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맛과 모르는 맛 : 일상과 여행의 경계
언어 : 생각, 느낌 따위를 나타내거나 전달하는 데에 쓰는 음성, 문자 따위의 수단. 또는 그 음성이나 문자 따위의 사회 관습적인 체계
말 :
1.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 기호.
2. 음성 기호로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행위. 또는 그런 결과물.
3. 일정한 주제나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나는 '언어'를 둘러싼 것들에 유독 민감하다.
예를 들면, 누군가의 극단적 행동은 아예 관여를 포기하다가도 자그마한 '말실수'는 못 견디는, 그렇다고 득달같이 달려들진 않지만, 꼭 짚고 넘어간다. 그래서인가, 대학 전공까지 '말과 언어'에 관련하였다.
헝가리에서 살다 보니, 위에 설명한 부분에 한해서는 이 '헝가리어'로 스트레스 받을 일은 거의 없다.
'언어 공부'가 아닌 '말'의 역할로써는 말이다.
헝가리를 둘러싸고 있는 :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슬로베니아, 우크라이나.
헝가리 포함 8개 나라의 언어가 각각 다 다르다. 가끔 "헝가리는 독일어를 쓰나요?"라는 질문을 받지만, 엄연히 이 나라도 모국어가 있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곳이다.
헝가리어
주로 헝가리에서 쓰이지만, 체크와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및 유고슬라비아를 비롯하여 세계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소수집단도 이 언어를 사용한다. 이 언어는 13세기부터 변형된 라틴문자로 표기되었고, 그 철자법은 16세기에 인쇄술의 도입과 더불어 고정되었다. 헝가리어 철자법의 특징은 장모음을 나타내는 강세 표시와 치찰음을 특별히 표기한다는 점이다.
헝가리어는 우랄 어족이 아닌 언어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이란어·터키어·카프카스어·슬라브어·라틴어·독일어 같은 언어에서 많은 낱말을 차용했다. 그러나 헝가리어의 음운 체계와 문법은 전형적인 우랄어로 음운 체계의 특징은 모음조화이다. 헝가리어의 자음은 단순하며 강세는 항상 낱말 첫음절에 온다. 헝가리어는 흔히 접미사를 이용하여 문법적 범주를 나타낸다.
(Daum 백과)
*알파벳만 보면 영어랑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하고, 접근하기 쉬운 언어 같지만, 이래 봬도 헝가리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 중 늘 손에 꼽힌다.
이곳에서는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주변 나라를 오가며 ‘부담 없는’ 여행을 할 수 있다.
헝가리는 7개의 나라에 둘러싸여 있는 대륙 국가이고, 중부 유럽(동유럽으로 구분되기도 한다)에 위치하고 있다. 비행기, 기차, 버스 등 교통편이 워낙 잘 되어 있어, 내가 누릴 수 있는 일상 사치 중 하나가 바로 ‘즉흥 여행’이다.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면 나중엔 다 거기가 거기 같은 여행의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있는데, 그 감정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 바로 ‘언어'이다. 언어에 민감하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할 때가 바로 이때다. 생소한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일수록 좀 더 미지의 세계에 가까워진다는 것.(그래서 가끔은 영어권 국가나 영어가 모국어만큼 편한 나라를 '여행 목록'에서 배제 시킬 때도 있다.)
그 나라의 음성, 그 언어를 말로 표현하는 사람들의 표정, 표지판, 상호명, 음식 메뉴판 등등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면 '아, 내가 헝가리를 벗어났구나'하고 (여행자 모드로) 마인드 리셋이 된다.
비소로 떠나온 것이다.
불편함이 시작되고, 난 더 낯선 기분으로 곳곳을 누빈다. 낯설수록 자유로워진다. 자유로울수록 난 더 이방인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 모습이 나를 '여행자'로 만든다.
진정한 여행은 '모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야 좀 더 무모해질 수 있다. 이것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이다.
그 '무모해질 수 있는 경험'에 중독되었다 느낄 때쯤 난 이미 잔뼈 굵은'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여기서 좀 더 뻗어나가면, 헝가리에 반해서 '헝가리어'를 공부하기도 하고, '불어'가 매력적이라 갑자기 '프랑스'를 궁금해하는 발전적 현상(?)이 일어난다.
