워지는 방향으로 흘려보내기로 한다.


두 달 동안 인간을 공부했다. 대학 행정의 방식, 다양한 피드백을 통해 살아오며 세워온 기준을 돌아본다. 상대의 성실도가 또렷해지는 순간들도 있었다. 이 과정은 삶의 순리 안에 속하지 않는 모양이다. 힘들었지만 평생교육사 자격증이 없어도 괜찮다. 맞는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다면 충분하다. 지금 당장 큰 문제도 없고, 앞으로 치명적인 변수도 아니다. 아쉬워할 이유는 없다. 기관의 기준과 경로에 맞춰 준비했고, 알아봤고, 노력했다. 그걸로 마무리하면 된다. 학교 직원들에게 느꼈던 서운함도 멀리 보낸다. 마음의 평정심을 위해서다.

자격증은 죽을 때 가져가는 것도 아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공부하며 지낸다. 주식 공부로 알게 된 친구가 찾아왔다. 오후 한 시부터 HTS 화면을 들여다보며 메뉴 하나라도 더 익히려 애썼다. 저녁 일곱 시까지 이어진 집중. 얻은 정보는 많지 않았지만, 서로 아는 것을 나누며 웃고 들떴다. 앞으로는 기쁘게 살자. 에너지를 다른 데 쓰지 말자. 일정 기간 애썼다면, 그 자체로 의미를 두자. 이런 이야기를 건넸을 때 아들이 고개를 끄덕여 준다. 그 반응 하나로 충분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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