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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영 Jul 11. 2020

부당한 침묵의 강요를 반대합니다

#박원순시장을고발한피해자와연대합니다

우리가 표리부동함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

겉과 속의 다름, 말과 행동의 불일치, 공적자아-사적자아의 불일치 등과 같이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정보가 주어져 일관된 해석이 불가능할 때, 강렬한 부정적 감정이 유발되면서 우리는 이러한 정보의 불일치를 줄이는 방식으로 사고하거나 행동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확증 편향, 인지부조화와 같은 용어들이 이러한 경향을 설명하는 개념들이다(정보가 도저히 통합되지 않을 때 분할[splitting]이라는 무의식적 방어기제를 동원하기도 한다).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예측하는 일이 생존에 적절한 행동을 선택하는 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무언가 일관되게 이해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우리의 마음에 혼란스러움, 통제감 상실, 실망감, 배신감 등의 위험 신호가 울린다. 그래서 더 나쁜 행동을 더 많이 한 사람을 더욱 미워해야 ‘합리적’일 것 같은데, 예측 가능한 '나쁜 놈'보다는 '기만적인 놈'을 오히려 더 싫어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인지부조화가 야기한 결과: 피해 의미 축소하기

여기 도덕적/윤리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선점하고 존경받아왔던 한 사람이 있었다. 얼마 전, 그가 표방했던 가치와 정확하게 모순되는 행동을 오랫동안 해왔으며 피해자의 고소 사실을 접한 후 하루 만에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표리부동함에 죽음이라는 사태까지 얹어지자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형태로 황망해하고 있다.


우려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고인에 대한 긍정적 감정을 유지하고 정보의 불일치를 해소하고자 하는 의식적-무의식적 노력의 일환으로, 피해의 의미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정보의 간극을 좁히고 있다.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1) '죄는 있으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죄는 있으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입장에서는 죄가 있음을 언뜻 인정하는 듯하나 가해 행위를 인간적인 결점 정도로 축소 해석한다. 어떤 여성 학자는 ‘순수주의 열망의 위험(고인을 악마화하지 말라)'과 같은 어려운 철학적 개념들을 열거하며 고인의 성범죄 행위에 물타기를 시전한 바 있다. 흑백 논리에 빠지지 말라고 하면서 고인이 여성운동에 기여한 바에 대해 큰 무게를 싣고 성범죄 행위를 사소화한 것이다.

2) '죄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죄가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입장은 얼핏보면 가장 중립적인 것도 같다. 그러나  ‘무죄추정의 원칙’을 들먹이며 가해 여부에 대한 판단을 장례가 끝난 후에, 아니 영원히 보류하자고 한다.

3) '죄가 없다'

'죄가 없다'는 입장이 가장 답이 없다. 고인을 심지어 인간적인 결점(성범죄 행위)조차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한 '순수한' 사람이라며 죽음을 오히려 결백함의 근거로 여기고 있다.


이 세 입장에서 크고 작게, 여성운동의 정신과 역사를 폄훼하는 방식으로 복잡한 현 상황에서 유발되는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고 있다.


중립을 지키는 척하면서 방관자가 되지 않겠다

고인의 죽음은 실로 무겁다. 실존적으로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죽음이라는 무게, 가족을 잃은 유족의 심경까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애도 행동이 어떠한 행동보다도 도덕적 우위를 점한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죽음을 앞세워 부당하게 침묵하게 하거나 폭력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어디선가 숨죽이고 있을 피해자의 목소리를 빼앗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무참히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는 절대적인 진리나 선은 없다며, 완벽한 사람은 없다며 중립을 지키는 척하면서 사안의 핵심을 흐리는 방관자가 될 생각은 없다. 특정 맥락에서 상대적으로 더 설득력 있고 더 선한 입장은 있다고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고자 한다. 당신들이 개인적으로 애도하고자 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당신들의 공적인 발언이 지금 이 순간 숨죽이고 있는 피해자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피해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한 번 더 생각하기를 바란다.


한국임상심리학회 공인 임상심리전문가 백소영

#박원순_시장을_고발한_피해자와_연대합니다


다음은, 피해자 김잔디 님이 출간한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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