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살 아들의 눈을 감기며

변사체 검시 현장에서

by 검사이다

변사체 검시를 다니다 보면 냄새가 남는다.

물에 오래 잠겨 있던 시신을 본 날에는 몇 번을 빨아도 옷에 밴 진득한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국가는 그런 경우 세탁비 만 원을 준다.

죽음을 본 사람에게 주는 보상치고는 어딘가 묘한 금액이다.

마치 죽음에도 가격표가 붙어 있는 것처럼


나는 직업상 종종 죽음을 본다.
어떤 날은 물에 오래 잠겨 있던 시신을 보고 돌아왔고,
어떤 날은 어린아이의 죽음을 확인해야 했다.

아이의 사건을 보고 온 뒤에는 한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다만 눈을 감으면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왜 사람은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진짜 얼굴을 드러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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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한 군인의 사체를 검시한 날이 잊혀지지 않는다.(검시는 이 사람이 사망한 사유를 밝혀내는 일종의 현장 조사이다)

조사관이 슬쩍 나에게 소곤거렸다. "게이였대요"

어떤 깨달음은 사람을 자유롭게 만들지만 어떤 깨달음은 사람을 더 깊은 곳에 가두기도 한다.

그에게 군대에서의 성정체성이란 아마 그런 것이었으리라.

스물두 살이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에도 아직 너무 이른 나이였다.


그날 검시실 안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다.

의사도 있었고 경찰도 있었고 군의관과 군검사, 군 관계자도 있었다.

약간의 언쟁도 오고 갔다. 각자 지켜야 할 절차가 있었고 각자 피하고 싶은 책임도 있었다.

군관계자는 나에게 고인에 대한 정보를 유족에게 알리지 않으면 안되겠냐는 부탁까지 했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러다 유족이 도착했다.

고인의 어머니는 끝내 시신을 보지 못했다.

대신 아버지가 앞으로 나왔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시종일관 담담하던 그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마치 행정적인 절차를 이행하듯이 말했다.

“제 아들이 맞습니다.”


우리는 다 같이 묵념이 끝나고 덮개를 덮으려 했다.

"잠깐만요"
잠시 시간을 달라던 아버지는 뜬 채로 남아 있던 아들의 눈을 조심스럽게 감겨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잘... 가라.”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서 그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목 안에서 부서지는 듯한 억지로 삼키려다 끝내 새어 나온 울음이었다.


그 순간 메모를 하던 사람도 언쟁을 벌이던 사람도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죽은 한 사람과 그를 보내는 사람들만이 남았다.

저쪽에는 죽은 세계가 있었고 우리는 아직 살아 있는 세계에 서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 아버지와 죽은 자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안도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곧이어 설명하기 어려운 죄책감이 함께 따라왔다.

그 장면은 오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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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죽음 이야기가 나오면 슬며시 화제를 돌리거나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에는 그런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죽음은 가능한 한 멀리 밀어 두어야 하는 이야기처럼 터부(Taboo)시 된다.

어쩌면 그것은 삶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말했다.

“우리 각자는 자기만의 죽음을 살아간다”

그러나 죽음을 가까이서 마주하고 나면 삶이 오히려 더 또렷하게 보인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아주 구체적인 감각이 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삶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순간들이 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죽음을 향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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