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가을 뉴욕 여행기
덧없는 꿈을 꾸는 사람들은 그저
이국적인 풍경에 한숨을 내쉴 거야
이것이 뉴욕의 가을
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개하는 버넌 듀크의 <뉴욕의 가을> 속 구절이다. 뉴욕 시티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하는 하루키는, 11월의 뉴욕이 참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2018년 10월 말, 다섯번째 온 뉴욕이지만 영우와 함께 뉴욕의 가을을 처음 보았다. 주로 10월 즈음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해 옷장에서 코트를 꺼내입어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 덕이다.
아름다운 이상을 이상적으로 현실화한 공원
뉴욕의 가을을 실감한 건, 센트럴 파크에서였다. 뉴욕의 폐(lung)라고 불리는 센트럴 파크는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다람쥐들은 낙엽을 밟아 소리내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미국에서 최초로 조성된 이 공원은 뉴욕 도심 한복판, 즉 알짜배기 땅 한 가운데에 있다. 뉴욕이라는 엄청난 도시 설계 과정에서 어쩌다보니 남겨진 공원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센트럴파크는 사람에 의해 철저히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공원이다. 바둑판처럼 잘 짜여진 맨해튼 거리를 걷다가, 센트럴 파크의 꼬불꼬불한 길을 걷다보면 길을 잃는 것이 오히려 즐거운 경험으로 다가온다. 어느 길을 들어서더라도 영화 같은 풍경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센트럴 파크는 박물관 못지 않은 곳이다. 특별히 눈길을 주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공원을 구성하고 있는 19세기 사암부조는 미국 최초의 공공미술이다. 그리고 베데스다 분수의 상징인 천사는 뉴욕의 깨끗한 식수를 기념하는 의미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레스토랑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레스토랑, 컨셉이 참신했다. 건물 외관부터 식당 전체는 가을 분위기를 자아내는 주황색, 갈색 색감과 함께 어울리는 식물들로 꾸며져있었다. 식사라는 경험에 있어서 공간 인테리어가 차지하는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곳은 음식을 맛보기도 전에 식당에 반해버리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주황색으로 물든 뉴욕을 볼 수 있는 때
아침에 브루클린을 산책하면서 할로윈 분위기로 장식된 집들을 많이도 구경했다. 특히 재밌었던건 두루마리 휴지로 만든 꼬마 유령 장식. 스산하게 떨어져 있는 낙엽들, 조금씩 차가워질 준비를 하는 가을 공기, 가족들이 함께 웃으며 꾸몄을 할로윈 호박 장식. 뉴욕의 할로윈 시즌을 느끼기 시작할 때쯤, 내 눈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게 된 것들이다.
주황색으로 물든 첼시마켓. 첼시마켓에 갈 때마다 꼭 들르는 사라베스와 팻위치 베이커리에도 할로윈 에디션 제품들이 있었다. 같은 팻위치 브라우니여도 주황색 리본으로 패키징이 되니 좀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할로윈 당일에 우리는 Frozen(겨울왕국) 뮤지컬을 보러 갔다. 그런데 공연장 앞에 엘사와 안나가 서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할로윈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이었고, 심지어 같이 공연장에 들어가 우리가 앉은 자리 바로 앞줄에서 뮤지컬을 보았다. 엘사가 흔들림 없는 가창력으로 불러준 Let It Go가 울려퍼지며 저물어가는 할로윈 뉴욕의 저녁은 황홀했다.
뮤지컬이 끝나니 꽤 늦은 저녁시간이 되었지만, 뉴욕은 여느때처럼 잠들줄 몰랐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 온몸으로 할로윈을 느끼는 듯했다. 매년 모두가 한마음되어 기대하고, 준비하고, 즐기는 시간이 어김없이 찾아온다는 것은 꽤 재미있을 것 같다. "Happy Holloween!"이라는 인사처럼, 모든 사람들과 가볍고도 재밌게 기념할 수 있는 날의 추억이 매년 쌓여가는 것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