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선생 Feb 28. 2021

교사도 입학식엔 긴장이 된다.

이상한 나라의 입학식

잉꼬는 결국 샐쭉해져서,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내가 더 잘 알지.”
라고 말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中-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약간의 설렘과 긴장에 깊이 잠을 자지 못 했다. 소풍 가는 날은 아니다. 부엌에서 엄마가 김밥 써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까. 나 역시 15살은 아니었다. 3월 2일. 개학이다. 전날 잘 다린 셔츠를 입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출근 첫날부터 지각은 안 될 말이다. 지하철에서 꾸깃꾸깃한 종이를 꺼냈다. 아이들과 첫 만남에 할 이야기를 적은 종이다. 마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 선생이 된 양 거창한 인사말을 써 놓았다. 책상 위로 올라갈 생각은 없었지만 마음만은 참 교사였다. 몇 번을 되 내어 읽다 보니 어느새 학교에 도착했다.

예술의 전당을 그대로 본떠 만들었다는 학교 강당. 무대를 비추는 주황색 조명이 꽤나 근사했다. 1층 객석은 신입생 아이들이, 2층 객석은 학부모들이, 무대 맨 앞줄에는 1학년 담임들이 앉았다. 2층에서는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긴장된 표정의 1학년 아이들은 조금은 큰 교복을 입고 무대를 조용히 응시했다. 몇몇 아이들의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귀여워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열흘 전만 해도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니 그것도 당연하다 싶었다. 그래도 근엄한 표정은 풀지 않았다. 초보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 학교는 100년이 넘는 명문 사학으로서
빛나는 전통에 저명한 인재들을 배출한...”


교장 선생님이 긴 축사로 입학식을 시작했다. 교가를 부를 때도 교장 선생님은 가장 큰 목소리였다.


‘모교 출신 교장이라 그런지 애교심이 대단하구나.’  


난 속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내 관심은 그저 떨지 않고 이 아이들을 대할 수 있을지 뿐이었다. 입학식이 끝나갈수록 내 심장은 더 빨리 두근거렸다.


‘그래.. 인중이다! 인중!’


인중만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대학교 동기가 가르쳐 준 대화의 기술이다. 남중 남고를 나온 나는 이성과 대화를 할 때면 늘 얼어붙었다. 이성이란 외국인과 외계인 사이 어디쯤의 존재라고 생각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가 영어 회화 시간에 여자 동기와 파트너가 됐다. 난 떠듬떠듬 영어를 내뱉었다. 동기 어깨너머 허공을 보며.


“하하. B야. 너 내성적이라더니 진짜였구나?
내가 그럼 방법을 알려줄게.
 
대화할 때 상대의 눈을 보기가 어려우면 인중을 봐.
그럼 꼭 눈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아.. 아.. 땡.. 아. 고마워.”


인중... 인중.....


“이제 신입생 여러분들은 담임 선생님을 따라
각 반 교실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입학식은 끝났다. 이제 나와 아이들의 시간이다. 어미를 따라오는 새끼 오리들처럼 아이들이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4층인 우리 반 교실을 놓아두고 3층에서 헤매는 내가 못 미더웠겠지만 아이들은 아무 불평이 없었다. 웅성거리던 학부모들은 좀 달랐던 것도 같지만.


아이들과 첫 만남에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키팅 선생은 무슨. 전날 적은 인사말은 잊은 지 오래였다. 시선을 돌려가며 여러 아이들의 인중을 바라본 것만으로도 내게는 성공이었다. 제대로 된 인사는 내일 하자며 서둘러 아이들을 돌려보냈다. 그날은 몰랐다. 평생 잊지 못할 첫인사를 하게 될 줄은.


작가의 이전글 내가 어떻게 교사가 된 거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