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늘 바람이 불었다. 인생에도, 수업에도, 내 마음에도.
최근 ‘바이브 코딩’ 연수를 듣고 있다. 이제는 코딩을 할 줄 몰라도,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코딩도 할 수 있고 웹페이지도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별천지이다. 방학이 시작되었지만,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쓸 시간도 없이 코딩 프로그램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다.
숨을 돌리고 쉰 적이 있던가? 늘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발버둥쳤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새로운 학급경영 기술, 수업 기술을 배우고자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지금은 쏟아지는 AI 도구를 배우느라 마음을 뺏긴다.
내면의 소리가 중요한 줄 머리로는 알지만, 늘 외적 기술에 현혹되어 이를 따라가느라 바쁘다. 그러나 방치해 둔 내 마음과 감정은 곪을 대로 곪아 갔다. 눈에 보이는 것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은 지나치기 쉬운가 보다. 내겐 본질적인 것도 그랬다. 정작 중요한 나의 자존감, 가치, 철학은 등한시했다. ‘내가 왜 교사가 되었는가?’,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가?’ 이런 질문은 사치였다. 늘 생존모드였다. 살아남기 위해, 뒤처지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미친 듯이 배웠다. 배움이 수업으로 이어지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했다. 작년, 거의 나의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바닥났을 때 ‘내가 교사를 더 할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생각했다. 학생들과의 경계 세우기가 어려웠고, 수업은 내 바람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번아웃의 낭떠러지 앞에서야, 난 멈출 수 있었다.
안개 속에 수업을 찾아 나서다,
교사가 된 지 1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수업은 어렵다. 코로나 이후, 에듀테크 도구를 수업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초반에는 학생들의 참여가 높아지기도 했고, 흥미 유발에도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작년에 만난 학생들은 에듀테크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고, 신기해하지도 않는 듯했다. Google Classroom, Canva, Suno 등 다양한 도구를 썼고, Blooket, Kahoot, ZEP과 같은 게임으로 학생들의 흥미를 높이려고 했다. 그러나, 잠시 관심을 보일 뿐, 내가 원하는 ‘몰입’이라든지, 깨달음과 소통의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아이들이 내 수업을 좋아할까?’ 업무에 치여 수업에 자신이 없던 나는 어느새 학생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결국 배움과는 멀어져만 갔고, 순간의 자극이나 흥미를 추구하는 학생들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었다. ‘아, 뭐가 문제일까?’
고민하던 중에 만난 책이 김태현 선생님의 『수업의 본질』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 수업과, 내 존재를 깊이 살피게 되었다. 저자는 수업을 찾아 떠나는 다섯 갈래의 길을 소개한다. 그 다섯 갈래의 길은 ‘자존, 디자인, 실행, 성찰, 그리고 공동체’이다. 이 묵직한 단어 속에, 저자의 진심과 고민, 통찰이 느껴졌다. 내 삶도, 수업도, 희미한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을 때에, 이 다섯 단어를 나침반 삼아 책을 읽으며 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첫 번째 길은 ‘자존’이었다.
자존, 내면으로의 귀환
늘 자존감이 고민이었다. ‘난 부족해’라는 메시지가 메아리처럼 맴돌았다. 사람들의 인정과 긍정적인 평가에 목말랐다. 자꾸만 학생들의 눈치를 봤다. 내 소신껏 수업을 하기 보다는, 즉흥적으로 학생들을 만족시킬 방법을 자꾸만 찾았다. 업무에서 작은 실수가 있어도, 크게 놀라며 스스로를 닦달했다. 이러한 사고 패턴과 삶의 방식은 내 마음과 영혼을 갉아먹었다. 저자는 교사의 자존을 흔드는 원인을 ‘번아웃’, ‘완벽주의’, ‘감정의 균열’로 설명하며, 회복의 길을 안내한다.
