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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영 May 10. 2022

연결감을 촉진하는 안전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

생애 최초의 관계의 중요성

생애 초기에 아이가 최초로 깊은 관계를 맺는 대상이자 아이의 관점에서 세상 그 자체이며 절대적 권력을 가진 사람은 바로 양육자다. 매슬로의 욕구 위계에 따르면 사회적 욕구는 생리적 및 안전 욕구가 채워진 후에야 추구되는 후순위 욕구로 개념화된다. 그러나 생애 초기 양육자-자녀 관계에서 아이가 양육자에게 근접성을 유지하고 접촉하려 하며 관심을 유도하는 등 양육자와 애착 관계를 형성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면 사회적 욕구를 생리 및 안전 욕구보다 위계적으로 낮은 욕구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는 양육자와의 최초의 안정되고 친밀한 관계를 통해 배부르고 등 따습게 지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누구이고 타인과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알아가며 감정을 조절하고 타인과 조화롭게 지낼 수 있는 기초를 형성한다.     


우리는 끊임없는 연결을 추구하는 사회적 존재

어릴 때 건강한 애착 관계를 형성한 이후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느낀다. 외로움을 잘 타지 않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조차 어떤 형태로든 연결감을 추구한다(혼자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행동, 동물과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연결감을 충족하는 한 방식일 것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우리는 협력할 때 더욱 잘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었기 때문에 관계를 맺거나 집단에 소속되려고 하는 등 끊임없이 연결을 추구하는 사회적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연결감이 충분히 충족되지 않았을 때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로 외로움을 느낀다. 내 몫만 영리하게 챙기면서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연결되고 나눌 때 역설적으로 더욱 잘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존재와 충만하게 연결될 때 안전함과 안정감을 느낀다. 안전하고 안정되었다는 것은 곧 불필요하게 방어하거나 경계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러한 상태일 때 개인적으로도 호기심, 창의력, 연민 등 긍정적 역량을 더욱 잘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다.     



연결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 안전한 환경

그러면 어떠한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과 긴밀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을까? 특히 연결과 연대를 촉진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떠한 개인적인, 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할까? 타인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안전한 환경이 선행되어야 한다. 안전해야 연결될 수 있고, 연결되었을 때 연결된 구성원들이 안전함과 안정감을 바탕으로 관계 맺기를 더욱 촉진하고 각자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긍정적인 연쇄 고리가 만들어진다.     


여성과 남성으로 성별이 나뉘고 이성애 일대일 관계가 관계의 규범인 사회에서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불쾌한 시선이나 비난, 멸시를 겪는가 하면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당하거나 물리적 위협이나 상해를 겪는 등 여러 형태의 폭력을 경험한다. 규범적 시각이나 고정관념, 이것 아니면 저것 등으로 빨리 파악되지 않는 사람들은 존재 그 자체로 불안감(인식론적 혼란, 질서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 등)을 야기한다. 이들의 존재로 인해 촉발된 불쾌한 감정들은 날 것 그대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들’의 ‘틀림’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논리적’ 목소리(혹은 신앙에 근거한 목소리)로 표현되기도 한다.     


다양성을 포용하는 사회가 안전한 사회다

나는 규범에서 벗어나서 인지적 복잡성과 불안을 야기하는 존재를 배제하기보다는 포용하는 사회가 안전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규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은 다차원적인 존재로, 수학적으로 따져봐도 모든 차원에서 규범에 들어맞는 ‘정상성’을 갖추기는 어렵다. 예를 들자면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금은 대체로 규범적인 범주에 들어서(드는 척해서) 큰 불편함 없이 살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또 모른다. 사고를 당하거나 몸이 아파져서 이동에 제약이 생긴 후에야 왜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출퇴근 지하철 운행을 막고 ‘사지 멀쩡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정상인’에 맞춰진 대중교통, 시설 등에서 이동권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나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내가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다름과 차이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상성’을 벗어날 때 여러 형태의 폭력이 정당화되는 사회는 절대 안전하지 않다. 차별금지법이 시급하게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고정관념 대로 살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다양성과 다름을 인식하고 존중하려 ‘노력’한다. 노력한다고 표현한 이유는, 주어진 조건대로 큰 고민 없이 사는 것이 익숙하고 편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규범적 사고나 고정관념대로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반응하는 경향이 여전히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간과 여력이 한정된 상황에서 당장 내 이익과 크게 관련이 없는 주제에 대해 깊게 이입하기는커녕 생각하는 것 자체가 피곤할 때가 많다. 나와 크게 연관은 없더라도 크고 작은 계기가 주어져서 다양성과 다름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될 때가 있지만, 이러한 생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쉽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행태에 대항하여 행동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지정 성별 여성이기도 하고 트라우마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을 지원하는 일도 했었기에, 한때는 성 차별이나 폭력 관련 이슈에 상당히 몰두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숙한 태도이지만 당시에는 문제가 이렇게 명백하고도 만연한데 모르는 듯하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는 듯한 주변 사람들에게 언짢은 마음을 품거나 직언을 하여 상처를 준 적도 있었다. 생각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가 주변에 없어서 페이스북이 안식처가 되었고 나중에는 그러한 공동체를 찾아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프리랜서 상담사로 전향하고 주변을 돌보기 어려울 만큼 먹고사니즘에 바빠진 후에는 열기가 상당히 많이 빠졌다.


당장의 관심사와 맞아떨어지지 않거나 에너지가 없으면 노력을 게을리하게 되고 여전히 굳건한 고정관념에 따라 반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최소한이지만 관련한 책을 찾아 읽고 생각하고 글을 남기려는 노력을 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 하지 않았나. 거창하게 사회운동까지 하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본다.


곁에함께심리상담센터 대표/ 임상심리전문가 백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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