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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영 Mar 21. 2020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불편하지만 직면해야 하는 이야기

너무나도 불편하지만 직면해야만 하는 이야기. 텔레그램 n번방(이하 n번방) 사건은 경악스럽지만, ‘강간 문화(혹은 여성 혐오 문화)’, 자본주의, 그리고 기술발전이 결합한, 예측 가능한 결과는 아니었을까.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공모했다

n번방 범죄에 공모한 사람은 약 26만 명이라고 하나(공모자 대부분이 남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 하에 이야기하자면), 이 수치가 ‘계정 수’라면 입장권 비용도 비싸고(가장 비싼 방 150만원), ‘야동이나 불법 촬영물을 공유하고 품평하며 함께 즐기는’ 문화에서 성장한 남성들이 1/n해서 구매했을 가능성이 높을 테니, 26만도 최소 추정치일 뿐이다. 26만 명이면 대략 경기도 하남시 인구수라고 하며, 인터넷을 전혀 할 수 없는 기어 다니는 아기나 노인 인구까지 포함해도 한국남성의 1% 정도에 해당한다(수치에 대해 의견들이 분분하긴 하나, 한 아이디로 구매 후 영상 공유가 가능하니 26만이라는 수치도 의미가 없어진다). 문제는 이 수치가 n번방 범죄에 공모한 사람들의 숫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크고 작은 ‘n번방’ 범죄가 발생하고 있는 플랫폼(ex. 디스코드)이 여럿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니, 이런 종류의 비인간적이고 끔찍한 온라인 성범죄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한국 남성들이 상당히 많다는 이야기다.     


단순한 괴물화는 위험하다

이들이 전부 ‘소시오패스’는 아닐 것이다. 이들을 단순하게 괴물화하는 방식으로 구분 짓고 넘어가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다. “호기심에 n번방 들어가서 눈팅만 했는데 처벌받나요”라는 기사에서, n번방 ‘관람자’ 한 명은, 내가 생각하기에 스스로를 ‘야동 보는 평범한’ 남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호기심’에 조금 선을 넘어버린 사람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익명으로 자신의 남친이 n번방에 들어갔었다는 한 여성에 의하면, 그 남자는 피해자들이 “자기들이 원해서 그런 거”라고, “남자들이 다 정당한 돈 내고 소비한 거고 애들은 돈 받았을 거(=그런 일을 당하는 것을 내심 원하지는 않았더라도 돈을 받았으니 쌤쌤이다)”라는, ‘하드코어 야동(실상 성 학대 영상일 가능성이 높은)’을 소비하거나 성매매를 하는 남성들이 동원하는 합리화 논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통의 도덕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잘못된 일임을 알 수 있지만, 착취당하는 아이들과 성인 여성들은 ‘그래도 되는’ 존재로 만들어서 일말의 찝찝함을 눌러버렸을 것이다. 아마도 26만 중에 겉보기에 범죄자 같지 않고 평범한 얼굴을 하고 살아가는, ‘야동(실은 상업물과 불법성착취물이 어지럽게 뒤섞인)’에 의해 온라인 성범죄에 점차 무감각해지도록 학습된 남성의 비율이 상당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든다.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오지 않았다

n번방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데 가담한, 대부분 남성인 가해자들의 연령을 주목해보면, 24-25세이다(‘갓갓’은 10대라고 한다). 다크 웹에서 아동 성착취물을 유포한 손정우도 20대 초반이었다는 사실이 묘하게 공명한다(19-22세까지 범행. 현재 24세). ‘관람’만 하거나 소극적으로 관여한 남성의 연령은 10대 후반에서 30대가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n번방 ‘박사’가 잡힌 후 법률카페에 조언을 구하는 18-19세가 많다고 한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유형의 범죄를 저지르고 공모한 이 젊은 남성들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오지 않았다.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야동'

