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를 말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공감되는 이야기가 되길 바라며

by 햇살샘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공감할까?"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는 나의 이야기에, 타인의 관심이 머무르고, 마음이 머무를 수 있을까?

나에게 있는 이야기는 무엇이고, 메세지는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온라인 수업, 내가 실제로 해 보지 않아 내가 이야기한다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수 있다. 실제로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소책방이라는 소중한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어,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선생님들께서는 어떤 마음이신지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2020년 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난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상상'해서 이야기하겠지. 여러 정보를 모아 나름대로 이해한 대로 재구성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수도 있다. '김선생님', '이선생님'을 등장시켜 가상의 인물로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이 여전히 발목을 묶는 느낌이다.


진솔한 글은, 내가 묵묵히 그 시간을 견디고, 때로는 치열한 그 시간을 버티면서 나오는 것 같다. 요즘 나의 이야기는 '일상이 코로나, 일상이 휴직'인 삶이다. 그리고 부인하고 싶지만, 부인할 수 없는 '난임' 이야기이다. 누구나 삶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듯, 나 또한 그렇게 한 해를 보냈다. 휴직이라고 어디 놀러 나가지도 못하고 하루종일 자가격리하며 지낸 것이 제일 억울한 것 같다. 시간이 마냥 흐르는 것이 아까워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보았다. 그러나 지인들이 구독자로 이루어진 유튜브 채널은 내가 생각한 만큼 그렇게 잘 되지 않았다. 그러면 브런치를 해 볼까? 브런치에 글을 썼고, 난임 이야기로 브런치에 글을 발행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그렇게 브런치에 글들을 쌓아갔다. 내 마음의 탈출구였다.


“언니, 너무 솔직한 거 아니야?”

동생이 브런치 글을 읽고 말했다. 음.. 그런데, 하루종일 거의 혼자서 지내는 나로서는 내 마음을 토로할 창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글을 읽고 공감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에, 여기까지는 오픈할 수 있겠다 싶은 내용을 썼고,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의 공감 속에서 조금은 힘을 얻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생각한 것처럼 필력이 확 늘지도 않았고, ‘혹시나 출판사에 연락이 오면 어떻하지?’했던 기대는 코웃음을 지을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지금 나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교사로 살아온지 11년차, 태어난 지 벌써 30년이 훌쩍 지나 삼십대 후반에 들어섰다.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면 어찌 책 한권에 담겠는가? 그 무수한 경험과, 삶의 희로애락을, 삶에서 깨달은 것들을, 어떻게 몇 장의 종이에 담을 수 있을 것인가? 삶에서 각자가 겪은 이야기가 있고 메시지가 있을텐데... 수많은 경험 속에서, 아직까지 ‘이야기’를 찾기도, ‘메세지’를 찾기도 아직은 힘이 든다. 어쩌면, 그것은 내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한 것 같다.

요즘 30호 가수에 꽂혔다. 순대선생님께서 30호 가수를 소개해 주신 이후로, ‘이승윤’가수의 노래를 들으면서 약간 중독된 사람처럼 지냈다. 왜 ‘30호 가수’에게 집착하는지 생각해 보니, 그 사람도 실은 ‘무명 가수로서, 자신의 음악 세계를 무수히 고민했던 사람’이라는 점이다.


난 지금 ‘임신이 되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고, 나 역시 ‘내 꿈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 심사위원들이 30호 가수의 가능성을 보고 극찬하는 말들을, 마치 내가 듣듯이 대리만족하며 듣고, 또 들었다. 특히 김이나 심사위원이 30호 가수에게 “칭찬을 받아 들여라”는 말을 할 때 그동안 말못할 북받침에 우는 그 모습이, 왠지 짠하면서도 공감이 되었다. 그래도 30호 가수는 행복한 것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잘 되든, 잘 되지 않든.


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을까? 휴직인데 난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야 하지? 그런 고민을 하다가도 또 난임병원에 가야 할 날짜가 다가온다. 조금은 버거운 시술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체력적으로 힘든 그 과정을 지나고 나면 쉼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선물처럼 잘 찾아오는 일이, 나에게는 왜 이리 어렵게 오는지, 올해도 휴직해야 하는지, 여러 생각이 들 때에도, 마음을 잘 다독인다. ‘그래, 다 이유가 있을 거야. 내게 쉼의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인가 봐.’ 아가가 오기 전까지,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탐색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내 삶의 메시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미완성된 모습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는 괴테의 말처럼, 지금 내가 방황하고 있는 것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있기 때문이겠지? 어쨌든 이런 미완성된 이야기를, 불확실한 이야기를, 방황하는 이야기를, 이야기로 써낸다. 누군가에게는 공허한, 누군가에게는 스치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다가올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에, 그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서투른 글솜씨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