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랜드>를 읽고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 사례 중 남자 청소년이 가해를 하고, 가해 방식이 어른들 못지않게 교묘하고 폭력적인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교실 내에서 함께 공부하는 여자 친구들이나 여자 선생님들을 불법촬영하는 일도 흔해졌으며, 이들을 능욕하는 일은 이제 일상적인 놀이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일부 성에 호기심이 많은 남자 청소년들이 선을 넘어버리는 사건"이라고 하거나, 이를 규탄하는 목소리에 대해 ”성범죄는 반대하지만 이번 일로 남녀 갈등을 조장하지 말라“고 발언하는 것은, 현 사태가 구조적인 문제(강간문화)에서 기인한다는 인식을 흐려 구조적인 문제를 공고화/악화시키는 데 일조하는 일이다. n번방 사태에서 주동자의 일부, 아마도 많은 공모자들이 남자 청소년들이라는 점은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의 편린을 보여줄 뿐이다. 앞으로 강간문화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더불어, 해당 범죄들을 처벌하기 위한 법률 개정과 범죄자들에 대한 법의 엄중한 적용이 없다면, 미래는 없다. 지금 나오는 판결들을 보면 자식 낳아서 키우기는 어렵다는 확신이 든다. 성범죄자를 만들게 되든가 성범죄피해자를 만들게 되든가 할 테니까.
특히 강간문화에 공모하는 주된 세력은 포르노 산업이며, 이러한 점들에 대해 잘 짚어 주는 책이 게일 다인스의 <포르노 랜드>이다. 10년 전에 나온 책이고 최근에야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인데, 작금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너무나 도움이 된다. 포르노 산업의 확장이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하드코어 포르노가 ‘정상화’되면서 어떠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잘 기술이 되어 있다. 이 책이 n번방 사태를 정확하게 예견하고 있지는 않으나, 이 책을 읽으면 n번방 사태에 어떻게 일어나게 됐는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포르노가 곧 강간범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이렇게 단순화된 주장을 하고 있지 않다), 포르노가 강간을 용이하게 하는 문화를 형성하고(피해자들에게 낙인을 찍어 범죄피해사실을 고발하기 어렵게 만들고 가해자에게 관대한 처벌을 하는 문화 등), 성범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의 경우에는 범죄를 동기화하고 범죄를 실행하는 데 교본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이제 남녀노소 누구나 손쉽게 하드코어 포르노에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은 무얼 말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내가 3월 21일에 brunch에 글을 쓴 바 있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IT 강국이라 아이들 손에는 죄다 스마트 폰이 쥐어져 있고, 불법성착취물로 돈 벌려는 인간들이 너무나도 많아 성착취물 플랫폼은 성황을 이루고 있으며, 성범죄에 지나치게 관대한 나라라 성범죄를 저질러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은 아이들도 다 알고 있다. 우리나라는 성범죄 행동에 대한 문제의식 없는 청소년들을 배양할 수밖에 없는 인큐베이터나 다름없다. 매우 어린 연령부터 개입이 필요한 이유다. 이런 문제에 대해 남자들의 성욕 어쩌구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연령과 관계없이 교육이 필요하다. 지금은 성정체성, 성적지향성, 계급, 인종 등과 상관없이 동등한 인간으로서 서로를 존중할 수 있도록 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한편, 최근 이 책을 읽고 나니, 저자가 현 n번방 사태를 어떻게 볼지, 대충 짐작은 갔지만 궁금하던 차에 시사저널에서 마침 저자 인터뷰를 발견하니 반가웠다. n번방 사태에 대한 저자의 관점에 동의한다. 기자의 한 질문인, “이른바 '빨간 비디오'를 찾는 건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라는 질문이, 강간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방증하기는 하나, 많은 이들이 그런 의문을 가질 것 같아서 다른 의미에서 좋은 질문인 것 같다. 일독을 권한다.
"당신이 즐겨 보던 '포르노'가 'n번방'을 낳았다" (naver.com)
곁에함께심리상담센터 대표 / 임상심리전문가 백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