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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사이다 Jun 10. 2024

직원에게 의지하라

개저씨 아닌 리더 되기


개념 없는 년!

개념 없다는 말은 나에게 있어 가장 심한 욕이다.

화단에 담배를 끄지 않고 버리는 사람을 보고 다가가 담배를 발로 끄며 이렇게 말한다

"쯧쯧... 개념 없는 놈."

더군다나 나는 개념 없는 사람들을 잡아 처벌을 부여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나름 '개념 있다'라고 자부하며 살았다.


그런 내가 몇 달 전 나이 많은 어르신께 회사 고충을 이야기를 하다 나에게 쓴소리를 하셨다.

"에잉 쯧... 개념 없는 년! 네가 그러니까 계장이 기록을 던지지!"

기분이 묘했다.

기분이 나쁜 것 같다가도, 또 이상하게 통쾌했다.


칸트가 말하는 개념 즉, 이성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일을 했어야 했다.


개념 = 일반적인 요소를 종합한 보편적인 관념.

그렇다면 회사, 즉 조직의 보편적인 관념은 무엇일까?

조직(組織)은 개인이 완수할 수 없는 목적 또는 의사를 달성하기 위해서, 여러 사람들이 구조를 가지고 지휘 관리와 역할 분담을 정하는 계속적인 결합이다.


어르신께 털어놓은 나의 고민은 이거였다.

"직원한테 추가적인 업무지시를 할 때마다 '이래도 되나'란 생각이 들어요. 전에 계장님께 조사해 달라고 기록을 드렸는데, 기록을 바닥에 던진 적이 있었잖아요. 그 이후로 지시할 때 상대의 표정을 살펴요. 그리고 직원이 힘들어하면 죄책감을 느껴요."

이 말을 듣더니 버럭 '개념 없다' 화를 내신 것이다.

나에게 정신 차리라고 더 세게 말씀하신 것을 안다.


그렇다. 인정하긴 싫지만 나는 '조직' 개념이 서지 못했다.

나는 리더의 자리가 싫었다. 타인의 희생 위에 쌓아 올린 실적과 성과를 보며 누군가는 웃겠지만 나는 불편했다.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상사, 직장 내 갑질 등등... 마치 상하관계가 비정상적인 관계인 것처럼 비쳤고 나는 완전히 공감했다. 그러므로 비극이 시작됐다.



착한 상사는 개념 있는 사람?!

지시는 조직에서 상사의 의무이다. 이제와 개념 있는 척을 해보자면 조직은 '지휘관리'가 핵심인 곳이다. 만약 직원을 배려해 업무지시를 하지 않는 착한 상사가 있는 회사는 어떻게 될까?

일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아 망한다. 애초에 검사 한 명이 모든 범죄를 처리할 수 없기에 검찰청이라는 조직이 생겨났다. 회사도 마찬가지이고.

전문성을 가졌거나 더 업무를 오래 한 사람을 상사의 자리에 앉히고 잘 지시하도록 하는 이유다.


검사와 부장 검사는 비교적 지휘체계가 확실하다. 부장검사가 되면 '검사와 완전히 다른 직업이야'란 이야기를 많이 한다. 부장검사는 결재 위주로 일을 하면서 시간적 여유가 많다. 여유가 있어야 큰 방향을 그릴 수 있다. 그런데 검사와 직원의 관계는 애매하다. 직원 인사에 대한 권한도 없다. 더군다나 어린 여검사가 20년 넘게 근무하며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는 좀 쉬고 싶은 중년 남성을 직원으로 다루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갑자기 생각난 민희진 씨의 개저씨


그렇게 상사의 개념이 없었던 나는 제대로 업무지시를 하지 못하고 결국 하극상(?)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조직에 적합한 사람은 아니다. 친구처럼 지내는 자유분방한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남초회사의 모든 게 불편했다.

그런 내가 어르신께 욕을 먹은 순간 변화가 찾아왔다.

'상사가 직원한테 확실하게 리더로 있어주는 것은 회사를 위해서도 고객(국민)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그리고 심지어 직원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직원도 그렇게 경험을 쌓고 본인이 지휘를 하는 직위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회사의 시스템이다.'



숲을 보라

조직의 개념을 익히고 난 후 나의 회사생활은 훨씬 더 수월하다. 나 스스로도 부장님을 비롯한 윗선의 지시를 받아들이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예전에는 억지로 '예'했다면, 지금은 정말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업무 지시도 명확해졌다.

사업으로 성공한 지인은 비즈니스 모델 즉, 회사 시스템만 55가지가 된다고 알려줬다.

회사에서 내 역할을 다 하려면 그 회사의 시스템을 알아야 한다.


많은 친구들이 나에게 고민을 토로한다.

"내 의견이 맞는 것 같은데 항상 상사 의견에 묵살당해. 그게 회사생활에서 가장 힘들어."

"그건 당연한 거야."

"왜? 내가 맞는 건대도?"

"지식적으로 네가 아는 것이 많더라도 내 말에 권위가 생기려면 조직 내에 그만한 '위치'가 되어야 해. 전문성이든 성과로 보여주든, 혹은 일한 연차가 쌓이든 말이야."


검사의 지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찰들도 많다. 당장은 속이 쓰리더라도 일단 우리는 힘을 뺄 필요가 있다. 힘을 빼야 이성적으로 다음 행동을 할 수 있다. 힘을 빼고 내가 속한 회사의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존중'과 '공동의 목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 중요한 톱니바퀴다.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그 일은 세상밖으로 나가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이를 위해 동료에게, 상사에게, 후배에게 의지할때 비로소 시스템이 주는 이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그들을 신뢰하고 일을, 아니 나를 내맡겨도 된다.

나는 요새 매일 아침 감사기도를 한다.

동료검사들과 부장님, 그리고 함께 일하는 우리 방 직원들에게,

'오늘도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주 잘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평안한 일요일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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