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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Oct 22. 2020

'운수 좋은 날' in Budapest

부다페스트 이야기



새 날이 허락되기를!




왜인지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 난 이런 바람이 담긴 기도의 고백이 자주 흘러나온다. 하루하루가 내가 마음먹는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란 생각에 눈이 번쩍 뜨일 때가 있다. '내가 지금 숨을 쉬네? 두 다리로 땅을 짚네? 맛있는 음식이 생각나고, 덥고 춥다는 걸 느끼네? 아침에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네. 하루가 이렇게 열리고 또 이렇게 닫히네. 내일은 또 새 날이 허락되어야 만질 수 있겠지' 본래 체질적으로 타고난 정신 스타일? 탓인지 이런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다.



'자.. 결전의 날이다!'



나에게 '너 이곳에 있어도 된다'라고 공식적인 통보를 받아야 내가 헝가리에서 다시금 살아갈 나날들의 초석을 다질 수 있다.


2015년, 6월 꿈의 첫 비자 신청. 그 당시 헝가리 거주 자격을 받기까지의 시간이 거침없이 지나갔다. 5년 전의 나도 거침없었다.


2020년, 10월 1일. 다섯 번째 비자를 신청하러 이민국으로 향했다. 이번 비자 준비 과정은 삐걱삐걱 내적 잡음이 많았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겁이 늘어난다 하질 않던가. 머릿속에 계산이 되고, 스스로 처음과 끝의 견적을 내면서 재단하기 시작한다. 알 수 없는 내일을 내 식대로 그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면서도 마음이 따르지 않았다. 사고 회로가 온통 '(삶의) 허가'라는 것에 집중됐다. 용감했던 난 온데간데없고 코로나 시대가 내 정신적 면역력까지 저하시키고 있나 보다, 하고 애먼 핑계를 대고 있었다.



2020년 7월 5일, 장장 6개월의 한국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헝가리로 돌아왔다. 정식 비자를 받기 위한 방편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었다.


(비자를 위한) 아무런 근거 없는 삶이란 생각에 혼자만의 속 끓는 시간을 보냈고, 어설픈 판단력에 흔들리는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튀어나왔다.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관계에서의 이별', 종종 피어오르는 '타향살이의 향수', 그리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여겨지는 ‘비자 문제'. 

이 세 가지는 내 마음에 내성이 잘 생기지 않는 것들이다.

뭔가 '이번엔 잘 해낼 수 있어!'하고 함부로 자신할 수 없는 종류의 것들이다.



어제 이민국엘 다녀와서 하루를 앓듯이 누워 잤다.

그 있잖아. 몰두하고 있던 것이 끝났을 때의 시원함과 동시에 몰려오는 허무함 (수능이 끝나던 순간처럼?) -

이불속에 담긴 내가 한없이 새하얘졌다. 








2020. 10. 1일. 오전 7:30분 [목요일, 이민국 오픈 시간]



새벽밥을 든든히 먹고(반나절 이상 시간이 지체될 것을 각오해야 신상에 이롭다), 이민국 오픈 시간에 맞춰 비장한 심정으로 목표지점을 향해 나아간다.



헝가리 이민국은 느리고, 답답하고, 제멋대로인 것으로 악명이 높다.

'오늘은 어떤 에피소드가 날 기다리고 있을까?' 이런 식으로 설렘을 안고 가기로 마음을 변환시킨다. 굳이 먼저 겁먹고 싶지가 않았다.



이것도 역시 사람이 하는 일. 좋은 직원을 만나길 기도하며 아침 바람을 맞았다.

날씨까지 칙칙한 것이 설레이기 딱 좋은 날이다. (현진건, '운수 좋은 날'버전)



우리 집에서 이민국까지 45분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나온다. 

6:30분. 집을 나섰다. 찬 공기 반, 예상보단 포근한 공기 반, 일부러 균형을 맞춰 놓은 것 마냥 조화롭게 부다페스트의 아침을 에워싸고 있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기가 힘들지, 대놓고 가을이 오면 막상 반갑다. '가을이로구나!' 인사하는 여유도 가져본다.



정류장으로 와보니 헝가리 친구들 각자의 모습으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에겐 출근길, 누군가에겐 등굣길, 또 누군가에겐 'Big day'..



난 그들의 시작하는 걸음을 따라 희망을 엿본다. ‘하루가 시작되었구나.. 우리는 살아가는구나..’

닫히는 밤이 나에게 감사하는 때라면 열리는 아침은 나에게 매번 다른 종류의 희망을 허락한다.



