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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재미를 붙이다

요리, 나와 너를 살리는

by 햇살샘

"내가 할게. 너는 공부해."


입시가 시작되던 때부터, 집안일은 거의 하지 않고 오직 공부만 했다. 대부분 그 시기의 입시생들은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게 직장인이 되고, 직장에 적응하느라 요리를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자취를 하던 시절, 밥을 하고 밑반찬에 간단히 밥을 먹곤 했다. 대학원을 병행할 때에는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그렇게, 타지에서 홀로서기를 한 이후, 내 몸은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일만 하며 20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선생님은 왜 자기를 돌보지를 않나요?" 동료 선생님의 말에 놀라곤 했다. 돌이켜보면 난 날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오직 '성과'를 내기 위해 달렸을 뿐. 늘 부족하다는 밑바닥까지 깔린 자격지심은 쉬지 않고 달리게 했다. 쉬어도 불안해하며, 일을 손에 달고 살았다.


그러던 중 올해, 남편의 뇌졸중은 모든 일을 중지시켰다. 아니, 우선순위를 모두 바꾸어놓았다. 지금 나의 최우선순위는 남편의 건강한 회복이다. 학습 연구년으로 오전만 근무하다 보니 하루 세끼 밥을 하는 것이 하루 일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생전 잘해 먹지 않던 야채주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토마토와 당근을 기름에 살짝 볶고 사과를 넣어 주스도 만들고, 양배추도 찌거나 데쳐먹기 시작했다. 갈치조림, 고등어조림, 카레, 콩나물국, 된장국 등 최대한 건강식으로 요리를 해 먹었다. "여보는 요리사!"라며 좋아하는 남편을 보고, 생각지도 못한 요리사가 되었다.


예전에는 요리를 하는 것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강했다. 워낙에 목표지향적으로 살다 보니, 일분일초를 쪼개어 살 때가 많았기 때문에, 요리를 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올해에는, 욕심을 많이 내려놓고 남편을 돌보고, 반 강제적으로 나를 돌보고 있다.


가끔씩 불안이 몰려오기도 한다. '하루 종일 요리와 가사일만 하다가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닐까?' 그러나 이 시간이 내 남편과 나를 살리는 시간이라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One cannot think well, love well, sleep well, if one has not dined well.” — Virginia Woolf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에서는 제대로 생각도 못하고 사랑도 못하며 잠도 잘 이루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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