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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 Sep 20. 2020

생활의 기본 2. 음악

조화로운 언어로 내게 말 걸어주는 것

나에게 음악이란 뭘까 생각해볼때마다 늘 같은 답을 얻게 돼요.

'우주의 질서 (universal order)'

하늘에 있는 별자리들이 우주의 질서를 눈으로 보여준다면

음악은 그걸 소리로 표현하는 거에요.

음악이라는 언어를 통해 우리는 별과 하나가 되지요.




에단 호크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에서 세이모어 번스타인이 한 말이다. "음악이라는 언어를 통해 우리는 별과 하나가 되지요", 유독 이 문장에 내 마음의 무게가 실렸다. 음악이 소통의 매개체가 되어 나와 어떤 무언가를 하나로 연결시켜줄 수 있다는 것. 내 일상생활 속에서 분명히 제 역할을 하는 음악이 가지는 힘이 문장화된 것 같아 메모장에도 적어놓고 마음 속에도 새겼다.



책과 음악이 만날 때


최근 내가 좋아하는 여성 두 명이 나누는 대화가 라이브로 방송되었다. 임경선 작가의 신간 <가만히 부르는 이름> 랜선 낭독회였는데 그 진행을 김이나 작사가가 함께하게 된 것. 낭독회의 시작과 끝은 임경선 작가가 이 소설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 두 곡이 장식해주었다. 시작은 이소라의 <그대가 이렇게 내 맘에>, 그리고 끝은 박효신의 <Goodbye>였다. 아직 듣는 연재 소설로만 이 소설을 만났지만 소설의 전체적인 이야기가 담겨진 노래들 같아서, 이 노래들을 들으면 소설 속 주인공 혁범, 한솔, 수진의 관계와 감정들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시큰해지기도 한다.


임경선 작가는 원고작업이 다 끝나고 노래를 오백번쯤 반복해 듣고나서야 박효신 <Goodbye>의 가사를 김이나 작가가 썼다는 것을 알고 놀라 심장 근처가 묵직하게 뻐근해졌다고 한다. 특히 아래 가사를 반복해서 들었다고 했는데, 소설을 일부 읽은 나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린 다른 꿈을 찾고 있던 거야

아주 어린날 놀던 숨바꼭질처럼

해가 저물도록 혼자 남은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서로 이어지지 못한 사람들을 '다른 꿈을 찾고 있던 사람들'로, 그리고 '숨바꼭질'에 비유하다니. 김이나 작사가의 사랑에 대한 생각과 언어 표현은 상상 이상의 영역에서 놀람을 준다. 이렇게 책과 음악이 만날 때, 특히 소설과 음악이 만날 때 노래 가사는 곧 소설 속 주인공의 속마음이 된다. 멜로디와 함께 그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기분은 감동적이고, 그 감동의 결은 아련할 때도 설렐 때도 있다.




여행과 음악이 만날 때


여행과 음악이 만날 때, 눈 앞의 풍경은 영화화된다. 음악을 듣는 순간 평범한 길거리 풍경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여 사람들의 걷는 동작 하나하나가 영화 속 장면처럼 보이는 경험은 늘 짜릿하다.


가족들과 유럽여행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엄마와 함께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봤다. 그리고 이탈리아 피렌체에 도착해서 아르노 강 주변을 거닐 때 엄마와 이어폰을 나눠끼고 영화 OST <The Whole Nine Yards>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음악을 배경으로 하늘의 구름은 유유히 흐르고 있었고, 아르노 강에서 로잉을 하던 사람들의 팔은 느리게 움직였다. 조토의 종탑에 올라갔을 때는 두오모 꼭대기에 서있는 준세이와 아오이가 금방이라도 눈앞에 보일 것만 같았다. 음악 덕분에 피렌체는 내게, 가족들과의 여행 추억 그리고 한 남녀의 러브스토리가 함께 떠오르는 사랑의 도시 그 자체가 되었다.

2015년 겨울, 피렌체


여행의 일상에서 음악은 때로는 평범함을, 때로는 특별함을 선사한다. 여행지에서 내가 원래 즐겨들었던 음악을 들으면, 아무리 지구 반대편의 어느 곳이라도 친숙한 기분이 들며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린다. 도쿄의 사람들이 내 이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비엔나의 가게들이 내 단골가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행 속에 내 평범한 일상의 색채가 입혀지는 것이다.

반대로 여행지에서 유독 그때 그 곳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음악을 우연히 듣게 되면 여행의 경험이 더욱 특별하게 기억되기도 한다. 여행이라는 것은 곧 기존의 내 일상과는 다른 특별한 시공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인데, 이 경험의 배경에 음악이 함께함으로써 그 경험은 더 오래 기억될 특별함으로 내 몸과 마음에 각인된다.



편지와 음악이 만날 때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때 음악을 듣곤 한다. 편지를 쓰는 동안 그 편지를 받을 사람 한 명에게 집중하게 되는데, 그 시간이 소중하다고 생각해 음악과 함께 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가끔은 편지 내용에 내가 어떤 음악을 들으면서 편지를 쓰고 있는지 적어 알려주기도 한다. 상대방이 그 음악을 들으면서 내 편지를 읽어주면 더 좋겠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어서다. 지금 떠올려보면 누구에게 편지를 쓸 때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편지를 쓰는 그 시간 만큼은 음악과 함께 그 순간에 충실했을 것을 알기에 괜찮다.




이렇게 음악은 책, 여행 그리고 편지와 만나 그 경험을 더 빛나게 한다. 참 조화로운 언어임에 틀림없다. 이외에도 음악은 세상의 여러가지 경험을 더 의미 있는 경험으로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그 속에서 나는 내 마음속에 있던 생각과 감정을 여러 방식으로 찾아갈 수 있다. 음악이라는 언어를 통해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것들, 그것들이 다양할수록 내 일상 더 나아가 삶은 꽉 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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