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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May 30. 2023

금쪽아, 금쪽아

마음이 아픈 금쪽이, 마음이 아픈 나

“OO야, 얼른 들어가자.”

“저는 재미없단 말이에요. 제가 생각했던 거랑 다르단 말이에요.” 올해 3학년인 금쪽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집을 피운다.

순간 나는 온갖 생각이 든다. ‘내가 더 강하게 설득하지 못해서일까?’ ‘내가 너무 허용적인 교사인가?’ ‘다른 선생님이라면 성공하셨을까?’

결국 금쪽이는 현장체험학습 내내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교실에서도 금쪽이는 집중을 하지 못하고 교실 이곳저곳을 배회한다. 가끔은 물건을 망가뜨리기도 하고, 가끔은 위험한 곳에 올라가 친구들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나도 금쪽이와 같은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시댁 식구들과 여행을 갔는데, 나는 그 여행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최근 여러 일로 과로한 탓인지 몸이 너무 피곤했고, 감정적으로 불안정했다. 즐거운 여행을 망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밝은 척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은 깨어진 유리그릇처럼, 마음이 쩌억쩌억 깨져가고 있었다. 자꾸 눈물이 나와서 들키지 않으려고 억지로 눈물을 참았다. 그랬더니, 눈물이 반항하듯 더 쏟아져 나왔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남편에게 화장실에 간다고 말하고, 펑펑 울면서 혼자서 여행지를 방황했다.

나는 며칠 전, 금쪽이가 별나고, 적응을 못한다고 속으로 답답해했었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이 바로 며칠 전 힘들어하던 금쪽이의 모습이었다. 다 큰 어른인데도, 내 마음속에는 또 다른 금쪽이가 떡하니 버티며, 내가 약해질 때 고개를 내민다. 꾹꾹 쌓아 눌러놓았던 슬픔을 터뜨려버린다. 금쪽이가 교실 물건을 던지며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 듯, 나는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의 대화를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렸다.


나도 하나님께는 금쪽이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내 속을 파고 파면 추한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무의식에 꾸욱 꾸욱 눌러놓고, 열쇠로 잠가 다시는 꺼내기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이 있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들을 계기로 그 모습이 터져 나온다. 아, 괴물이 나왔다. 슬픔을 추욱, 추욱 흘리는 그 괴물은 나를 삼켜버린다.

이런 나를 수용해 줄 사람이 있을까? 나를 감당할 사람이 있을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나를 받아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죄인 중의 괴수’라는 사도바울의 고백이, ‘괴물’ 같은 나를 마주한 나에게 알 수 없는 위로를 준다.

선생님들이 금쪽이를 힘들어하듯이, 나의 이런 모습을 감당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 마음속 금쪽이를 꾹꾹 감추고, 가면을 쓰고 사회생활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가면 내 가면이 벗겨진다. 그렇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금쪽이다.

‘주님, 이 부족한 죄인을 용서하소서. 세상을 사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 때가 있습니다. 내 마음을 나도 어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너무 어둡습니다. 선하게, 의롭게, 밝게 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주님, 이런 나의 모습도 이해해 주시나요? 날 사랑하시나요?’

그러면 주님은, 이런 날 받아주신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날 이해해 주시고,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는 나의 추한 모습까지도 안아주신다. 그 품에서 세상을 살아갈 힘을 다시 얻는다. 내 마음속 금쪽이가 울음을 멈춘다. 평온이 찾아온다.


일상의 수업, 금쪽이와 공존하기

금쪽이들은 에너지 뱀파이어이다. 교실 속 여러 학생들에게 에너지를 쓰고 싶은데, 금쪽이를 챙기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하려고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면, 다른 학생들은 방치되고 교사는 녹초가 되어버린다. 우리 반 금쪽이는 좀 더 낮은 난이도이길 매년 기도한다.

