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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이윤 Jun 29. 2021

6월 29일, 수많은 영웅이 죽은 오늘을 기억하자

한국과 스페인이 영웅을 기억하는 방법

항상 궁금했었다. 왜 대한민국의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일까? 현충일이 있어서일까?

찾아보았더니, '현충일(顯忠日)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웅들을 기리고 얼을 위로하기 위하여 지정된 대한민국의 중요한 기념일'인데, 나는 이 문장에서 '지정된' 기념일이라는 것에 초점이 갔다. 즉, 실제로 6월 6일에 어느 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뜻. 그래서 6월이 호국 보훈인 이유는 6월에 정말 슬프고도 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궁금증을 갖고 있던 차, 역사적으로 6월 29일이 공교롭게도 많은 한국사람들이 죽은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2년 6월 29일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해군 6명

 2002년, 뜨거웠던 월드컵 열기를 기억하는가. 한국 vs 터키전이 열렸던 6월 29일, 모든 국민들이 월드컵에 열광하고 있을 때, 같은 시각 연평해전에서는 대한민국 해군들이 북한과 치열하게 대적하고 있었던 줄은 꿈에도 몰랐다. 뒤늦게 <연평해전>이라는 영화를 보고 알게 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환호성을 지르고 인생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을 월드컵을 신명 나게 즐기고 있을 때, 연평도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북한의 무지막지한 공격을 오롯이 받아내며 끝까지 맞서 싸우던 해군들이 있었다. 그때 당시, 이 사건에 대한 속보 또한 줄글 뉴스로만 짧게 나왔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이 날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내 자식이 망망대해에서 총알을 받아내며 죽어가는 동안, 한국의 모든 국민은 티브이 앞에서 환호성을 지르고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 1987년 6월 29일
박종철과 이한열을 포함한 28명의 열사들 (민주화 투쟁으로 대한민국 첫 직선제 통과 날)

 김윤석, 하정우, 강동원, 유해진, 여진구 등 화려한 배우들이 돋보였던 영화 <1987>. 그리고 그 영화 속에 나왔던 한 명 한 명의 민주화 열사들. 장준환 감독은 1987년에 전사한 열사들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기억할 수 있도록 이렇게 화려하게 캐스팅을 한 게 아닐까 싶었다. 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시작으로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학생들과 젊은 청춘의 영사들이 28명이나 희생되었고 마침내 항쟁의 시간을 거쳐 6월 29일에 대통령 직선제를 이루어 낸 역사적인 날이다. 이러한 영웅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이렇게 빨리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을까. 내가 저 시대에 태어났어도 발 벗고 나서서 나를 희생할 수 있었을까. 상상만 해도 아득해진다.


1995년 6월 29일
소방관, 일반 주부 등 포함, 삼풍백화점 붕괴로 502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된 날

 오후 5시 57분경. 주부들이 저녁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가장 많이 장 보러 가는 시간.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권력자들의 야욕과 욕심으로 6층짜리 건물은 한순간에 땅으로 내려앉았다.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6월 29일이 마지막이었다. 이러한 비극 속에서도 끝까지 아이를 지키고자 했던 아버지들, 가족을 생각하며 숨이 끊어졌던 주부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을 끝까지 구조하고자 했던 소방관들 등의 희생이 있었기에, 그나마 더 큰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국민 500명이 한순간에 사라진 최악의 재앙이었다.


 이 3개의 순간 외에도, 지난 몇 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또 사라졌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가 그때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다만 그때 그 자리에 있지 않아서, 더 나아가, 누군가를 대신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 덕분에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일 텐데, 나는 왜 이렇게 당연하게 살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이런 영웅들을 기억하고 기릴 수 있을까, 한국은 어떻게 이 수많은 사람의 기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 이렇게 거리 이름, 광장 이름이 길고 어려울까' 대해 불만이 막연히 있었다. 예를 들면, '도스  마요 광장', '빠세오  로스 트리스테스 거리' 이런 식이다. 그런데 스페인 언어를 배우고 역사를 배우게 되면서, 수많은 거리 이름들이 역사적인 영웅의 이름, 역사적인 사건 혹은 당시 일어났던 비극의 이야기가 담긴 이름이었다.

 특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마드리드의  구역 이름 말라사냐(Malasaña), 알고 봤더니 프랑스와 대치되었던 시절 용감하게 맞서 싸웠던 여성운동가의 이름이었다. 지금의 말라사냐는 우리나라의 이태원 느낌과 홍대 분위기를 섞은 젊은 동네로 각인되어 있고, 수많은 젊은 사람들로부터 불리는 이름이 되었다. 상상할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홍대입구' 또는 '이태원' '유관순' 혹은 '이한열' 같은 영웅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습을.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일  같다.

말라사냐 풍경 - 우리나라의 이태원&홍대를 섞은 느낌의 '힙플레이스'

 이렇듯 스페인의 수많은 거리 이름들은 이렇게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심사숙고된다고 한다. 물론 역사는 남겨진 자들의 기록이고 시대에 따라 역사의 의의나 해석이 바뀌기도 하지만(예를 들어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한 위대한 모험가이지만 인종차별주의자였듯이) 스페인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은, 거리에, 버스정류장에, 지하철역에, 광장에 등 일상 속 공간들 속에 역사적 이름과 사건을 새김으로써 그것을 기억한다. 또한 세대를 거듭함으로써 새롭게 인식되고 해석되며 각인된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서울광장', '청계광장' 등 지역명 기반의 이름이 많다. (물론 광주에 '5.18 민주화 광장'이 있다(!)  또한 최근에는 도로명 주소로 개정되면서 이태원에 '유관순길'과 같은 주소도 등장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곳이 왜 '유관순길'이어야 하는지 당위성은 직관적으로 느끼기는 힘들다.) 특히 한국의 수도 서울에는 이러한 역사 속 인물/사건이 포함된 지명을 찾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 '이한열(열사)기념관' (신촌 소재)를 짓는 것도 좋지만, 신촌역의 광장 이름 자체를 '신촌역광장'이 아닌 '이한열광장'이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지역명을 살리는 이름, 혹은 순한글을 사용한 예쁜 이름을 지명으로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이 자리에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사람을 기억해야 하는지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영웅을 기억하는 방식은 대부분이 '건축물'인 것 같다, '추모비', '위령탑' 혹은 '기념관'과 같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뭐든 건축으로 올린다. 그러나 이러한 건축물의 형태는 일상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또 공을 들여 찾아가야만 알 수 있는 곳에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녹아있지 않다. 나는 유동인구가 많은 주요 거리, 일상 속 광장들의 이름 속에 우리나라를 지킨 영웅들의 이름을 새길 필요가 있다고 본다. 스페인에서는 한 때 도로명 간판에 영웅들의 초상화를 함께 그려 붙이기도 했다. 물론 행정적, 법적으로 많은 한계들이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단한 건축물을 세우는 것보다, 그들의 업적 혹은 희생을 후손들이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이 제일 소중한 가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2021년 6월 29일, 수많은 희생을 기리며 그들의 이름을 다시 한번 찾아보고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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