이른바 초고속 인터넷 세대부터는 인터넷을 통해 범람하는, 거대 자본을 가진 포르노 산업이 군비경쟁하듯 점차 하드코어하게 만들어 내는 ‘야동’을 더욱 손쉽고 싼값에 접할 수 있게 되었다. 2010년 게일 다인스가 저술한 <포르노랜드: 당신이 웃어넘긴 야동의 실체>를 보면, 무려 10년 전인데도, 인터넷을 통해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야동’의 수위는 이미 장난이 아니다. 지금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몇십 원에도 극강으로 하드코어한 ‘야동’을 볼 수 있다. 더욱 문제인 점은 남자라면 성적 호기심을 느끼고 채우는 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야동’을 접하는 남아의 연령이 매우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야동'에 반복 노출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

성에 대한 가치관이 채 싹트기도 전에, “폭력과 학대로 가득한 섹스를 당사자 모두에게 깊은 만족감을 주는 섹시한 것으로 묘사하는 이미지들에 반복해서 노출된다(<포르노 랜드>)”. ‘야동’을 보면 여자는 이미 ‘노예’나 다름없다. ‘야동’에서는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실험하는 것처럼 여성의 몸을 가학적으로 다루는 행위가 많이 나오는데, 처음 접할 때는 충격적일 수 있으나, 여성에게서 성적 흥분과 관련된 신체 반응이 나타난다거나 이러한 가혹 행위에 여성이 어느 정도 협조하는 태도를 보일 때, 여성의 얼굴 표정이나 신체 반응에서 드러나는 고통과 관련된 정보는 무시할 수 있게 되고, 결국 여성들도 가학적인 것을 좋아한다고 합리화하며 별다른 죄책감 없이 영상을 즐길 수 있게 된다. 행위가 더욱 가혹해질수록 여성이 해당 행위를 즐기는 것 같아 보이는 구석도 함께 줄어들지만, 이미 점차 하드코어한 영상을 찾아보면서 여성의 고통에 대해 무뎌질 대로 무뎌지고, 여성들은 가학적인 것도 좋아한다(원래 마조히즘 취향이 있거나, 순진한 척해도 결국 ‘걸레’ 본성이 있기에 함부로 다뤄지는 것을 좋아한다 등)는 생각이 굳건해진 상태에서, 결국 ‘돈 받고 몸 파는 행실 나쁜 년’이기 때문에 불편함이나 고통을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야동’의 남성들도 여자를 함부로 다루고 ‘걸레 같은 년’이라는 추임새를 넣어 주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기 쉽다). 이러한 의식적/무의식적 합리화는, ‘야동’을 보며 성적 흥분을 하며 즐기는 자신을 괴물처럼 느끼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점점 리얼하고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단조롭고 정형화된 ‘야동’의 스토리나 이미지는 어느 정도보다 보면 더 이상 자극을 느끼지 못해 점점 ‘리얼’하고 ‘자극적(폭력적)’인 ‘야동’을 찾게 된다. 리얼함 쪽을 추구하다 보면 스튜디오에서 각본에 따라 만들어지지 않은, ‘일반 여성‘이 나오는 온갖 불법 성착취물에 도달하게 된다. 자극적이고 학대적인 쪽을 추구하다 보면 여러 단계를 거치겠지만 종착지는 결국 아동 성착취물이다. 가장 약하고 순수하게 여겨지는 대상을 지배하고 파괴하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리얼함과 자극성은 배타적이지 않고 서로 상승작용을 하는 관계로, 리얼할수록 자극적이고, 자극적일수록 리얼해 보인다. 야동을 보는 사람들의 ‘취향’이란 것은 이 두 스펙트럼의 어느 지점쯤에 위치할 것이다.     