언어를 알면 그 나라 문화가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아직 이나라(헝가리) 문화가 훤히 보일만큼의 언어를 섭렵하진 못 했다. 그러하기에! 아직도 이 나라가 양파 껍질 벗기듯 새롭고, 떨린다.
적당히 그들의 말을 알아듣고, 적당히 못 알아듣는다.
결국 내가 편한 말만 취하고, 불편한 것엔 외면하는 꼴이 되긴 하는데, 능력 평가적인 면에서 늘 아쉽지만 삶적인 측면에서 뭐, 썩 나쁘지 않다.
유럽 여행 때, 언어를 통해 가장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곳을 말하라면, 단연 '벨기에'와 '세르비아'를 꼽겠다.
내 유럽 생활의 네 번째 여행지였던 '벨기에'는 무식하게도 '불어권' 국가라는 걸 모르고 떠났던 곳이다.
구름 씹어 먹는 듯한 소리가 그렇게 섹시할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그게 불어였고, 난 한동안 '벨기에'란 나라와 '불어'에 꽂혀 1년 후엔 '불어 능력자'가 되어 있을 거란 상상을 하며 어깨를 들썩이기까지 했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난 일상 속에서 방랑자의 발걸음을 지니는 것이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그리고, '세르비아' -
비자 문제로 잠시 들렀다 와야 했던 곳이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저 기차표 하나 달랑 끊고, 2박을 머물 숙소를 예약하고 향했던 곳.
한밤 중 도착해서 본 '베오그라드(세르비아의 수도)'는 흡사 서울역과 비슷해서 친근한 느낌이었지만, 그 감각은 다음 날 완전히 무너졌고, 날 밝은 세르비아는 나에게 외계 도시의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곳임을 '키릴어' 활자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한 겨울, 잿빛 '베오그라드' -
특별한 인상을 줄만한 곳은 아니었는데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낯선 도시로서의 매력으로 순위를 매긴다면, 상위 후보에 랭킹 될 정도로 나에겐 이방인의 기분을 선사해준 곳이었다. 순전히 '언어' 때문이었다. '키릴어'라는 개념을 그때 처음 알았다. 세르비아에 있는 내내 보는 것과 듣는 것에 섬세히 반응하며 나아가 오감을 깨웠다. 순전히 감각으로 기억하는 도시이다. 그곳은.
이처럼 '말과 언어'로 기억되는
‘곳'이 있고, '사람'이 있고, '순간'이 있다.
다시 여행 속 언어 얘기에서 벗어나 '말'로 돌아가자면,
나는 이처럼 누군가에게 '말 & 언어'적인 면에서 '특별한 여행'처럼 기억되고 싶은 사람이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
내가 '말과 언어'에 유독 민감한 이유는 '엄마'로부터 비롯된 것이 크다.
엄격함과 거리가 먼 '엄마'는 '말'에 관한 한 '진중하고 대쪽 같은' 선생님 같았다.
'올바른 단어' 선택과 '온전한 말과 어투'에 심혈을 기울여야 했던 내 지난날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덕분에 말의 힘을 발견하고, 언어에 감사함을 느끼고, 그로 인해 여러 방면을 고찰함에 있어 '말과 언어'의 특별함까지 되새기게 되었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생각한다.
요즘 헝가리어 '5 문장'씩 외우기에 한창이다.
하루에 다섯 문장.
쉬운데, 험난하다. 매우.
헝가리 어학원을 다닐 때보다 더 열심을 내는 나는 '언제나 이렇게 한 발자국씩 늦게 철이 든다'라고 느낄 정도로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이 언어를 마주해왔었다.
헝가리에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언어 공부'였는데도 말이다.
'살아야겠다 꿈만' 꾸지 말고 '그를 위해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마음 다잡았던 '헝가리어 공부'였는데도 말이다!
그렇지만 긍정의 아이콘인 나는 '지금이라도 정신 차린 게 어디야'라는 생각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갈길이 멀다. 아니면,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