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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줄 모르는 널 위해

by 햇살샘

“바쁘다, 바빠.”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뭐가 그리 바쁜지?


“아, 고되.”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고되다는 말이 나온다. 그럼 남편은 유머러스하게 받아 친다.

“고대요? 난 연대, 하버드대!”


“아, 대다.”
(※대다: 경상도 지역에서 '고되다(힘들다, 매우 지치다)'의 의미로 쓰이는 사투리 표현)

그럼 남편은 ‘된다!’라며 말을 바꾸어준다.


특별연수 기간에도 역시나 나는 바쁘고, 고될 때가 많았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벌이고, 해야 할 일들 사이에서 쫓기고 달렸다. 거절하지 못해 꾸역꾸역 끌고 가는 일들도 있었다.


그러던 중 남편의 회복이 필요한 때를 지나며, 나의 모든 삶의 패턴이 바뀌었다. 날 위해서는 쉴 줄 모르던 내가, 남편을 위해서 쉬기 시작했다. 혼자 있을 때에는 밥도 대충 때우던 내가 아침부터 케일과 레몬즙으로 스무디를 만든다. 토마토와 당근, 사과로 주스를 만든다. 시금치 바나나 우유도 도전해 본다. 점점 더 스무디가 다양해지고 건강해진다. 밥상이 달라졌다. 고등어 조림, 갈치 조림, 전복찜 등 여러 요리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여보는 최고의 요리사에요.”


요리에는 전혀 취미도, 관심도 없던 나는 사랑의 힘으로 최고의 요리사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남편과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으셨나보다.


일에 매달려 컴퓨터만 들여다보던 나는, 요리하고 식사하고 산책하며 남편과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불나방처럼 ‘성공’과 ‘생존’을 쫓던 내가, 지금은 멈춰서서 소중한 남편과 나를 돌본다.


집 뒤에 작은 산책로가 있다. 남편과 같이 산책로를 걸으며, 나뭇잎 냄새와 흙냄새를 맡고, 조곤조곤 장난을 치며 이야기를 한다. 이 모든 순간이, 유한한 내 인생에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삶을 졸업할 때, 내가 쌓아온 ‘업적’이나 ‘능력’을 가지고 주께 가는 것이 아닐 것이다.

결국은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가족과 이웃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사랑’만이 남을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려면 내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어렵고 어렵던, 나를 사랑하는 일에 한 발자국 더 내딛는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 바로 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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