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열등감, 떡볶이로 해소하다
구구단을 외느라 하루가 멀다 하고 나머지 공부를 하던 초등학교 2학년생이 부러워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같은 반 반장이었다. 그 아이는 못하는 것 없이 주요 과목도 잘했고, 체육도, 미술도 잘했다. 초등학생 수준이야 다 고만고만한 수준이었겠지만 말이다. 얼굴도 예쁘장하게 생긴데다가 똘똘하고 당차서 남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아이의 부모님은 자식의 잠재능력을 안 것인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에는 어려서 그 아이에게 무슨 감정을 갖고 있는지 판단하지 못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그 아이를 동경하고 또 동시에 질투한 듯하다.
그 아이의 생일파티에 참석하려고 애쓰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부러움을 가슴에 한가득 품고는 집에 와서 ‘나도 내 생일에 집에서 파티하고 싶다’며 먹고 사느라 바쁘고 고된 엄마를 채근해 괴롭히곤 했다. 생일파티라는 목적에 눈이 멀어 당시 엄마의 반응은 어땠는지 기억에 없다. 하지만 생일상을 차려서 친구들을 불러낸 기억은 있는 것으로 보아, 엄마는 어린 딸의 요구에 한숨 쉬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 아이의 생일상에는 주로 애들 입맛에 맞는 음식들, 시대불문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인 피자, 치킨, 케이크 같은 것들이 주를 이뤘다. 초봄이었던 그 아이의 생일이 지나고 한 달 뒤, 내 생일이 다가왔다. 생일상에는 주로 수수팥떡이나 딸기, 떡볶이 같은 엄마의 정성 가득한 음식들이 올라왔다. 9살 아이의 눈에는 자신을 위해 차려진 생일상이 자랑스럽기 보다는 치킨과 피자의 부재에 대해 궁금해 했던 것 같다. 생일상에 맛있는 음식들이 더 많이 올라왔으면, 하고 한편으로 아쉬워하면서 나는 상에 올라와 있던 국물이 자작한 떡볶이에 작은 위안을 삼았다.
그것은 보드랍고 말랑말랑한 밀떡이 들어간 국물 떡볶이다.
현대인들이 섭취를 줄이려고 애쓰는 MSG와 비만, 당뇨의 주범 중에 하나인 설탕이 한 데 어우러져 감칠맛을 낸 그런 떡볶이.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파는 국물이 찐한 떡볶이가 아닌, 오래 끓이지 않아 떡에 간이 덜 밴 밀떡을 국물과 함께 먹는 그런 떡볶이 말이다. 초등학생의 입맛에 맞춘 달달하고 매콤한 국물 떡볶이. 당시 생일파티에 참석해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금세 누가 왔는지 잊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국물 떡볶이의 맛은 아직도 기억하고 즐겨 찾는다. 그것은 맛있는 떡볶이에 그치지 않고 어린 마음에 생긴 열등감을 달래줄 소박하고 소중한 위로였기 때문이다.
생일상에 올라오던 수수팥떡이 10살이 되도록 건강하게 잘 자랐다는 의미로 11살 아이의 생일상에서 사라졌다. 생일파티에 오던 친구들이 바뀌다가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을 부르는 연례행사도 사라졌다. 유일하게 생일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올라온 떡볶이를 열다섯 번 정도 더 먹고 나서, 나는 그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때 나는 취업준비를 하는, 열등감을 치덕치덕 칠한 카페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그 아이를 보고 한눈에 알아보았지만, 회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다듬고 한참 뒤에야 그 아이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그 아이는 변함없이 당당했다. 의사가 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 아이는 수능을 망쳐 이름 모를 대학에 입학하고, 이름 모를 인터넷신문 기자를 하다가 백수가 되었다고 했다.
나 또한 그저 대기업에 취직하려고 애쓰다 실패한 졸업유예자임을 얘기하며 그 친구를 위로했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은 오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어른들이 툭하면 이야기 하는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가 그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적용된 것이다. 약간은 허무하면서도 어쩐 일인지 나만 뒤처진 것은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무엇이든 잘하고 모두의 기대감을 샀던 아이, 그 아이도 노력과 능력에 대한 보상을 다 받지 못했나보다.
그런 생각 끝에는 그 아이, 혹은 학창시절을 보내며 그 아이와 비슷하게 잘난 아이들을 보며 느끼던 열등감이 어쩌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 아이와 내가 평균적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했을 때, 앞으로 또 어떠한 변화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긴장이 되기도 했다. 출발점이 다르다 생각했고 경유하는 과정은 비슷한 듯한데, 결승지점에서는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자만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남과 비교하며 자책하지 않으려는 노력 또한 하고 있다. 사람이 노력을 들인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떡볶이의 맛을 내는 데 한 몫 하던 ‘열등감에 대한 조촐한 위안’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삼시세끼 떡볶이만 먹어도 질려하지 않을 정도로 즐기지만 떡볶이를 보며 어렴풋이 느끼던 감정이 조금은 달라졌다고 보아야겠다.
떡볶이는 초등학생일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식이다. 자작한 국물 안에 숨어 있던 어린 아이의 열등감을 빼고 나니, 이제 정말 순수하게 맛있는 떡볶이만 남았다. 이제 분명하게 말 할 수 있다. 떡볶이의 진정한 맛을 결정하는 것은 MSG와 설탕, 그리고 밀떡이라고.
요 사이 어린 친구들은 생일 때 부모님께 돈을 받아 친구들과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음식을 시켜먹는다고 하더군요. 저는 딱 그 중간 세대. 초등학생 땐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생일상이 기억납니다. 친구들을 불러 집 마루에서 커다란 상위에 말씀하셨던 메뉴들이 올려지곤 했죠. 저와 세대는 다를지 모르겠습니다. 고전 생일상의 중요한 아이템이 하나 더 있죠. ‘김밥산’ 떡볶이는 물론 필수 아이템이었습니다. 떡볶이를 인생의 음식으로 삼는 것은 아마도 지금 어린 세대의 친구들보다 저와 같은 세대의 친구들이 더 많으리라 예상하는데요. 자극적인 매운 맛과 매력적인 가격, 보통 학교에서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한다는 어마어마한 장점 때문에 아마도 초등학교 앞 문방구와 더불어 불멸의 아이템이 아닐까 합니다. 맛도 맛이거니와 늘 일상을 같이 한다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함께해서 일거라 생각합니다. 그 일상의 낙인 효과 때문일까요. 나이가 들어버린 지금의 저 역시도 어디에서든 말하고 다닙니다. 우주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라고.
- youtoo -
사실 매운 걸 잘 못 먹는 저는, 떡볶이를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요즘의 떡볶이는요. 그저 맵게만 하는 게 전부는 아닌데 왜들 경쟁적으로 캡사이신 배틀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 아니 저 밥공기에 푸짐히 담긴 떡볶이(보다는 오뎅이 눈에 들어옵니다. 꺗, 오뎅 넘져앙)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마 떡볶이 자신도 몰랐을 겁니다. 종이컵에 소박하게 담겨 달큰한 맛을 내던 본인이, 이렇게나 공격적이고 성질 급한 사람이 될 줄. 아아, 떡볶이의 생이야말로 결과를 알 수 없는 마라톤이어라. 오늘은 어쩐지 ‘국민’학교 앞에서 파는 떡볶이와, 시큼새큼달콤한 떡꼬치가 당깁니다. 한입 질겅히 물며 열등감 역시 질겅히 물 수 있게 되기를.
- 리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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