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청에 문제가 생겼다.
검사수보다 실무관 인원이 부족해진 것이다. 실무관 1명에 검사 2명이 배정되었다. 이윽고 연속으로 실무관들이 일이 힘들다고 병가를 들어가 버렸다.
갑자기 우리 부 B선배검사 방 실무관도 병가를 낸다고 했다. 꾀병일 확률 90프로.
부장검사님은 화가 나 병가 승인을 안 해주겠단 이야기까지 나왔다.
긴급회의시간, 부장님과 B선배는 일도 많은 B선배 방에 저런 실무관을 어떻게 안고 일을 하냐, 일을 하도록 실무관을 설득해야하냐 여러 가지 무의미한 토론을 하며 골머리를 썩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가치는 정의인 듯싶다. 오늘 동기검사가 보내준 심리테스트를 했는데, 내가 '간식'이라면 다른 사람을 돕기 좋아하고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군밤'이란다.
그런 오지랖 넓은 군밤의 판단으로는 상대적으로 일이 적은 A 검사 방 실무관이 일을 좀 돕거나, 아니면 지금 힘들다는 그 실무관이 A방에 가면 될 일인데, 왜 일을 골고루 분배하지 않는지, 왜 다들 그 검사의 눈치를 보는지(조금만 손해보면 화를 내어 무섭긴 하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 여기서, 일이 적다는 것은 내 판단은 아니다. 그럼 어떻게 아냐구요? 우리 청 직원(실무관이나 계장)들이나 일을 좀 쉬고 싶은 검사들이 모두가 담 인사 때 그 자리를 가고 싶어 하는 것을 보면 답이 나온다.
그래서 나는 사실 이 사건과 아무 상관이 없음에도 용기 내어 슬쩍 A방에서 조금 돕거나 그 실무관과 A검사방 실무관을 바꾸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다. 은근 다른 검사들은 반색을 표했으나,
후배인 A검사는 부회의 중임에도 두 눈을 형형하게 뜨면서 나에게 화를 내었다.
"하, 저희 반 와서 퍼지면 어쩔 겁니까? 일은 누가 하라는 거죠?"
결국 남의 방은 되지만 내 방은 안된다는 것 아닌가...
사실 그 검사실에는 원래 계장만 있고 실무관이 없었다. 모두가 안다. 그 방에서 좀 양보하면 좋은 일이라는 것을.
나는 순간 벙 쪄 있었고, 중간에서 당황한 것은 B선배였다.
하지만, 나의 발언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그래도 양보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님 적어도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기색도 그에겐 없는 걸까?
내가 괜한 참견을 했다는 자책도 했다.
돌이켜보면 과거에도 이런 반응들 때문에 해야 할 말을 못 했던 것 같다.
그저 조용히 묵묵히 있었다.
원래 나는 분쟁을 싫어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나이가 들며 변한 것은 내 가치에 어긋나면 아무리 욕을 먹어도 기어코 말하고야 만다는 것이다.
눈치 보지 않고 표현해야 좋은 방향으로 변화한다.
오늘 내가 원하는 것은 '부내 일의 불공정을 해결하고, 곤란을 겪고 있는 부장과 선배를 돕는 것'이었고, 그 돕는 대상에 후배검사는 없었으니 당연히 화가 날만 했다. 후배 검사 입장에서 나는 쌍년이었겠지.
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나는 그게 '공정'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오히려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내 가치를 지키는 일이니까.
내 가치를 지키면 사람은 떳떳해지고, 충만해진다.
여하튼 욕먹었으면서 기분 좋은 것은 참 오랜만이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