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한계점, 나를 점검하는 시간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8부 5년마다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라

성숙


259. 모욕을 당한 후에 갚기보다 처음부터 피하는 게 현명한 일이다.


모욕을 예견해서 그것을 칭찬으로 바꾸라. 삶의 지혜 중 하나는 모욕을 당한 후 되갚아주기보다, 처음부터 그 상황을 피하는 것이다. 모욕의 징후를 예견하여 오히려 칭찬으로 바꾸는 유연함은 성숙한 영혼의 증거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이 될 만한 일을 기쁨으로 바꿀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때로는 악의를 가진 사람들과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굴복이 아니라 자신의 평온을 지키기 위한 능동적인 선택이다.


가족 단톡방에는 매일 같은 시간이면 어김없이 메시지가 올라온다.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언니가 공유하는 목사님의 말씀이다. 메시지 앞뒤로 어머니의 안부를 묻거나 형제들의 일상을 궁금해하는 문장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종교적인 가르침만이 공간을 채운다. 가끔 일정이 허락할 때 그 말씀을 경청하고 주제를 분석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 올리기도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반응을 보이면 언니는 그제야 기뻐하며 칭찬의 말을 건넨다.


대화는 거기서 멈춘다. 교회와 관련된 내용에는 활발하게 반응하지만, 그 외의 일상적인 소통에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30년 넘게 신앙을 이어오면서도 정작 중요한 가족 모임에는 주일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 신앙이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누어야 할 최소한의 온기조차 종교라는 성벽 뒤로 숨어버린 모습은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얼마 전 언니의 생일이었다.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언니의 생일에 맞춰 돈을 입금해야 한다며 안절부절못하셨다. 자식의 생일을 챙기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노모의 마음을 헤아려, 대신 언니의 통장에 송금을 마쳤다. 어머니께는 돈이 없어서 보내지 못한다고 말씀드렸지만, 따로 3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입금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장은 없었다. 밤이 깊어도 전화 한 통 없자, 어머니의 얼굴에는 실망의 기색이 역력했다. 단톡방에서 모두가 축하를 건넸으니 바빠서 그럴 것이라고 위로했지만, 어머니의 서운함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낳아준 정을 생각하면 어떻게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 한 번 없을 수 있느냐며, 속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그 마음을 도저히 알 수 없다는 탄식이 어머니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가족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가. 어린 시절의 가난에 대한 원망을 여전히 품고 사는 언니는 동생들에게 늘 무거운 짐이다. 어머니에게 과거의 고생을 원망 섞인 말투로 쏟아낼 때마다 어머니는 고개를 들지 못하신다. 그 시절의 고통을 묵묵히 감내하며 살아온 어머니에게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일 뿐이다.

부모와 형제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관계에서 이해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아픈 부모를 돌보고 케어하는 현실적인 책임은 모두 동생들에게 떠맡긴 채, 본인의 심신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도 수용하기 힘든 영역이다. 책임 없는 권리만을 주장하는 태도는 형제들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종교적 신념을 전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의 상황과 마음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전도는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 할지라도 울림을 주지 못한다. 진정한 전도는 삶을 통해 증명되는 것이며, 사람 사이의 관계 회복이 선행되어야 한다. 생일에 쏟아진 형제들과 조카들의 축하 메시지에 답장조차 하지 못한 이유가 예배 시간 때문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는 신앙의 깊이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공감의 부재로 읽히기 때문이다. 소통 없는 신앙은 결국 고립된 삶으로 이어질 뿐이다.

아무리 소중한 가족이라도 인내의 한계점은 존재한다. 서로 한 걸음 물러나 이해하고 양해하며 함께 나아가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닫힌 생각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마주하는 날에는 마음이 편치 않다. 이때 중요한 것은 즉흥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뇌의 메커니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뇌는 관계의 질이나 타인의 감정보다 자신의 익숙한 사고 체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편중된 사고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옳다고 믿는 착각 속에 살기 쉽다. 이는 비단 언니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확증 편향에 빠져 다른 사람도 자신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스스로 뇌의 움직임을 조절하고 인지적 유연함을 갖추려는 노력이 없다면 관계의 단절은 피할 수 없다.


언니의 모습을 투영해 스스로를 들여다본다. 부모와 자식, 형제와 지인을 대하는 나의 생각과 태도는 과연 온전히 옳은 것인가. 내가 정의 내린 관계의 방식이 타인에게는 또 다른 폭력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하게 된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완해 나가는 과정이다. 상대의 변화를 강요하기보다 나의 시선을 먼저 점검하는 것, 그것이 무너지기 쉬운 관계의 한계점 앞에서 지켜내야 할 마지막 보루다.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는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겸허한 자세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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