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6부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있다.
평정심
219. 당신의 교활함을 현명함으로 바꾸다.
교활함을 들키지 말라. 비록 그런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지만 말이다. 솔직한 사람은 사랑받지만, 속을 때도 많다. 교활해서 남들이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현명해서 남들이 존경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다짐은 사람뿐 아니라 돈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퇴직연금을 어떻게 운용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주변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주식이나 ETF, 금현물로 수익을 냈다는 소식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누군가는 4천5백만 원, 누군가는 2천5백만 원의 수익을 실현했다는 말에, 점점 마음이 흔들렸다.
아프다는 이유로 퇴직연금을 DC형으로 전환했지만,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2025년 11월, 동료들과 퇴직연금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 상황을 들은 한 사람이 말했다. “바보가 여기 있네.” 지금 이러고 있으면 어떡하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투자한 종목과 수익을 숨김없이 보여주었다. 300만 원 정도 수익을 냈다고 말했다. 함께 있던 동료들은 실제 숫자는 2천만 원을 훌쩍 넘고 있었다. 그 순간 “헐”이라는 말만 계속 나왔다. 지금부터라도 추천하는 종목을 사라며 다들 난리였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 말에 떠밀리듯 나눠서 매수했다. 그리고 2026년 1월, 나 역시 1천3백만 원의 수익이 났다. 그 숫자만 떠올리면 내가 큰부자가 된 것 같았다. 괜히 웃음이 났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동료들은 수익이 30% 이상 나면 팔고 다시 매수한다고 했다. 나도 가장 많이 오른 금현물을 매도했다. 적립금이 늘어났을 거라 생각하며 매일 계좌를 확인했다. 주말이라 처리가 늦는 줄 알고 기다렸지만, 며칠이 지나도 매도는 처리되지 않았다.
그 사이 금현물 수익 900만 원은 사라졌고, 하루이틀 사이에 수익은 100만 원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기준일이 하루 늦었다. 왜 팔리지 않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앱 설명을 다시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만 남았다. 손실이 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니 마치 큰 손실을 본 것처럼 느껴졌다. 기분이 급격히 가라앉았다. 욕심은 어느새 욕망으로 바뀌어 있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기준도, 어떤 시스템도 없이 움직였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였다. 결국 공부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제는 내 보폭에 맞춰 가기로 했다.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 깨우치며 도전하자고 마음먹었다. 욕망이 앞서다 보니 남들의 말이 모두 정답처럼 들렸고, 나는 무조건 따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는 이미 지나 있었다. 나는 과거의 성과를 보고 따라 했을 뿐, 현재와 미래를 볼 눈이 없었다.
수업료를 톡톡히 내고 있다. 얼마를 벌었느냐보다 그 과정을 무시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어느새 급하게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함께. 돌다리도 두드려 가야 한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돈 공부를 하기로 했다. 책장에서 그동안 사두기만 했던 책들을 꺼냈다. 서른 권쯤 된다. 한 권, 한 권 읽다 보면 돈의 용도도, 흐름도 조금씩 익숙해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