'아침 바람결 감촉이 좋다'



어제 이민국에 관한 평을 찾아보니 이런 개차반이 없더라.

'이 시국에 마스크 안 끼고 대기 줄이 엄청나다. 이민국 직원들은 대체 일을 하는 것이냐, 마는 것이냐. 이런 최악의 관공서가 없다'(욕 무진장 많았음) 등등

kf94 마크가 붙어있는 마스크를 끼고 만반의 서류 준비와 책 한 권을 들고 단디 각오를 동여맨다.



7:30분. 이민국 도착



벌써부터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각오했던 것보다 줄이 길지 않았다.



'호이짜! 모두 잘해봅시다!'



도착 5분 후, 순서대로 입장을 시킨다.



* 사진엔 담지 못 했지만, 왼쪽에 늘어선 줄에 서니 안내 직원이 따로 있었고, 무슨 용건으로 이곳에 왔는지 묻고 나서, 그에 해당하는 서류를 나눠준다. 나는 '신규 비자 발급'이라 이야길 했다. 그리고 다른 직원 둘은 열체크를 하고, 손 세정제를 뿌려준다.(오- 헝가리! 많이 업그레이드됐네! 이 나라에서 이런 시스템은 상당히 낯설다. 워낙 '각자 알아서, 있는 그대로' 이런 자연주의 마인드라 조금이라도 뭔가가 갖춰져 있거나 친절이 보이면 괜스레 황송해진다. 무슨 일 있나 싶기도 하고, 천지가 개벽했나 갸우뚱해하기도 한다. 이 무슨 우스꽝스러운 감동이란 말인가. ) 



다행히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고, 조용히 대기 중이다. 이렇게 안 붐비는 이민국은 처음이다.                                          


맨 뒷장은 코로나 관련 체크사항이고, 앞에 두 묶음의 서류는 비자에 관련된 (개인사항, 체류 목적 등) 내용이다.



9번! 딩동! 대기 번호판에 내 전호가 표시되고 신호음이 울린다.

13번 창구로 가란다. 



부디, 마음씨 좋고 대화가 통하는(?) 직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길..




기본적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은 비슷하지만 이민국에서의 관건은 바로 '어떤 직원을 만나느냐'이다. 비자 승인 여부에 대해 가늠을 할 수 있는 순간.

말이 안 통하는 막무가내의 직원도 있고, '원칙(근데 이 원칙이란 것이 자기 맘대로)대로 간다'식의 일꾼도 있고,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처음부터 '글렀구나..’라고 판단할 정도로 비딱해 보이는 이도 있다.



내 차례인데, 도도한 중국 언니가 앉아있다.



나의 창구 번호는 13번



우선 이 사람이 어떤 부류인지, 감을 잡아본다. (일명 눈치 작전-_-)

한 마디만 해도 알아보겠더라. '좋은 사람'이다! Thanks God.

마음밭이 투명한 사람에겐 나의 속내를 온전히 드러내도 된다고 마음이 시동을 걸었다.





(*반말 버전으로 타이핑)


직원 : "어떻게 왔니?"

나 : (구구절절 모드 탑재) 한국에 있을 때, 비자(거주증)가 만료되었고, 코로나 때문에 발 묶여 있다가 겨우 헝가리에 왔어. 지난봄 학기 어학원 수업도 이로 인해 다 날아갔고.. 지금은 코로나로 어학원 가기도 쉽지 않고, 현재 일을 하지 않고 있어. 하지만 내가 준비해온 서류들을 보면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데.. 잘 살펴봐줘. 난 이곳에 있어야 해. (눈빛으로 어필)


직원 :  혼자 왔어? 비자 대행사나 변호사도 대동 않고 혼자서 서류 준비 잘해왔네.

나 : 정말?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나름 철저하게 준비했어.


직원 : 무슨 타입의 비자를 받길 원해?

나 : 아직 일을 하고 있지 않으니.. 어학원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others visa(기타 비자) 어때? (되레 내가 묻는다 ㅎㅎ)


직원 : 그게 나을 거 같네. 몇 년짜리 받고 싶어?

나: 몇 년이라니? (난 1년이란 기간도 받을 수 있을까 말까 염려하며 큰 고민 끝에 '1년'을 기재했던 터였다)


직원 : 1-5년 정도 받을 수 있어. 

나 : 뭐라고? 비자 경력(!) 5년 만에 이런 소린 처음 들어봐! 내가 그렇게까지 받을 수가 있다고?


직원 : 응. 될 거 같은데? 모르지 심사를 거쳐봐야 알겠지만.. 네가 원하는 기간을 말해봐.