스승의 날, 수업코칭연구소에서 ‘올해 하나님께서 맡기신 특별한 사랑이 필요한 제자’에 관한 나눔을 했다. 무기력하고 자신감이 없는 학생, 깨어진 가정 혹은 힘든 가정형편 속에서 생활하는 학생, 부모님이 아픈 학생, 집에 가는 게 싫은 학생, 폭력적인 ADHD 학생, 난독, 경계선 지능에 있는 학생,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학교 밖 청소년이 되기를 선택한 학생, 학업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학생, 선택적 함묵증으로 보이는 학생, 교우관계가 어려운 학생 등 각양 각색의 금쪽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학생들을 포기하지 않고 마음을 쓰는 선생님의 고군분투함을 느꼈다.

내가 만났던 특별한 사랑이 필요한 제자들을 떠올려 본다. 책상을 집어던지고 교실을 박차고 나가던 아이부터 시작해서 여러 아이들이 생각난다. 시험지 뒷면에 ‘죽고 싶다’고 썼던 절규 어린 메시지가 보인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변화되지 않는 것만 같던 아이들, 방학식날까지도 다투던 아이들이 보인다. 그 앞에서 무능한 내 자신을 보며 얼마나 아파했던가?

감당하기 어려운 학생들을 만날 때에 내 능력의 한계를 마주한다. ‘내가 부족해서... 내가 부족해서...’ 모든 화살을 내게 꽂으며 스스로 절망한다. 그러나 이 학생들을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게 맡기셨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매일의 수업을 한다. 가끔은 버티기 힘들 때에, 주님께 매달리며 매일의 수업을 해 나간다.

오랜만에 벽장 속에 간직해 두었던 편지들을 꺼내어 읽는다. 그중 내가 감당하기에 역량이 부족하다며 힘들어했던 학생들의 편지에 시선이 머무른다.

“박선영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OO이에요. 선생님, 절 가르쳐 주시고 길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절 가르치시느라 힘드셨죠? 선생님, 선생님 힘들게 한 것 죄송해요. 선생님, 사랑해요♡♡♡ … 첫 제자가 되면 좋은 것 같아요. I love you, teacher.”

“… 아직도 제 마음에는 아직도 선생님이 계세요. 선생님의 첫 제자가 되어서 이런저런 상담으로 도움을 받았습니다.….”

“…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해야 재밌게 공부할지 고민하시고 연구하시고, 또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저희를 혼내시고 꾸중하실 때마다 그때만큼은 싫고 짜증 났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면 바른 소리고 저희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우칩니다. 또 선생님께서는 저희를 존중해 주시고 의견을 물어봐주시는 것도 저희에게는 멋진 학습이자 놀이인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도 저희 반 친구들의 성격이 점점 좋아지고 따뜻해지고 있어요.”

금쪽이 학생들을 감당하기에는 내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교사 초임시절에는 “내가 아닌 다른 선생님들을 만났으면 이 아이들이 훨씬 더 훌륭하게 잘 컸을 텐데…….”란 생각에 무척 힘들어했다. 교사를 그만둘지 생각도 무수히 많이 했다. 그러나 학생들 편지를 보며 힘을 낸다.

내가 학생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인 진심, 그 마음은 학생들에게 전해졌구나. 훈육이 서툴러 너무 괴로웠는데, 그럼에도 학생들을 존중하려는 애씀을 학생들이 느끼는구나. 나는 부족하고 약한 점도 많지만, 주님은 나에게 장점도 주셨구나. 내 약점으로 괴로워하기보다는, 내게 주신 달란트도 있음을 기억하고 그 달란트로 교사 생활을 잘해나가야겠구나.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아야겠구나.     

아버지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는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 103:13~14)     

우리의 체질을 아시는 주님으로 인해 다시 힘을 낸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금쪽이일 텐데, 내 체질과 나의 밑바닥을 아시는 주님이, 그럼에도 나를 긍휼히 여기셨다. 나를 수용해 주신 그 사랑으로, 내가 만나는 금쪽이들도 이해하며, 아이들을 온전히 사랑하는 오늘의 수업을 다시 꿈꾼다. 두 손을 모아, 나에게, 현장에 계신 모든 선생님들께 오늘의 수업을 감당할 힘을 주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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