번아웃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저자는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달리기와 수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건강한 몸의 리듬을 통해 창작의 에너지를 길러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 또한, 수영을 통해 몸을 돌본다고 했다. 몸이 무거우면 마음도 주저앉지만, 몸이 살아나면 마음도 따라 일어난다고 한다. 나도 내 몸을 먼저 돌보면서, 수업을 ‘견디는’ 것에서 나아가, 수업을 생동감있게 살아가길 바란다. 저자의 문장에 다시금 귀를 기울인다. “당신이 잘 회복되어야지 수업도 온기를 되찾는다. 당신의 평온한 마음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수업의 힘이다.”(39쪽)
완벽주의를 쫓으며, 내 실수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나에게, 저자는 따스하게 말을 건넨다. “나는 불완전하지만, 여전히 배우고 있고, 천천히 성장하고 있다고. 불완전함 덕분에 우리는 계속 질문하게 되고, 그 질문 속에서 배우고 성장한다고. 조각난 순간들을 하나하나 이어가며, 결국 자기만의 색으로 빛나는 하나의 수업, 하나의 길을 완성해 간다고. 미생(未生)에서 완생(完生)으로, 나만의 호흡으로 살아가라고.”(46쪽~47쪽). 날 괴롭히던 ‘부족하다’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 덕분에 나는 성장하고 있다’고 내 마음을 토닥이며 말해준다.
그럼에도 삶의 순간 순간, 나의 부족함을 마주하는 것은 아픈 일이다. 때로는, 감정이 흔들리고, 균열이 나기도 한다. 그런 나에게, 저자는 “감정의 파도가 밀려왔다가 빠져나가는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조금씩 더 깊어지고, 더 교사다워지고 있다”(54쪽)고 말한다. “감정의 균열을 솔직히 바라보고 나 자신을 다정하게 안아주라”(55쪽)고 말한다. 그렇다. 나에게, 다시 좀 더 다정하게 말을 건낸다.
저자는 자존을 세우는 작은 시작점을 제시한다. “읽고, 쓰고, 그리고, 사랑하라.” ‘하루 10분 글쓰기, 5분 묵상, 가벼운 스트레칭, 감정의 기록’과 같은 소소한 실천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교단 위에 설 수 있다고 한다. 그 동안 외부의 요구를 만족시키느라 정신이 없던 나에게, 이제는 ‘읽고, 쓰고, 그리고, 사랑하는’ 작은 선물을 매일 해 줘야겠다. 저자의 메시지를 다시금 기억한다. “당신은 누군가를 비추는 조용한 빛이고, 따뜻한 숨결이다. 그리고 그 빛은, 언제나 나의 자존으로부터 시작된다.”(93쪽)
자존을 세우고, 수업의 본질을 찾아 나서다: 디자인, 실행, 성찰, 공동체
책을 읽으며, 그동안 방치되었던 내면을 돌보니, 다시 ‘수업’을 향한 애정이 따스하게 움트기 시작한다. ‘그래, 수업을 할 때, 행복할 때가 있었지.’, ‘수업을 하던 내 모습이 참 멋질 때가 있었지.’ 그러면서, 다시 한발을 내딛는다. ‘어떻게 하면 나다운 수업을 하며, 나답게 살 수 있을까?’
보통 연수를 받으면, 특정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지를 배우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나, 정작 그 도구를 사용하는 ‘교사’와, 그 교사가 꿈꾸는 ‘수업’에는 무심할 때가 많다. 『수업의 본질』은 교사의 존재와, 그 교사가 진정으로 원하는 수업, 그 교사 고유의 색에 집중한다. ‘외부로의 도주’가 아닌 ‘내부로의 귀환’인 것이다.
저자는 어떻게 하면 보이지 않던 나만의 색을 찾으며 창조적으로 수업을 ‘디자인’할지, 흔들리는 가운데에도 분명한 규칙과 기준 속에서 유연하게, 민감하게, 소통하며 수업을 ‘실행’할지, 어떻게 수업을 돌아보고 나누며 ‘성찰’할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길을 혼자서 걷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걷자고,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며, 선생님의 존재가 이 시대의 가장 깊은 희망이라고 메시지를 건넨다. '자존'을 회복한 교사가 자신만의 색깔로 수업을 '디자인'하고, 교실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실행'하며, 끊임없이 '성찰'하고, 동료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성장해 나간다는 저자의 통찰이 하나의 완성된 그림처럼 다가왔다.
하나하나의 문장과 메시지가 지닌 깊이와 따뜻한 통찰에 놀란다. 이 책을 통해, 내 존재를 다시 수용하고, 교사로 다시 뚜벅뚜벅 걸어갈 힘을 얻는다. 새 학기, 『수업의 본질』 이 책을 통해 우리 선생님들의 마음에 책 표지처럼 따스한 햇살이 스미기를, 그리고 그것이 수업으로 연결되어 선생님의 자존이 다시금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아, 수업이 온다. 두 팔 벌려 너를 안는다.
※ 이 글은 김태현 선생님의 『수업의 본질』을 읽고, 교사로서 느낀 바와 변화의 여정을 함께 담아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