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한다는 것은, 무수히 내 자존을 세우는 과정인 것 같다. 2025년, 수업을 하지 않는 해였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수업을 하지 않았더니, 자존의 흔들림을 덜 겪었다. 훨씬 안정되었고, 고민도 적었다. 생각해 보니, 수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대단한 일이고, 어려운 일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교사는 자존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 수업을 할 때였다. 한 학생의 무례한 행동에 마음 속에 분노가 일었다.
‘내가 이 꼴을 보려고 교사를 했나?’
여러 에듀테크를 활용해 열심히 수업을 준비하고, 국제교류를 진행하면서 실제적인 영어 사용 환경을 조성하고, 학생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과는 별개였다. 내 수업은 실패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몇몇 반항기 어린 학생들의 태도는, 내 마음을 들쑤셔놓았다. 왜 그랬을까?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을까? 내 노력이 인정받지 못했다고 느꼈을까? 아무리 애써도 안되는 것 같아 느낀 좌절감이었을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내면의 간절함과 달리, 교실 현장에서는 의도치 않게 외면당할 때가 있다. 그렇기에 자존이 무너진다. 그러면서 분노가 올라온다. 엄격하려고 애쓰지만, 잘되지 않고, 그러면 나 자신을 탓하게 된다. ‘내 마음이 약해서 그럴까?, 내가 엄격하지 못해서 그럴까?’ 그러면서 모든 비난의 화살을 날 향해 쏜다.
내가 가르치고 싶은 지식,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음에도, 벽에 부딪힐 때가 있다. 가르치려 애쓰는 나와, 어떻게든 자유분방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사춘기 아이들과의 첨예한 갈등이 수업인 것 같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엄격함과 친절함의 균형을 맞추고자 애쓰지만, 그 줄에서 넘어지는 순간 타격감이 큰 것이 문제였다. 생각해 보면, 완충제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질 못했다. 난 내 편이 되어 주질 못했다.
어떻게든 완벽을 추구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끊임없이 날 비난했다. 그렇다보니, 내 존재가 점점 작아졌다.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촛불처럼 흔들리며 꺼질 듯, 꺼질 듯 그렇게 일상을 버텼던 것 같다. 그렇기에, 작은 외면과 거절도 너무나도 크고 아프게 다가왔던 것 같다. 수업 속에서 살아내고자 하는 생존적 몸부림을 하다 지쳐, 쓰러진 전우처럼 모든 의욕을 잃은 듯했다.
그렇지만 이게 끝이 아니란 걸 안다. 그럼에도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빛은 틈 사이로 여전히 반짝이고 있다. 내게 빛은 무엇일까? 틈 사이로 반짝이는 빛은 무엇일까? 그건, 나의 진심이다. 학생들에게 좋은 수업을 해 주고 싶었던 진심, 학생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환대하고 싶었던 진심, 부족하지만 건강한 경계를 세우기 위해 힘썼던 진심, 나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좋은 교사가 되어 주고 싶었던 진심이다.
학년 말, 지도하기 힘들었던 반의 한 학생의 응답에 눈길이 머무른다.
“항상 열심히 해 주셔서 조금의 여유를 가지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학생들은 내 애씀을, 내 진심을 조금은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날 가장 닦달하고 미워했던 사람이 나이지 않았나 싶다. 너무나도 높은 기준, 이상적인 목표를 강요하며, 날 소진시키고 있지는 않았을까?
오늘은, 나를 다시 한번 안아준다.
흔들리기에 더 아름답다.
불완전하기에 더 인간답다.
포기하지 않기에 여전히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