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소, 대추차, 대봉, 동치미, 반찬, 돼지감자, 책, 펜, 딸기, 화분, 오란다, 휴대폰 거치대, 진단서
그리고
기도,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
지난해 7월, 나는 폭풍우를 걷는 듯 했다. 미친듯한 광풍을 헤치며 인생길을 홀로 걷는듯했다.
그 시기, 누군가의 전화,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 누군가의 기도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다.
벼랑끝인 것 같을 때, 그 분께서는 여러 방법으로 우리 부부를 지탱해 주셨다.
다시 찾은 친정과 같은 교회에서, 오랜 시절 알고 지낸 팔순이 넘으신 권사님께 전화가 왔다.
"OO집사, 내가 교회에서 감을 전해주려고 했는데 ... 내가 차가 없어서 우리 집에 와서 받아 갈 수 있을까?"
권사님께서는 잠시 차를 마시고 가라고 하시며, 직접 만드신 대추차를 준비해 주셨다. 최상급 대추로, 설탕도 넣지 않고 만드셨다는 대추차는 정말 전통찻집에서 먹는 대추차보다도 훨씬 달고, 고급진 맛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 권사님께서 문자를 보내주셨다.
"... '변장된 축복'이란 말도 있잖아요.
두 분이 똘똘뭉쳐 이 고난을 이겨내고
꼭꼭 승리하기를 위해 기도하네요. 부디 힘내세요. 소망을 담아서...
다음엔 시원하고 담백한 동치미도 조금 담아줄게요.
낙엽지는 늦가을 사색은 짙어지지만 한 주간 잘 지내시고
주일에 밝은 모습으로 만나요~♥"
그렇게 늦가을과 겨울을 보낸 후, 난 학교에 복직했다. 새학기가 지나 며칠 후, 교장선생님은 내 사정을 아시고는 퇴근길에 날 부르셨다.
"이거 가지고 가."
교장선생님은 도톰하게 살이 오른 맛스런, 빨간 딸기 상자를 내 품에 안겨 주셨다.
생각해 보니, 내게는 권사님, 교장선생님 뿐만이 아니었다. 그 중, 내게 가족같은 칠남매가 있었다.
바로 글쓰기 칠남매.
배가 아픈 날 위해, 24시간 넘게 걸려 정성껏 만드신 효소를 전해주신 J수석님,
남편 병원을 찾아 헤맬 때, 분당 병원까지 태워다주겠다는 K선생님,
제주도에서 사랑을 담은 영상편지,
여리고 섬세한 날 따스하게 날 격려하는 책,
칠남매 모습이 담긴, 보기만 해도 충만해지는 초록초록한 화분,
그리고, 학교에서 내 어깨가 으쓱해지게 하는 오란다와 따스한 글귀였다.
'봄날의 햇살처럼 따뜻한 OO부장님과 행복한 학교 생활 되세요. 우리 OOO부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 칠남매 드림-'
”칠남매가 뭐예요? 가족이에요? 엄청 끈끈한가봐요.“
”학교 옮기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챙겨주고, 엄청 많이 생각해주시나봐요.“
"우리 아빠 경찰이야!"라며 아빠를 자랑하는 아이마냥, 자랑스러웠다. '나 이렇게 사랑받는 사람이에요.'라는 자부심이 내 맘속에 오랜만에 샘솟고 있었다.
'내가 언제 이런 사랑을 받았었나?'를 떠올려보니 신규시절 한 장면이 드라마속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지나갔다. 오전이었고, 교실에서 내가 수업을 하고 있었다. 한 아저씨가 내게 꽃바구니 배달이 왔다며 교실 문을 두드렸다. '어, 꽃바구니를 보낼 사람이 없는데?'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꽃바구니를 받았다. 그리고, 거기에 적인 작은 쪽지에 눈물이 터져버렸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꽃바구니를 보낸 주인공은 엄마였다. 신규시절, 서툴고 서툴어 내 존재가 부끄럽던 때가 있었다. '내가 왜 교사가 되었나?'에 대한 직업 정체성에 대한 위기감은 내 존재의 의미 자체를 크게 흔들곤 했다. 학생들 앞에서 내가 작아졌고, 실수투성이인 내가 답답했다. 그렇게 흔들리고, 흔들리며 신규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부족한 나 자신을 견디고, 환경의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몸부림칠 때, 엄마의 메시지는 그런 나를 조용히 품어주고 있었다.
