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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추 Sep 10. 2023

치앙마이 한 달 살기 - 엿새 동안의 준비기(2)

 그렇게 필요한 정보들을 찾아본 뒤 무엇을 얼마나 들고 가야 할지 생각을 해보았다. 일단 나는 캐리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항공편에 위탁 수하물 옵션도 따로 추가하지 않았다. 많지는 않아도 여러 번 해외여행을 다녔었고, 지인들과 함께 또는 혼자서 국내여행도 즐겨할뿐더러 직장생활을 할 때는 이사와 출장도 잦았기에 그 흔한 캐리어 하나쯤은 있을 법한데도, 어떤 브랜드에 어떤 제품이 있고 그중 무엇이 나한테 가장 적절한 캐리어일지 고민만 해보다가 정작 가장 중요한 구매는 미뤄왔었다. 적당히 큰 배낭 하나로 큰 불편함 없이 지금까지 잘 다녀왔기에, 여러 상품을 비교하고 고민하여 결정한 뒤 나름의 거금을 지불한다는 그 귀찮은 절차를 감내하고 구매할 만큼 캐리어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분명 있었다면 있는 대로 잘 사용하고 다녔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근 몇 년 동안의 잦은 이사와 자가소유 주택의 부재로 소유하고 있는 물건 자체도 많지 않다. 난 스무살 때 본가인 울산을 떠나 부산에서 4년 동안의 타향살이를 했다. 그리고는 다시 잠깐 울산으로 돌아와 본가에서 2년 반 정도 지냈다. 그 후 다시 집을 떠나 여러 지역들을 옮겨 다니다가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1년 반 째 단출한 원룸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 흐름이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 이어질 것 같다고 수년 전부터 생각해 왔기 때문에, 자연스레 가지고 있는 물건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사할 때 고생도 비례하여 커진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어쩔 수 없는 떠돌이 생활이 반강제로 나를 미니멀리스트 엇비슷한 무언가로 만든 것이다. 수십 개의 물건으로 생활하는 진짜 미니멀리스트는 아니지만 그들의 생각에 동감하고 그 삶을 동경하기도 해서, 언젠가 나도 그들처럼 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종종 생각해보곤 한다.


 쓰다 보니 이번에도 Too much Information이 길어졌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이 뒤에 어떤 말이 뒤따라 올지 충분히 예상 가능하실 것이다. 그렇다. 아무리 해외에 한 달 살기를 하러 간다지만 이번에도 난 최대한 효율적이고 간소하게 챙겨가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간소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포기하기 힘든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옷이다. 여행 갈 때는 물론이고 이사할 때조차 내가 가진 짐들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건 가구도 가전제품도 책도 아닌 의류였다. 옷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학창시절부터 주요 관심사 중 하나가 옷이었다. 지금처럼 SNS에 의류 정보가 넘쳐나 전반적인 패션 수준이 상향평준화되기 전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옷 좀 입는다는 칭찬도 심심찮게 들었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항상 신경 써서 차려입고 다녔던 것 같다.


  요즘은 주머니 사정도 주머니 사정이고, 어느 정도의 간소함을 지향하게 되면서 만듦새 좋은 옷 하나가 외관상 훌륭한 여러 벌의 옷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예전만큼 옷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출신은 어찌할 수 없는지, 짐을 챙길 때 가장 많이 그리고 먼저 고민하는 것이 옷이었다. 보통 총 여행 일수보다 하루이틀 더 여유로운 개수의 외출용 옷을 챙기고, 잠잘 때 입을 옷 몇 벌 외에도 편한 복장도 한 두 벌, 거기다 혹시나 해서 챙기는 외투도 하나, 슬리퍼는 필수고 추가로 여유가 있으면 샌들까지. 하지만 정작 이렇게 고민하여 챙겨갔지만 항상 손 한 번 데지 옷들이 있었다. 그것에 대한 반성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로 했다.


 캐리어 없이 배낭 하나에 다 들어갈 정도의, 다다익선이 아닌 소소익선에 중점을 두고, 항상 문제이던 옷 또한 최소한으로 들고 가자는 생각까지 한 후 치앙마이 한 달 살기에 챙겨갈 물품을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 의류는 상의 12개(기능성 반팔 상의 일곱 장, 외출용 반팔 상의 네 장, 편한 면 반팔 상의 한 장), 하의 9개(기능성 긴바지 한 장, 외출용 긴바지 세 장, 기능성 반바지 네 장, 외출용 반바지 한 장), 외투 1개(얇은 바람막이), 신발 3개(운동화 한 켤레, 슬리퍼 두 켤레), 모자 3개, 속옷 몇 장과 양말 네 켤레, 선글라스 하나와 안경 두 개, 배낭과 크로스백 하나씩, 그리고 수영용 스포츠 타월과 수경. 화장품과 세면용품은 선크림 2개, 바셀린, 립밤, 면도기, 칫솔, 치약, 빗, 손톱깎기, 때수건. 의약품은 챙겨 먹던 비타민과 탈모약, 감기약, 여드름패치. 전자제품은 휴대폰, 스마트워치, 무선이어폰, 랩탑, 전자책리더기, 보조배터리, 여행용 멀티어댑터, 스마트워치와 랩탑용 충전기, C타입과 라이트닝 충전케이블. 그 외 여권, 현금, 카드, 접이식 우산, 비닐봉지, 삼색볼펜, 안경닦이.


 출발 직전까지 이렇게 짐을 싸다 배낭과 크로스백 하나씩 메고 탑승시간 네 시간 전인 8월 21일 월요일 오후 4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그리고 치앙마이에 도착하고 며칠 뒤, 물건을 왜 이렇게 조금만 가져왔을까 하는 후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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