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굴 속으로
“모든 모험은 첫 걸음이 필요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中-
교사가 될 생각은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상담을 하던 담임 선생님이 교직을 권했을 때도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 저도 교사가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얼마나 건방진 말이었던가. 교사를 앞에 두고 교직의 지루함을 이야기하다니. 그런 내가 사범대 영어교육과에 들어갔다. 공식적인 이유라면 재수를 하며 교직의 소중함을 깨달아서다. 비공식적인 이유를 하나 더 들자면 수능을 봤는데 점수가 딱 그만큼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대외비다.
대학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술잔을 기울이며 진로를 묻는 동기들에게 내 답은 한결같았다.
“난 교사할 생각이 없어. 공부해서 다른 일 할 거야.”
이 말은 모두 동의했다. 원어민 교수님이 던진 쉬운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는 애가 영어 교사가 될 거라 믿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대학 4년은 즐거웠다. 역시 포기하면 편하다. 못 알아듣는 영어 수업 대신 ‘다른 일’에 집중했다. ‘다른 일’이 뭔지 딱히 정해둔 것은 없었다. 중앙도서관에서 어려운 제목의 책을 빌려 두 챕터 정도 읽고 반납한다던가, 학교 고시반에 어찌저찌 들어가 두어 달쯤 공부한다던가, 과 학생회를 아주 오래한다던가 하는 일 모두가 ‘다른 일’에 포함된다. 물론 저녁마다 있던 술 모임이 가장 중요한 일과였다. 그런 내가 동기 중 가장 먼저 영어 교사가 됐다. 인생은 역시 모르는 일이다.
돌아보면 갈림길은 많았다. 3학년 가을, 과 학생회장 형이 사는 술을 마시지 말았어야 했다. 마셨어도 거절해야 했다. 회장에 입후보한 사람이 없으니 니가 나가달라는 그 황당한 말을. 운동권도 아니면서 대학교 4학년에 과 학생회를 하는 미친 사람이 어디 있냐는 아주 상식적인 답을 해야 했다. 그런데 그 미친 사람이 내가 됐다. 졸업하고 공부하면 된다는 막연한 자신감까지 있었던 걸 보면 미친 사람이었던 건 확실하다.
학생회는 즐거웠다. 대학 졸업식 날까지 자신감은 충만했다. ‘공부는 이제부터 하면 되니까.’ 그렇게 믿고 웃으며 졸업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가짜였다. 집에 돌아와 내 방에 누웠을 때 현실을 실감했다.
‘실업자구나.’
졸업한 내게 남은 건 3점이 겨우 넘는 학점, 900을 턱걸이한 토익 점수, 그리고 교원자격증 뿐이었다. 학사모를 쓴 부모님의 표정이 왜 좋지 않았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다른 일’은 무슨 ‘다른 일’이냐. 허겁지겁 기간제 교사 모집 공고를 찾아 되는대로 원서를 넣었다. 다행히 결원이 생긴 자리를 구할 수 있었고 교사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 뒤로 벌써 10년이다. 그것도 교육 1번지 대치동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세상일은 알 수가 없다.
“음... 학생회를 오래 했네요?
학교는 대학교 학생회한 사람들
별로 안 좋아하는데...?”
정교사 최종 면접 때 교장 선생님의 말이 잊히지가 않는다. 운동권 학생이 아니었냐는 뜻이었을 것이다.
“저희 학생회는 심부름센터 비슷해서
사물함 배정해주고, 음식 나눠주는 일 같은 걸 주로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황당한 답이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학생운동을 나쁘게 보지는 않지만 난 소시민으로서 우당탕탕 과대표를 했었을 뿐이니까. 난 미국산 소고기도 잘 먹는다.
왜였을까? 토익 만점인 지원자도 많은데 900점가지고 괜찮겠냐고 물으셨는데. SKY출신 지원자들이 이번에 참 많았다고 이야기하던데. 어학연수 한 번 안 가고 뭐했냐고 면박을 줬는데... 난 이 곳의 교사가 됐다.
생각해보면 뽑힐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수업 시연 때 교장, 교감 선생님 이하 부장 선생님 이름으로 출석을 부른 게 참신했을 수 있다. (물론 교감 선생님 표정은 차갑게 굳었었지만..), 수업계획서로 제출한 고오급 A4용지가 마음에 드셨을 수 있다. 물론 여학생들이 설레지 않을 외모를 지녀 안심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을 것 같기는 하다.
“B선생님은 1학년 2반 담임이에요.”
내 첫 담임 반이 발표되었다. 이제 시작이다. 기대감에 부풀었다. 내가 아는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믿었으니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채 나는 토끼를 좇아 굴로 뛰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