사회경제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굴절된 여성 혐오

이러한 ‘야동’ 보기의 일반적인 프로세스에 매우 어린 연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을 때 도대체 어떠한 세계관을 형성하게 될지 우려스럽다. 이미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만나 공기처럼 여성 혐오를 흡수할 수 있는 사회에서, 성에 대한 대안적 사고를 접할 길 없이 여성 혐오의 ‘정수’를 담고 있는 ‘야동(혹은 ‘야동’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실은 불법성착취물)’을 수시로 보게 된다면 과연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특히 80-00년생 남성들의 경우, ‘남성성’에 걸맞은 파이를 쟁취하도록 여전히 독려받지만 실제 획득할 수 있어 보이는 파이가 적고 이마저도 여성과 반을 나눠 가져야 하는 상황에서, 계급 문제로 향해야 하는 분노가 굴절되어 여성 혐오에 더욱 불을 지피는 것으로 보인다. 단톡방에서 이루어지는 여성 외모 품평이라든지 영상조작기술(딥페이킹)을 이용한 ‘지인 능욕’, 동급생이나 동료를 대상으로 불법 촬영을 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여혐적 사고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행위인 것 같다. 동급생인 ‘저 X’은 나와 선의의 경쟁 상대라기보다는 ‘따먹힐 X’이나 ‘줘도 안 먹을 못생긴 X’으로 비하된다. 여자 담임선생님도 페티시 영상물에 등장하는 ‘제자 유혹하고 따먹히는 X’ 일뿐이다.     


예견된 일이었다

매우 리얼하고 자극적인 ‘야동(실은 불법성착취물)’에, 채팅, 게임, 유튜브 등에서 재미를 본 상호작용적인 요소까지 더해, 많은 돈과 뒤틀린 유명세를 얻고자 한 10-20대가 기획하고, 같은 ‘야동(불법성착취물) 세대’가 공모한 것이 바로 n번방 사건이지 않을까 싶다. 젊은 남성 범죄자들은 취약한 아동 청소년 및 성인 여성 피해자들을, 성폭력 범죄와 함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그루밍과 협박을 동원하여 점차 비인격적이고 가혹한 행위를 ‘자발적으로’ 하도록 내몰았다. 가혹 행위는 모두 ‘야동’에서 배운 것들을 이래저래 조합한 것으로 보이며, 그런 의미에서 ‘야동’은 범죄자들에게 좋은 ‘교본’이 된 것 같다. 심지어 피해 여성을 가해자로 만드는 극악무도함까지 보였다. 이러한 잔인함이 완성될 수 있었던 건 바로 ‘관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호기심에 눈팅만 했다'는 n번방 범죄자의 발언은 다른 유형의 성범죄자들에게서 너무나 흔히 듣던 변명 아닌가. 모든 ‘야동’ 이용자가 성범죄를 저지르는 건 분명 아니지만, 야동(포르노)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비정상적이며 용인될 수 없다고 규정하는 사회의 규범을 갉아 먹(<포르노랜드>)”으면서 성범죄 가능성이 있는 남자들을 범죄행동을 하도록 동기화하는 역할을 하고, 성범죄 피해자에게 낙인을 찍어 계속 무력하게 당하거나 피해 사실을 고발하기 어렵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거나, 성범죄자에게 관대한 처벌을 내리게 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기여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문제의식이 없다

n번방 ‘관객’들 중 많은 수는 자기가 보는 게 '야동'인데, 좀 '심한 야동'을 본 것일 뿐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들은 이미 하드코어한 야동에 단련되고 무뎌져 새로운 자극을 찾고 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내가 직접 저지르는 행위도 아니고, 나는 그저 내 방 모니터 앞에서 수많은 동조자들 틈에서 그저 추임새 몇 번 나누고 딸이나 치고 있는 한 사람일 뿐이다.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공감 능력이나 양심 같은 것은 그 순간 먼지처럼 흩어져 버리고, 익명성 뒤에서 폭력성을 더욱 극대화하여 표출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 n번방 ‘박사’가 잡히는 바람에, 일부는 사회적 가면을 챙기기 위해 텔레그램을 탈퇴하고 법적인 자문을 구하는 중이다. 그러나 일부는 여전히 어차피 잡힐 가능성도 낮고 잡혀봤자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질 것이니, “좀 풀고 뒤지던가 개ㅅㄲ가(박사)”라고 욕하며 아쉬움을 표현하거나, 새로운 활로를 뚫어 다시 범행을 이어가고 있다.  


