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 인간과 엄마의 해방일지

정이, 2022

by 이리


1. 복제 인간의 고통


첫 장면에서 주인공 정이가 깨어난 곳은 전투의 한 가운데다. 그래도 곧바로 정신을 자리고 로봇들과 싸우기 시작한다. 누군가와 연락을 하며 보이는 ‘정이’ 캐릭터 성격은 터프한 여 팀장 그 자체. 그래서 첫 장면을 보자마자 SF 배경 ‘액션물’이겠구나 했다.


하지만 공격할 틈을 놓치지 않은 로봇에게 맞은 총으로 정이의 손가락 하나가 잘려나가 로봇 본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정이는 자신이 로봇인 줄 몰랐다는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하고, 곧 정이의 시스템이 멈춘다. 이 장면들로 시청자들은 모든 것이 테스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것들이 가늘고 긴 선, 작은 칩들로 이루어진 환경 연출이 디테일하다.)


'왜 여기서 맨날 통과를 못하냐고'라는 대사는 정이가 로봇이고, 이건 테스트며, 이 테스트를 여러 번 진행했다는 걸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집중해야 하는 것은 정이가 '자신이 로봇인 줄 몰랐다는 것'이다. 이 전제는 수많은 정이가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고, 그 수많은 정이가 모두 자신을 하나의 인격체라고 생각한다는 것. 즉, 인간의 감각과 감정을 모두 느끼고 기억한다는 이야기다. 그럼 이야기가 굉장히 고통스럽고 역겨워진다.


그리고 곧 우리는 정이가 팔 다리가 잘린 채로(로봇으로 이루어진 몸일지언정) 신음하는 장면을 통해 그게 무엇을 뜻하는 건지 직접 목격한다.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존재를 더 많이 만들고, 또 괴롭히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것.(그러면서 그 존재가 느낄 고통의 양을 떠올려보면...) 이렇게 복제인간이 나온 시대의 '윤리 문제'도 이 영화에 중요한 메시지가 되어 우리가 그 문제를 생각하게 유도한다. 대놓고 그런 문제들을 대사로 표현하는 건 아니지만 영화 내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로봇들을 보며 '자기 자신'이란 무엇인지. 인간이란, 로봇이란 무엇인지 그 구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상철이라는 캐릭터도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한몫한다.




2. 정이의 딸 서현


크로노이드는 최고의 전투 지휘 AI를 만들기 위해 정의의 뇌 데이터를 복제하기 시작했다. (윤정이는 원래 뛰어난 용병으로 수많은 전투를 지휘하는 팀장으로 일하다 식물인간이 되었다. 지금 윤정이 로봇들의 모습은 식물인간이 되기 전의 모습)


하지만 앞에서도 나왔듯, 정이는 항상 같은 곳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발전에 제약이 걸린 상태에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정이의 딸 ‘서현’이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서현은 약했던 자신을 수술시키려고 매번 전쟁터에 나가야 했던 엄마를 기리기 위해, 영원히 멋있는 모습으로 남기고자 이 프로젝트를 맡았다. 매번 정이의 고통을 지켜보고, 윤리의 혼란을 겪으면서도 엄마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한다는 명분으로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던 서현은 크로노이드 대표와의 면담 과정에서 더 이상의 전쟁 준비는 필요 없다며 프로젝트를 대충 마무리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하지만, 정이는 이미 막대한 자본을 투자한 자원이라 (그리고 이미 유명 용병으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기 때문에) 정이의 데이터를 삭제하고 모든 것을 파기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데이터를 가지고 가정용 사업을 시작하려 한다. 가정용이라는 의미는 성적인 용도로도 쓰인다는 것이었다. 서현은 엄마의 모습을 한 정이 로봇이 그런 수모를 겪게 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엄마로 봐야 하는지 로봇으로 봐야 하는지 헷갈려 했지만..)




