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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Jul 14. 2022

엄마의 그림

나의 꿈


엄마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면 ‘다시’ 시작했다는 게 맞는 말이겠다.




<첫 번째 그림>






재작년 여름, 코로나 상황이 심각했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작년 봄, 여전히 바이러스가 활개 치는 상황에서 외할머니께서 하늘나라로 가셨다. 나의 대학 시절부터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우리 가족에겐 언젠간 마주할 일이지만, 그 언젠가가 지금이 될 거란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큰 존재의 상실이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아빠는 여전히 인도에 있(어야만 하)고, 나는 나대로 여느 때와 같은 헝가리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고, 남동생은 분가해 본인의 몫을 잘 지탱해나가고 있다.

그 사이 엄마는 너른 마음의 안식처가 사라짐에 가슴에 구멍 하나 뻥 뚫린 기분으로 얼마간을 보내고 있을 터였다.



엄마,

그녀가 일상을 좀 더 풍요롭게 가꾸어가길 바랐다.

(크게 외로울 틈 없게 혼자 드라이브나 운동도 즐겨하고, 워낙 어울리는 친구분들도 많고, 무엇보다 하나님 사랑이 가득한 그녀라 큰 걱정은 없다만 아무래도 멀찌기 떨어져 있는 딸의 입장으로서 아예 신경이 안 쓰이는 건 아니다)



올해 딸을 만나러 헝가리에 온 엄마는 오랜만에 단잠을 자니 좋다고 말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두 달여간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장례를 치르고 할머니 영정 사진을 집으로 가져와 벽에 걸어두고 계속 쳐다보며 지냈다고 했다(본인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TV를 켜놓아야 마음을 덜 불안해졌고, 뭔가를 먹어도 먹어도 계속 배가 고팠다고 한다. 십분 이해되는 상황이었기에 그나마 딸을 만나 안정을 찾는 엄마의 모습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짠하게 느껴졌다.




나한테 엄마는 세상 어느 곳에 있든 나와 함께 숨 쉬는 공기와도 같은 존재인데,

엄마는 그런 엄마를 잃었다.






"엄마, 그림 그리는 거 다시 해보는 게 어때? 전공을 살려야지! (미대 나온 여자, 김 여사) 어렸을 때, 엄마가 밥 아저씨 따라 그림 그릴 때 옹이랑 나랑 올망졸망 옆에 앉아 구경하던 그 시간이 가끔 떠올라.


요즘 6,70세에 모델 일을 시작하고, 유투버가 되기도 하고, 글도 쓰고 다시 꿈꾸며 두근거리는 삶을 살아가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또 내 주변에 멋있는 - 글 쓰는 - 엄마들이 진짜 많아!


옛날 기억에 엄마는 늘 책을 읽는 사람이었어. 그 모습이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 있는데.. 엄만 글도 잘 쓰고.. 요즘 나이 60이면 청춘 아냐? 마음속에 담아온 무언가를 펼치기에 지금이 적기인 거 같아. 그게 글이든, 그림이든, 엄마의 영혼을 마주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난 바로 응원할 준비가 되어있어!”

엄마가 헝가리에 있는 내내 몇 번이고 그녀의 꿈을 살펴보고 장려했다.





흰 캔버스를 앞에 두고 EBS에서 인자한 미소로 그림을 가르쳐주는 밥 아저씨를 따라 여백에 색을 입혀가던 그녀의 모습 -

초등학생 때 두 살 터울인 남동생과 나는 그런 엄마 옆에 앉아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쌔근쌔근 지켜보곤 했었다. 밥 아저씨의 뽀글뽀글 머리가 정겨웠고 친근해서 옆집 아저씨가 놀러 와 우리랑 함께 놀아주는 것만 같은 신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손길을 따라 완성되는 엄마의 그림을 지켜보는 것은 그 당시 우리 남매에겐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얼마 전에 또 다른 K(남동생)도 엄마에게 그런 말을 했단다. 우리에겐 그때의 그녀가 생에 가장 포근하고 그녀다웠던 모습 중 하나로 기억에 자리해 있다.



