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글, 그 여자 그림. -3-

'미완성 삼십대 1권.' Book Cover Making.

by 상우

그 남자 글, 그 여자 그림. -2-에서 이어집니다.


영상통화로 진행된 3차 회의. 오브제부터 찾습니다. 영상통화 속 상대의 얼굴은 보지 않고 허공만 바라보며 그럴듯한 아이템, 색등을 열거합니다. 그러나 떠오른 어떠한 것에도 왜 그것이 미완성 삼십대의 표지 오브제가 돼야 하는지 합당한 근거를 댈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시선은 허공으로 향하고 눈에 보이는 것들부터 의식의 흐름대로 읊조립니다.


"버린 노트북... 3년 쓴 핸드폰... 떠나온 원룸... 흡연장... 아, 워커?"


"오빠, 워커!"


워커... 떠나온 연신내 원룸 흡연장에서 저는 날이 좋으면 워커를 손질하고는 했습니다. 호주에서 큰맘 먹고 거금 들여 구입한 레드윙 아이언 레인저 8111. 그 위의 먼지를 털어내고 델리케이트 크림을 발라 문지르고 슈크림을 바르고...


언젠가 어머니를 모시고 일본을 여행했을 때 캐널시티 ABC마트에서 산 호킨스 워커를 신고 떠난 워킹홀리데이. 발목이 착 감기는 안정감 때문에 호주에서도 손이 많이 갔었는데 언제부턴가 신발 밑창이 부서지며 점점 사라지더라고요. 당시엔 그 원인을 일식집 바닥청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녁에 일하던 일식집에서 업무를 끝내고 약품으로 바닥청소를 할 때 항상 워커를 신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14만 원이라는 워커치고는 상당히 저렴한 가격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약 1년 반 정도를 혹사당해 숨이 끊긴 워커를 보내주고 그 대체로 다른 워커를 구입했습니다. 그 워커가 위에 적은 레드윙 아이언 레인저 8111입니다. 고무 밑창인 호킨스 워커와는 다르게 단단한 코르크 밑창이 달려있고 가죽도 더 두껍고 단단했습니다. 한눈에 봐도 내구성이 월등해 보였지요. 물론 그 착용감은 신었던 신발 중에 최악이었지만. 호주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그 워커를 우리는 오브제로 채택합니다. 신발장에서 워커를 꺼내 사진을 찍어 Mille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Mille는 바로 작업에 들어갔지요. 그 후로 또 며칠... 3차 회의의 결과물이 도착했습니다.



한 쪽은 올바르게 끈이 묶여있고 또 다른 한 쪽은 풀어 헤쳐짐과 동시에 또 엉켜있습니다. Mille는 대비를 통해 미완성의 의미를 극대화하려 했다 얘기했지만 제 생각은 달랐기에 이렇게 답했지요.


'당초 계획대로 다른 사람들이 표지에 등장한다면 정상적인 그들과는 다른 미완성인 내 모습을 그려 넣어 대비의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오브제로 선택한 워커는 양쪽 다 오롯이 내 것. 하여, 대비보다는 온전한 미완성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 좋겠다.'


Mille는 즉시 수정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또 하루 뒤.



약 5년째 저와 함께하고 있는 워커의 모습이 Mille의 그림으로 재탄생 되어 도착했습니다. 두 가지 그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과정에서 나름 애를 먹었으나 Mille는 이미 제가 뭘 선택할지 답을 알고 있다 말했습니다. 결국 저는 보다 깔끔한 느낌의 오른쪽을 선택했고 Mille가 알고 있다던 답도 그랬습니다.


이렇게 미완성 삼십대의 표지가 완성, 같은 시기에 퇴고도 완료되어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에 성공적으로 응모하지만 아시다시피 결과는 탈락.


앞으로 글을 쓰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글을 쓸만한 명분을 잃은 것 같았습니다. '인정받지 못한 글은 앞으로도 읽히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상한 사념에 갇혀 기분이 적을 수 없으리만큼 처참했더랬지요. 소중한 취미를 지켜내지 못한 능력 없는 제가 싫어 거울도 쳐다보기 싫었습니다. 무엇보다 Mille에게 너무 면목이 없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Mille가 이렇게 말합니다. 고작 8개월 쓰고 되는 게 이상하다. 처음은 다 그렇다. 한 20번은 떨어져 봐야 한다. 그러고 나서 글을 그만 쓴다고 하면 나도 납득하겠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처음에 되는 건 실력이 아니라 운이다.'


말도 참 예쁘게 잘 하지요? 네, 저 역시도 너무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더라고요. 뭐 어쩌겠습니까. 쓰고 싶은데 또 써야지요. 사랑하는 이가 그래도 된다 하는데 또 써야지요. 쓰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요. 마침 또 다뤄보고 싶은 소재가 생기기도 했고요. 그럼 저는 다음 작품으로 7분의 구독자 여러분들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그럼에도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Mille에게 감사하며...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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