선 긋기 하지 말자. 우리 모두 공범자다

사실 n번방 사건이 대대적으로 주목받기 전부터 이미 유사 n번방 사건이 여러 형태로 존재했다. 가해자의 연령은 어려지고 있고 가해의 잔혹성은 심각해지고 있으며 어린 연령의 피해자들이 매일 쓰는 스마트폰을 통해 너무나도 쉽게 범죄 피해에 연루되고 있다. 더이상 나쁜 놈들 일부가 저지른 짓이라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런 세상에서는 더 이상 아이들을 키울 수 없다. 피해자의 고통에 감정을 전혀 이입할 이유도 없고 방법도 모르는 중장년층 국회의원과 법무부 차관의 망언을 듣거나(딥페이킹 영상 제작 후 배포하지 않았을 경우에 대하여, 정점식 미래통합당 의원은 “자기만족을 위해 이런 영상을 가지고 나 혼자 즐기는 것까지 갈(처벌할) 것이냐"라고 하였고,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은 “자기는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 있다”라고 하였으며, 김오수 법무부 차관은 “청소년이나 자라나는 사람들은 자기 컴퓨터에서 그런 짓 자주 한다”라고 한 바 있다), ‘보통의 도덕관념을 가지고 있는’ 젊은 남성들도 여성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약한 분노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맥이 탁 풀린다. 그러나, 우리 선 긋기 하지 말자. 방관한 우리 모두 ‘강간 문화’를 만들어낸 공범자다. 모두 적극적으로 반성하고 분노해야 일말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곁에함께심리상담센터 대표/ 임상심리전문가 백소영


덧붙여,    

1. ‘야동(상업물과 불법성착취물이 어지럽게 뒤섞인) 보기’가 이미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람들은 자신의 ‘야동 보기’ 행위를 계속 이어가기 위한 논리를 이미 가지고 있고, 이것이 위협받아도 다시 그 논리를 공고하게 구축하기 위한 의식적/무의식적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더불어, 불법성착취물을 제외한 성 산업에서 돈 받고 촬영하는 상업물은 괜찮지 않나 싶은 사람도 있겠으나 그것도 역시 한 번 고민해 볼 일이다. 일본 AV와 관련된 다음 영상이 도움이 될 것이다(youtube: 내가 좋아서 AV 배우가 된 거라고? [내가 팩트다] 성(性)진국의 진실). 성과 관련된 대안적 생각들을 의도적으로 접하려는 노력이 그래서 중요하다. 노력하지 않으면 변화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게일 다인스의 <포르노랜드>를 추천한다(참고로, 해당 출판사와 편집자보다는 저서에 대한 아마존 리뷰를 보고 구매했다).      

 

2. ‘야동 중독’으로 인한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으나, 남성이 야동 보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와, 어떤 ‘야동’을 보는지 정보를 공유하고 품평하는 것 외에는 ‘야동’ 때문에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쉽게 털어놓지 않는 남성연대 문화 속에서 이러한 남성의 피해는 가시화되기 어렵다. 이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참고자료:

‘텔레그램 n번방’ 성범죄, 이번엔 ‘디스코드’서 버젓이 활개

https://m.khan.co.kr/view.html?art_id=202003181425001&code=940100&utm_source=facebook&utm_medium=social_share&fbclid=IwAR2WA9kAk0wljXDDS0qVd7uUAHyrqU9CrN-L3snOG11rVIBXhazX7Yr0HmY#c2b

    

[n번방 추적기①] 텔레그램에 강간 노예들이 있다 (4편까지 있음)

http://m.kmib.co.kr/view.asp?&amp;&amp;&amp;-MGOoNr3c


"예술작품이라 생각하고 만들 수 있지 않냐" 딥페이크 처벌법 만든 고위공직자들의 안이한 현실인식

https://news.v.daum.net/v/20200318210413765?fbclid=IwAR2Coi-mTggVXhxW0EB1DaaA4vFyx64jjoZhM8NHCjKxlHz8asj9N6QbU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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