한 달 전 한국으로 돌아간 엄마로부터 카톡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그림 그릴 도구들을 정리하고 있다고.. 못 쓰는 것들은 버리고 필요한 것들은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와 동시에 얼마 안 있어 도구들을 한데 모아 놓고 찍은 사진을 내게 보내더니, 그림 그리는 과정을 중간중간 포착해 보고 하듯 하나둘씩 알리기 시작했다.



“엄마, 그림 좋다! ….. 분위기가 참 좋아. 아우라라고 해야 하나? 풍기는 이미지가 따뜻해. 잘 그린 그림은 많지만 좋은 그림은 드물다고 봐. 같은 그림이어도 내 시선을 머물게 하는 것들은 잘 없거든. 마미, 계속 그려봐. 주변에 선물도 하고, 전시회도 열고 그러자! 엄마가 나중에 그림 설명도 하고, 응?”

내 반응을 보던 그녀는 못내 쑥스러워하며 아직 멀었다는 둥, 지금은 몸풀기라는 둥, 귀여운 변명(?)을 늘어놓지만 며칠 내내 엄마의 하나둘씩 완성되는 그림들을 보며 난 느꼈다. 엄마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는 걸.



나와 내 동생이 그녀의 삶에 전부였다고 말하는 엄마이지만, 우리 엄만 전형적이고 희생적인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의 엄마 스타일은 아니다. 난 그 사실이 참 좋았다. 누군가에게 의존적인 성향도 아니고, 아빠보다 더 대장부 같이 우리 가족을 이끌어가야 했던 때도 부지기수였던 나날들을 그녀는 크게 낙망하지 않고 담담히 잘 걸어왔다. 수영도 잘하고, 걷기나 등산도 즐겨한다. 여행은 말할 것도 없고.. 프로 & 베스트 드라이버이기도 하다. 영양제도 잘 챙겨 먹고, 몸에 좋은 음식은 골라서 찾아가 먹을 정도의 미식가이다. 요리 실력도 뛰어나 엄마 밥이 그리운 날엔 그 어떤 최고의 한식도 날 채우지 못한다. 본인의 삶은 본인이 알아서 할 테니 나 번거롭게 하지 말고 각자 할 몫들 해나가면 된다,를 나와 동생에게 틈틈이 주입시키는 그녀.

자식들에게 쏟아붓는 애정과 본인 삶을 지켜나가는 균형이 매우 조화로운 여성이다.


쓰고 나니 우리 엄마  멋있네!




<두 번째 그림>




< 세 번째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보내주었다 >





< 네 번째 그림 >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 여덟 번째 : ‘꽃이 있는 농장 정원’ 클림트 작품 모사화 >




<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의 아홉 번째 작품 >



내가 글 쓸 때, 집요(내가 보는 나는 늘 맹물처럼 게으르게만 느껴지는데)하게 매달리는 것을 보며 늘 자극이 됐었단다. 그게 도화선이 되어 지난 일 년간 그녀의 마음에 자그마한 불씨가 지펴지고 있었다는 것이 내겐 꽤나 유익하고도 놀라운 사실이다. 제2의 박찬욱 감독이 될 내 동생도 마찬가지이다. 누나의 글을 보고 본인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라고 순간순간 다짐을 했단다. 엄청 거시기하다, 이거.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 내 주변이들에게, 그것도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들에게 이만큼의 영향을 끼치다니.

이 정도면 지금까지의 내 삶을 봤을 때 ‘나! 꽤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기분 좋게 미소 지어 본다.



매 순간 하나의 글을 내어 보인다는 게 내겐 여전히 큰 무게로 다가온다. 글이 삶에 큰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또 그 글이 나를 짓누르기도 한다. 허나 어떠한 모양이든 유의미하다. 그거면 족하다.



나만의 길을 천천히, 정직하게 온전하게 걸어 나가고 싶다.

그런 면에서 엄마의 그림은 나에겐 또 다른 응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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