3. 모성애는 거들 뿐


정이가 테스트의 또 같은 구간에서 작전을 실패하기 직전, 뇌의 어떤 부분에서 새로운 감정이 커지고, 다시 일어나 반격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정이 개발팀은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희망이 생긴다.


사실 이 부분에서 누가 봐도 작전을 성공하고 딸에게 돌아가고 싶은 정이의 모성애가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키로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그냥 서현이 '엄마, 나야'라고 하면서 정이가 테스트를 통과하고 용병 완성!이 되었다면 이 리뷰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지금까지의 정서대로 '엄마는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영화가 되었을 테니까.


하지만 기한이 다가와도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설정이고, 결국 프로젝트를 끝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사실 서현은 중간에 이 감정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내는데... (여기서 오열 포인트)


(정이는 자신이 적들에게 고문당해 곧 죽을 거라고 서현에게 들었다.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 정이는 자신이 죽기 전에 한 가지만 확인해달라고 부탁한다. 딸이 오늘 수술하는데, 수술이 잘 되었는지. 그리고 오기 전에 딸이 준 선물이 있었는데 잃어버렸다고. 찾아봐줄 수 있냐고 묻는다. 이 장면이 슬픈 이유는, 정이에게는 어제일지 모르는 기억이 서현에게는 까마득하게 오래된 기억이라는 것이다. 그 세월 동안 엄마는 마치 영원히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만 같고, 자신은 엄마에게 기대지 못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버리고야 만다.


서현은 이대로 정이를 가정용 로봇으로 만들 수 없어 몰래 계획을 세운다. (사실 생각이 짧았던 나는 크로노이드 대표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이의 뇌 데이터를 삭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더 쉬운 방법이...)


이 영화의 차별성은 서현이 정이의 뇌 데이터 중에서 자신의 기억을 전부 지운다는 데 있다. 서현은 저장, 복제되어 있는 정이의 모든 데이터를 크로노이드에서 지우려고 한다. 그 전에, 서현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테스트 한 정이 로봇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말해준다. 당신은 로봇이고, 수많은 정이가 있고, 여기서 나가야 한다고. 결국 서현은 '그 정이'의 머릿속에만 남기고 뇌 데이터를 전부 삭제한다.




4. 해방


하지만 완전히 빠져나가기 직전, 정이와 서현은 들키고 추격당한다. 서현은 들키지 않으려고 손상되어 죽기 직전인 정이의 뇌 데이터를 또 다른 배포용 로봇에게 넣는데, 이때 겉모습이 엄마인 정이의 본모습에서 더 멀어진다. 또 생각해 본다. ‘겉모습은 한 존재를 정의하는 데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가.’


뒤에 화려한 액션이 나오지만, 이미 이야기는 끝났다. 서현은 정이에게 도망치라고 한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자신의 엄마로 살지 말라고. 당신으로 살라고. '너 자신으로 살라'라는 말은 엄마로 살지 말고 한 인간으로 살아가라는 의미 외에 또 한 가지 의미가 있다. 서현은 그동안 엄마뿐 아니라 로봇들도 각각의 개별체로 봐야 하는지 아닌지 고민해왔다. 이 장면은 로봇들도 구분된 존재로 보고, '한 명'의 로봇과 마주하는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존재로.


그래서 이 영화는 모성으로만 읽으면 안 된다. 결국 이 영화는 로봇과 엄마를 해방시켜주고자 하는 현 세대, 자녀 세대의 욕망을 넣은 영화인 것이다. 윤리 의식을 가진 현 세대, 희생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녀 세대의 영화.



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이는 '엄마 세대'를 봐 오고, 듣고, 자신에게까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상에 좌절하기보다는 '선택'을 통해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려는 현재 여성들의 모습이다."(<창작과 비평 2022 여름호>를 읽고)


단순한 재회, 익숙한 성공보다 더 뜻깊었던 것은 이 영화가 결국 헤어짐을 택했기 때문이다. 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하겠다는 의지와 실천. 좌절만 하기 보다 선택을 하고야 마는 현 세대들(미래의 서현)의 모습이 담긴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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