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의 <부모의 마음>
나는 결혼한 모든 커플이 자녀를 낳거나 양육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 자체도 그렇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어떠한 경험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숭고하고 위대한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일 자체의 고유성과 의미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출산과 양육이 '고유한 경험이다'라는 함의를 넘어서 마치 모든 경험 중 가장 우월한 경험인 양 이를 겪지 않으면 '인생을 다 알지 못한다', '인생의 최고의 행복을 정말 알지 못한다'는 식의 태도를 경계한다.
경제적 이유, 신체적 이유, 어떤 이유에서든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없는 사람도 있고, 의도적으로 혹은 어쩌다 보니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은 사람도 있다. 단지 모두가 할 수 없는 경험이기에 무신경하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싶지 않아서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어떤 경험'을 하느냐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어떤 태도'로, '어떻게' 하느냐가 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이를 낳거나 키우면 그런 경험을 하기 전이나 하지 않을 때보다 개인 차원에서 '부모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더 잘 알게 되는 기회가 많다. 출산과 양육이 내 문제가 되면 이전에는 크게 생각하지도 못했던, 굳이 알 필요가 없었던 여러 다양한 경험들에 직면하여 느끼고 생각할 기회가 훨씬 많이 주어진다. 일회성 이벤트나 원할 때 시작하고 중단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라 그야말로 무를 수 없고 장기간 지속되어야 하는 '생활'이 되기 때문이다. 임신이나 양육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일시적인 직접 경험과 다양한 간접 경험으로 어느 정도 알 수 있지만, 정말로 내 책임이 되어 경험해 봐야 보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다만, 임신과 출산, 양육이라는 경험이 생활이 되어 당연해질 때, 자신의 경험이 전부인 양 타인에게 판단적인 태도를 보일 때 그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고유한 의미가 퇴색되고 오히려 개인의 성장에 역행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원래 사람은 무언가가 일상이 되면 당연하게 여기게 되어 있다. (얼마나 빠르게 당연히 여기게 되는지는 개인차가 있다.) 감각 자극 차원에서도 같은 자극이 반복되면 '습관화'가 이루어져 전보다는 여기에 무뎌진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적응 기제다. 같은 것이 매일, 매 순간 새롭다면 정보처리에 과부하가 걸릴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 어렵다.
아이를 출산하고 커가는 모습을 볼 때, 특히 그 변화가 눈에 많이 띌 때, 충만한 기쁨과 환희, 감사함을 더 자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이 되면 어느덧 그 모든 게 당연해진다. 더 이상 부모됨이 기쁨이나 성장의 계기가 크게 되지 못한다. 양육은 배경(background)으로 물러나고 기존의 자기 이슈가 전경(foreground)에 빈번히 떠오른다. '너무 좋지만 너무 힘들기도 한' 양육 경험이 안기는 고통이 가중되면 이런 시련이 아니었으면 몰랐거나 경험하지 못했을 자신의 부족한 모습이 나타나면서 아이를 방임하거나 학대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요즘 한창 방영 중인 <이혼숙려캠프>라든지 <고딩엄빠> 등의 프로그램들을 조금이라도 시청한 사람은 알 것이다. 방송이 아니더라도 사실 이런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자신이 받은 양육 경험을 돌이켜 봐도 좋다.)
부모됨이 가져오는 어려움이나 위기는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힘들긴 하지만 시련을 통과하면서 성장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아이가 없었더라면 결코 마주치지 않았을 나의 밑바닥을 보면서 실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가 나의 성장을 돕는 존재로 여기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 자꾸 넘어지고 깨지겠지만 그 과정에서 분명 성장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점들이 있을 것이다. 아이가 갑자기 아프거나 말썽을 부리기 시작하면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원래 당연하지 않구나를 뼈저리게 통감할 기회도 생긴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어진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감사함을 느끼고자 하는 의지를 다지게 될지 모른다. 양육은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도약하거나 지복을 느끼는 순간을 마련해 준다.
한편, 양육의 기쁨과 슬픔을 느끼면서 자신의 경험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좋다. '안 겪어 보면 몰라.'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겪어 봤다고 다 안다는 태도는 위험하다. 우리는 이러한 이분법에 자주 취약하다. 경험은 저마다 다르다. 물론 다 달라서 공통성이 없다거나 아무런 얘기도 할 수 없다든지, 해서도 안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이것 또한 이분법). 우리가 공감이 가능한 이유는 어느 정도 경험의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자의 경험에는 고유한 측면이 반드시 있다. 그래서 아무리 유사한 경험을 했더라도 이를 의식적으로 자각하려 노력하며 타인의 경험에 대해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임신이라고 다 같은 경험이 아니다. 몇 세에 했는지, 기저 질환은 없었는지, 체질은 어떤지, 임신 중 이벤트가 있었는지,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는지, 배우자와의 관계는 어땠는지 등에 따라서 다르게 경험된다. 양육도 마찬가지이다. 외동인지, 쌍둥이인지, 형제자매가 있는지, 아이의 성향이 어떤지, 함께 양육을 도와줄 사람이 있는지, 경제적 상황은 어떤지 등 너무 많은 변수가 개입이 되면서 각자 고유한 경험을 구성한다. 부모됨을 경험한 사람끼리 유사성이 크고 아닌 사람끼리 유사성이 더 클 수는 있다. 그러나 부모됨을 경험했다고 해서 자신의 경험이 보편을 대표한다는 듯 이야기하거나 ‘알만한 건 다 안다'는 식의 태도를 취한다면 그 경험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배우지 못한 것이라 생각한다.
부모가 된다는 일은 일반적으로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어려운 일일수록 힘들지만 보람도 크고 큰 기쁨과 성장을 누릴 기회가 더 많다. 다만 그 기회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냐에 따라 기쁨과 성장의 계기가 될 수 있고 전혀 반대의 경험이 될 수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부모됨을 선택할 수 없다고 해서 그 경험을 신포도인 것처럼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각자 어떤 선택과 경험을 하든 나름대로 의미와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무엇보다도 타인의 경험에 대해 존중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할 때 자신의 경험에서 길어 올리는 의미와 행복이 더 진정성 있고 진실해진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