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8부 5년마다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라
성숙
260. 가장 가까운 관계 사이라도 지켜야 하는 비밀이 있다.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고, 그 누구도 우리에게 예속되지 않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관계일지라도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인간은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으며, 타인을 자신에게 귀속시킬 수도 없다. 혈연이나 우정, 깊은 은혜로 맺어진 사이라 해도 완전한 예속은 불가능하다. 호의를 베푸는 것과 마음의 전부를 내어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관계의 밀도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자아를 상실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고 해서 애정의 법칙이 깨지는 것도 아니다.
상실의 슬픔은 때로 무서움이나 우울증의 형태로 나타난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차례로 여읜 한 여성은 장례식장에서 남은 종이컵 뭉치를 챙겨오며 아쉬워한다. 정작 시부모가 생전에 머물던 방에는 고개조차 돌리지 못할 만큼 죽음의 흔적을 두려워하면서도, 일회용품 같은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는 모습은 사별의 고통이 낳은 기묘한 방어기제다. 죽음과 관련된 물건을 마주하기 힘들어하는 태도는 고인에 대한 외면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적인 ‘정 떼기’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닥칠 일이지만, 부모의 부재를 상상하는 일은 늘 가혹하다. 매일 앉던 식탁 의자, 손때 묻은 밥그릇, 자주 쓰던 컵과 침구, 그리고 휠체어와 약봉지들. 사물은 그대로인데 주인만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 더 이상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온기를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은 수정하거나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곁을 지키는 이에게 그 상실의 무게는 감당하기 벅찬 현실로 다가온다.
치매를 앓는 시아버지를 13년간 지극정성으로 모신 이가 있다. 배설물을 갈무리하고 밤낮없는 전쟁을 치르며 진통제로 하루를 버티면서도 임종의 순간까지 집에서 지켜냈다.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는 확신은 수사관들로부터 “정말 잘 모셨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비로소 보상받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육체적 고통이 사라진 자리에는 우울증이 찾아왔다. 시아버지가 과연 행복하셨을까 하는 의문은 남겨진 이의 마음을 괴롭힌다. 돌봄의 적정선은 아무도 알 수 없으나, 그 헌신적인 과정을 통해 긍정적인 방향을 배우고 삶에 투영하려는 의지는 귀중한 자산이 된다.
회복은 천천히 이루어지며, 마음은 생각하기에 따라 언제든 방향을 틀 수 있다. 힘들어도 감사하고, 행복해도 감사하는 태도는 삶을 지탱하는 힘이다. 현재의 상황이나 앞으로 일어날 일을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은 가능하다.
모든 것은 삶의 일부이며 받아들여야 할 인생이다. 상실의 슬픔이 닥쳐와도 인간은 그것을 수용하며 살아간다. 긍정적인 사고는 자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씨앗이 된다. 어떤 환경에서도 희망을 품고 나누며 살아가는 자세는 후회 없는 마침표를 찍게 한다.
어머니를 위해 지금 더 할 수 있는 실천적인 일들
1. ‘엄마’가 아닌 ‘여성’의 역사를 기록하기
어머니를 자식을 위한 ‘숙명적 존재’로만 보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존중해 드리는 일
인생 질문 던지기: “엄마가 가장 예뻤던 시절은 언제였어?”, “엄마의 꿈은 원래 뭐였어?”, “살면서 가장 보람찼던 순간은?” 같은 질문을 던지고 그 답변을 녹음하거나 글로 남겨보세요.
기록의 유산: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레시피를 함께 요리하며 적어두거나, 옛날 사진첩을 함께 보며 사진 속 인물과 장소에 대한 설명을 적어두는 것도 좋습니다. 이는 훗날 어머니가 부재할 때 가장 강력한 위로의 매개체가 됩니다.
2. ‘부채감’ 대신 ‘존중’의 언어 건네기
어머니가 자식에게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은 미안하다는 말보다 “덕분에 내가 이렇게 잘 컸다”라는 인정입니다.
존재의 긍정: “엄마가 내 엄마여서 참 좋아”, “엄마 덕분에 내가 이만큼 단단해졌어”라는 표현을 자주 하세요. 어머니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드리는 것이 최고의 효도입니다.
사소한 일상의 공유: 거창한 이벤트보다 오늘 내가 먹은 점심, 길가에 핀 꽃 사진 한 장을 보내며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자신이 여전히 자식의 삶 속에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을 줍니다.
3. ‘신체적 돌봄’을 넘어선 ‘정서적 지지’
노년의 부모는 자식에게 짐이 될까 봐 두려워합니다. 그 두려움을 지워드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함께 웃는 시간 만들기: 코미디 프로그램을 같이 보거나 가벼운 농담을 나누며 크게 웃는 시간을 가지세요. 웃음은 통증을 잊게 하고 마음의 빗장을 풉니다.
스킨십 늘리기: 손을 잡아드리거나 어깨를 주무르는 사소한 접촉은 백 마디 말보다 강한 정서적 유대감을 줍니다. “사랑해”라는 말이 쑥스럽다면 따뜻한 손잡기로 대신하세요.
4. 나 자신의 건강과 행복 지키기
어머니가 가장 바라는 것은 “내가 아프지 않은 것”이라고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세요.
자신의 삶 가꾸기: 작가로서 글을 쓰고, 공부를 이어가며 열정적으로 사는 모습 자체가 어머니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자 자랑입니다. 내가 행복해야 어머니도 마음 편히 쉴 수 있습니다.
죄책감 내려놓기: 간병과 돌봄 과정에서 느끼는 피로감이나 짜증에 대해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지 마세요. 완벽한 자식이 되려 하기보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자식’으로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