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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매니아 Jul 06. 2021

화이트칼라 피의자


 에드윈 서덜랜드(Edwin Sutherland)라는 학자가 1930년 대에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일컬어 ‘화이트칼라 범죄(white collar crime)’라고 정의 내린 이래, 이 화이트칼라 범죄라는 개념이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미디어 등을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고, 경찰학과 범죄학 석·박사 과정 입학시험이나 학기 중 평가에서 단골로 출제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서덜랜드가 처음 이 용어를 사용한 뒤, “화이트칼라 범죄”는 ‘하류 계층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으며 비교적 존경받는 사람이 “자신의 직업과정에서 수행되는 직업적 범죄”’라고 재정의 되었다. 이런 정의에 입각하면, 예를 들어 대학교수의 성폭력범죄, 공무원의 절도범죄 같은 것들은 화이트칼라 범죄의 범주에서 제외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화이트칼라 범죄의 전형적인 예로 많이 언급되는 것으로는 대학교수의 연구비 횡령, 탈세나 영업비밀 유출 같은 기업범죄, 공무원의 부패범죄 등이 있다. 


 사실 화이트칼라 범죄의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검찰에서 수사업무를 하면서 화이트칼라 범죄의 개념을 염두에 두고 업무를 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그래도 검찰수사관으로 근무하면서 화이트칼라 범죄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건 몇 개를 다뤄 본 적이 있는데, 이중 몇 개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한 검찰청의 조사과에서 근무할 때 담당하였던 사건이다. 검찰청 조사과는 일선 경찰서의 경제팀, 지능팀처럼 고소장 접수 단계에서부터 사건을 맡아 수사를 진행하고 검사실에 송치하는 역할을 한다. 한 사립대학 교수가 업무상 횡령 혐의로 형사고발을 당했다. 고발당한 교수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20여 년 전에 공동으로 한 외국어의 사전(辭典) 편찬 작업을 하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사전에서 발생하는 인세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주지 않고 피고발인 혼자 차지하여 횡령했다는 것이 고발인 주장의 요지였다. 고발인들은 인세에 대한 욕심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고발을 한 것이라고 힘주어 주장했다.  

 피고발인 교수는 혐의를 극구 부인했다. 우선, 사전 집필 작업에 참여했다고 하는 고발인들은 당시 석·박사 신분으로 자신의 사전 집필을 보조한 것에 불과하고, 사전을 집필한 것은 당시 학과의 노교수들과 막내 교수로서 해당 사전의 집필 작업을 실무적으로 주도한 자신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세의 소유권도 노교수들과 자신에게만 있다는 것이 항변의 주된 내용이었다.

 

 결국 이 사건의 쟁점은 누가 사전 집필 과정을 주도하였는지 즉 사전의 저작권자가 누구인지와 사전에서 발생하는 인세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귀속되는 것인가였다. 이에 대해 고발인들은 피고발인은 사전 집필 작업을 지시하고 극히 일부 파트만 맡아서 했을 뿐, 실제로 몇 달에 걸쳐 기존 사전 등 문헌이나 자료를 찾아 알파벳 순(順)으로 사전 집필 작업을 한 것은 고발인들을 비롯한 당시 학과의 석·박사 과정에 있었던 대학원생들이라고 반박했다. 이들의 주장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고발인 이외 당시 사전 집필 작업에 참여하였던 사람 몇 명을 불러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하기도 하였다. 업무지시 및 이행 관련한 대학 전반과 해당 학과의 관행 등을 고려해 보았을 때 고발인이나 참고인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어 보이기는 했지만, 문제는 이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했다. 20여 년 전에 주로 수기로 작업하였던 터라,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피고발인은 줄곧 당당했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실에 ‘혐의없음(증거불충분)’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하면서, 수사지휘 검사님에게 최종적으로 혐의없음 처분을 하더라도 고발인들을 비롯한 실무자들의 노고를 참작해서 피해회복이 일부라도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건의드려 보았다. 수사지휘 검사님은 사건을 배당받은 검사님에게 수사관의 의견을 전달해 주시겠다고 했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검찰에서 운용 중인 형사조정 절차를 통해 고발인과 피고발인이 합의를 하였다고 한다. 처벌, 불처벌의 일도양단(一刀兩斷)식 해결이 아니라 형사조정을 통해 고발인, 피고발인 모두 그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나도 일부 기여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보람을 느끼기도 하였다. 


 또 다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자신이 운영하는 치과의원에 내원하는 환자를 진료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의료급여를 이중청구하거나 허위청구하는 방식으로 피해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속여 급여를 편취한 혐의로 송치된 사건을 수사한 적이 있다. 피의자는 치과의사였는데, 경찰수사 단계에서부터 “의료급여를 부당하게 수령한 사실관계와 이에 대한 행정적인 책임은 인정하지만, 그와 같이 부당청구된 것은 급여청구 프로그램에 전산입력을 담당했던 간호사의 업무 미숙 때문”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당시 피의자가 운영하던 병원을 퇴직한 간호사에게 출석요구를 하여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했다. 의료급여가 이중청구 및 허위청구된 경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질문을 하였고, 간호사는 경찰 조사 때 진술한 것처럼 자신의 업무미숙 때문에 청구가 잘못된 것이고 원장인 피의자는 이에 대해서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했다. 참고인이 청구업무를 담당하지 않은 기간에도 부당청구는 계속 이루어졌고 그 기간도 약 3년으로 길었으며, 결국 치과 내에서 벌어지는 진료행위 및 의료급여 청구 등으로 인한 수익의 최종 귀속자는 치과의사라는 점 등을 들어 참고인을 계속 추궁했다. 결국, 참고인인 간호사는 원장의 지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거의 매일 자신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한 내역이 원장에게 보고가 되었기 때문에 실제 진료행위와 청구내역이 다르다는 점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면서 사실상 피의자의 혐의를 인정하는 듯한 취지의 진술을 했다. 간호사의 진술 및 객관적인 자료 등을 토대로 검사님은 큰 어려움 없이 피의자를 기소할 수 있었고, 법원에서도 유죄가 확정이 되었다.     


 지금 살펴본 두 개의 사례 그리고 이를 비롯한 몇 개의 사례 등을 들어, 어쭙잖게 화이트칼라 범죄자의 특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화이트칼라 범죄의 특성으로 피해의 광범위성, 범행의 은밀성, 계획성, 조직성, 대중의 피해에 대한 인식 결여 등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 개념이나 특징이 정립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개인적으로 학문상으로 화이트칼라 범죄로 불릴만한 사건들을 수사하면서 느꼈던 점 중 비교적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피의자들이 통상의 범죄자나 피의자에 비해 자신이 ‘피의자’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사실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는 점이다. 아마 대부분의 삶을 대접받고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으면서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단순히 범죄 혐의가 있음을 뜻하는 ‘피의자’라는 말만 들어도 불편함을 느끼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서 「노인 피의자」에서 사람의 나이에 비례하여 도덕성이 높아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고 했는데, 마찬가지로 사람의 학식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도덕성도 같이 증가하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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