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가 어렵다.
거절 (拒絕)
상대편의 요구, 제안, 선물, 부탁 따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침.
2학년 안전수업 시간이었다. 수업 마치고 한 학생이 나에게 과자 하나를 건냈다.
"선생님, 이거 드세요."
순간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안 받으면 학생이 상처받으면 어떻게 하지?' '김영란 법에 작은 과자도 저촉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아이의 마음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과자를 받아들고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교담실로 돌아왔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인터넷에 검색해본다.
'김영란 법_교사가 작은 과자를 받아도 되나요?'
결론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다른 과자를 하나 더 챙겨 그 학생에게 가서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은 과자를 못 먹어. 그 대신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여기 과자 하나 더 줄께."
아이가 준 과자와 함께, 다른 과자를 하나 더 아이의 손에 얹어준다. 아이는 선생님께 과자를 받았다며 다른아이들에게 자랑한다. 이런, 그건 안 했으면 좋겠는데. 나는 또 구태연연하게 '선생님이 과자를 못 먹어 그 학생 마음이 고마워 과자를 하나 더 줬다'며 설명했다.
이렇게 단호하지 못한 나의 성격에 가끔씩은 화가 난다. 때로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하기도 한다. 일례로 원어민 선생님께서 집에 갈 때 태워다 준 일이 있었다. 필라테스 가는 길이 비슷하다며 목요일에는 상황이 맞으면 같이 가자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필라테스 학원 수강이 종료되었고 재등록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굳이 거기까지 필라테스를 가야할까를 고민하며 등록을 보류하게 되었다. 그런 어중간한 상황에서 목요일이 돌아왔다. 나는 내 집방향과는 반대인 원어민 집을 가려고, 원어민을 태우고 퇴근 아닌 퇴근을 한다. 원어민을 원어민 집까지 데려다 주고는 다시 학교에 돌아와 일을 한다. 왕복 약 30분 정도가 걸린다. "영어 공부 한 거지, 뭐."라고 위안을 삼지만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의 일은 이성적으로 생각이 들면서, 왜 정작 내 자신의 일은 이리도 어려울까? 거절 못하는 성격에 손해보는 상황이 많으면서도, 이 성격을 고치지 못해 속상할 뿐이다. 내가 왜 거절을 못할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이 날 거절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절감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없음에도, 난 모든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해 애쓰다가 나를 소진한다. 결국 몸이 반응한다. '더 이상은 이렇게 못 살겠다고.' 만신창이가 된 몸을 돌보며, 이제는 내 자신을 먼저 생각하겠다고 다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