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큰하고 황홀한 헛소리

빅 피쉬, 2004

by 이리


영화 <빅 피쉬>에 나오는 인물 에드워드 블룸은 평생을 허무맹랑한 소리만 늘어놓다 세상을 떠난다. 그가 하는 말은 전부 상상에만 존재할법한 이야기라 에드워드의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소설가 이승우의 언어로 설명하자면, “정상적인 의견 교환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모르는 사람들>.p.86)았던 것이었다.


일기를 쓰는 이유 중 하나는 하루하루를 더 정확하게 기억하기 위함이다. 나는 매일 일기를 쓰지는 않지만 종종 일기를 쓰고 하루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보다는 그날 느낀 감정, 그러니까 오늘 글로 배설하지 않고는 답답하고 찝찝해서 못 넘어가겠는 감정들이나 행복했던 느낌을 정확히 글로 적어내기 위해 일기를 쓰는 편이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말한다고 그 모든 순간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프랑스어가 입으로 나오는 순간 풍부했던 생각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필터를 거쳐 단숨에 일차원적인 문장들로 걸러졌다. 그 문장이 너무 단순하고 짧아서 내가 원래부터 그렇게 생각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35.p) 에세이 『재밌어서 만들다 보니』의 저자는 프랑스어를 새로 배우는 동안 언어의 한계를 직접 체험한다. “언어가 생각을 담는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내게는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처럼 여겨졌다.”(36.p)는 말은 전문으로 글을 쓰는 수많은 작가가 안고 가는 고민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어떤 진실을 설명하고 풀어낼 때마다, 표현할 때마다 수없이 변형시키고 해석하고 덧붙이고 덜어내고 부풀리며 왜곡한다. 어쩌면 삶의 역사는 뱉는 행위의 과정 속에서 진실을 잃고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때로는 초라한 진실보다 환상적인 거짓이 더 나을 수도 있단다. 더구나 그것이 사랑에 의한 것이라면!” 인생은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삶의 어떤 아픔이라도 달큰하게 바꿔 이야기해주고 싶지 않은가. 특히나 내 인생이 아프지 않은 삶이었기를 바라는 사람들 앞에서는 더욱. 그리고 어쩌면 그런 인생을 살았노라고 말함으로써 스스로를 설득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다면, 떠나는 곳이 소설의 외전이자 에필로그라면.


인생이 바닥이 보이지 않는 이야기 주머니라고 생각하며 살 때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담을 수 없다. 큰 물고기는 큰물에서 놀아야 하듯, 현실은 에드워드를 담을 수 없었다. 진실은 판타지를 담기엔 너무 작다. 이때 진실은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에드워드 블룸은 자유로운 왜곡의 방법을 사용해 자신의 인생을 꽃밭으로 만들 수 있었던 마법사였다. 그의 언어는 다른 이에게 전해지는 동안 진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한 색을 띠었으리라.


하루하루가 척박한 진실의 늪에 빠지고야 말 때, 팀 버튼은 언제나 자신의 언어인 판타지라는 황홀한 포장지로 삶을 감싸보라 말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돌아본 우리의 삶도 예쁜 꽃밭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맑은 미소와 선한 힘을 가진 그토록 젊은 모습의 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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