'그래, 세상이 내게 등을 돌리는 것 같이 느껴질 때에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
그렇게 나는 얼음같이 날카롭고 시렸던 신규시절을 엄마의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날 깊이 사랑해주는 남편을 만났다.
"여보, 연애할 때는 여보가 블랙박스도 설치해주고 했는데. 오늘 운전할 때, 핸드폰 거치대가 없어서 옆에 탄 선생님이 위험해 보였대."
그 말을 듣고, 남편은 바로 휴대폰 거치대를 주문했다. 그리고는 내가 퇴근하고 피곤해서 집에서 누워있을 때, 차에 가서 휴대폰 거치대를 설치해 주었다. 출근길, 잠이 덜 깨 피곤한 몸을 일으키며 운전을 하는데, 핸드폰 거치대를 보니, 남편의 사랑의 손길이 느껴진다. 왠지 모르게 힘이 난다.
나를 향한 호의도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지만, 가족을 위한 누군가의 호의 또한 때때로 크게 다가올 때가 있다. 남편은 아직 회복중이어서 휴직을 연장하고 싶었다. 그러나, 처음에 다녔던 병원에서 진단서 연장을 해 주시지 않아 발을 동동거렸다. 한의원을 다니던 차라, 한의원 원장님께도 여쭤봤는데 난처해 하셨다. 한의원을 갔다가 진단서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온 날, 남편과 나는 평소보다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걱정에 걱정을 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진단서를 가지고 왔다. 재활의학과 원장님께서 남편의 사정을 아시고 어깨통증 관련해서 진단서를 써 주신 것이다. A병원에 갈 때 가지고 가고, 혹시 A병원에서 진단서를 안 써줄 경우, 휴직용 진단서를 다시 써 주신다고 하셨다고 한다. 원장님의 호의에, 절망하며 하나님을 의심했던 내 마음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바뀌었다. 누군가 우리 부부를 돌보아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리고, 오늘 아침, 남편과 같이 A병원에 갔다.
"오늘 부장님의 하루를 응원합니다. 두 분이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행복한 시간 되었으면 합니다."
교장선생님의 문자였다. 병원을 가는 길이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는데, 교장선생님의 문자를 보며 마음이 왠지모르게 따스해졌다.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여행을 가는 기분이 들었다.
피검사 후, 우리는 장어탕을 먹었다. 남편과 장어탕을 먹는데, 땀이 나면서 피곤이 풀렸다. 잠깐 카페에 들려 차를 마신 후, 우리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순서를 기다렸다. 드디어 원장님을 만날 시간이 되었다.
남편의 이름을 듣고, 우리는 원장실로 들어갔다. 푸근한 인상의 원장님을 볼 때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원장님께서는 차분하게 mri결과를 보시며 우리에게 검사 결과를 설명해 주셨다.
"원인은 경동맥 박리네요. 좌측에 이 곳, 우측에 이 곳에 박리에요. 동맥 박리는 재발 위험이 낮은 편이라 다행이에요. 거기에 동맥경화가 생기지 않도록 약물로 치료할 거에요."
"수술이나 시술은 하지 않아도 되나요?"
"네. 약물로 치료하면 되어요. 혹시 더 궁금한 사항 있나요?"
남편과 나는 흠칫하며 서로를 바라봤다. 남편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혹시 진단서를 써 주실 수 있나요?"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이었다. 원장님께서는 살짝 웃으시며, 진단서를 써 주신다고 하셨다. 그렇게, 남편에게는 쉼과 회복의 시간이 허락되었다.
돌아오는 길, 학교의 H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선생님, 남편분은 어떠세요?"
새벽마다 생각하며 기도해 주신다고 하셨던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의 관심과 마음에 마음 한켠이 촉촉히 젖어왔다. 몇몇 단체카톡방에도 우리 부부를 위한 기도가 올라와있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참 어려울 때도 많지만, 그럴 때에 누군가의 도움, 누군가의 사랑과 기도, 누군가의 마음이 기적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그래서, 세상은 살만한 것 같다.
오늘도 내 영혼에 따스한 햇살이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