나 : (이때부터 정신 혼미해짐, 가슴 팔딱거리며 뜀) '어쩌지? 5년으로 적을까? 아니야. 심사에서 거절당하면 그건 문제가 커져. 3년? 그것도 아냐. 이렇게 쥐뿔도 없이 3년을 받은 전례는 본 적이 없는 걸. 근데 이렇게 먼저 긴 기간을 제안해 준 직원은 없었는 걸! 듣기만 해도 솔깃하네. 그냥 처음에 적은 것처럼 1년?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에잇!' (그러고선 2년을 적어냈다)


직원 : 잠시만.. 네 정보 좀 입력할게.

나 : 응. 천천히 해. 그나저나 너 참 친절하다. 난 행운아야. 너 같은 친구를 만나고..^^ (난 표정에 다 드러나고, 좋은 건 좋다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ㅎㅎ)


직원 : (쉬크하게 어색한 미소를 보이며) 고마워! (츤데레과의 친구 같았다. 말투는 무던하고, 잘 웃질 않고, 근데 어감에선 따뜻함이 묻어 나오고..)

나 : 비자가 잘 나올까? 요즘 상황은 어때? (이때부터 여러모로 흥분해서 이것저것 정보도 캐내고, 헝가리 현재 상황도 엿보았다)


직원 : 음.. 거의 다 됐다. 혹시 너 더 하고 싶은 말 있어? 종이 한 장 줄테니까 너의 의견을 피력해볼래? (그러면서 흰 a4용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나 : (이 친구 뭐지? 이민국에서 이런 적극적인 자세로 무언가를 더 권장하고, 나 같은 이방인을 위해준 직원은 없었다. 적어도 내 기억엔.. 그리고 내 주변 어느 누구의 기억에도 없을 것이다.) 응!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직원 : 적어봐. 그동안 나는 서류 복사하고 있을게.

나 : 편지를 적었다. (사실 이민국에 가기 한 주 전부터 편지는 작성해 놨었다. 내가 가진 것이 헝가리를 향한 극진한 마음뿐이로다. 정면으로 승부하겠다. 뭐 이런 나만의 옹고집 같은 각오로 헝가리에 있어야 되는 이유 10가지를 적어놨었는데... 문제는 이 종이를 빼먹고 왔다는 것. 완전 대참사 같은 일이었지만 이민국에 가서 출력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왔던 내가 맹추.. 였다. 프린트할 수 있는 기계가 아무 데도 없었다. 안 보였나...)





약 3분 정도의 시간 동안 대략 이런 내용의 편지를 써 내려갔다.


"난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나는 현재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내가 부다페스트와 사랑에 빠진 이유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 나라 발전에 미약하게나마 이바지(거창 모드) 할 것이라 믿습니다. 쉬는 동안 헝가리어 공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코로나 시대가 끝나갈 즈음엔 나의 일자리가 구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에게 이 땅에 거할 기회를 준다면 분명 나도 이 땅에 빛나는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무조건 큰소리, 그렇지만 진심 꾹꾹 눌러 담아..') 

[어째 구글 번역기 모드로 한국어가 표현된 느낌이다]



내가 일주일 전 작성해두었던 편지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예를 들면, '글 이야기(대체 이 얘길 왜?), 이 땅에 빛나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라는 엉뚱한? 포부! 큰소리?



(* 위 편지글은 따라 해서는 안됩니다. 잘못하다간 큰 코 다쳐요! 저는 저 글이 진심이었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라는 각오까지 하고 적어낸 거예요)






나 : (직원에게 건네주며 소심한 목소리로) 이거면 될까? (얘 정신 나간 애 아냐?라고 눈총 받을 각오를 하며)

직원 : 좋은데? 감동이야.


나 : (속으로) What??????? (겉으론 태연하게) 고마워. 내 진심을 적은 거야.

직원 : 이제 다 됐어. 가 봐도 돼.


나 : 끝이야? 나 더 뭐 안 해도 돼? 더 뭐 필요한 거 없어? (비굴 모드)

직원 : 응. 끝! 2-3개월 정도 시간 걸릴 거야. (그 사이 임시비자로 거주 가능) Szép napot! (헝가리어로 '좋은 하루 보내!')

나 : Neked és! Nagyon szépen Köszönöm. Szia! (너도 좋은 하루! 정말 고마워, 안녕!)



*서류 불충분으로 분명 몇 번을 더 이민국으로 왔다 갔다 할 것까지 각오했었다. 

단 하나의 부족함도 없단 이야길 들으며 이민국을 벗어났다. 눈물이 핑- 돈다. (볼 꼬집기)






부다페스트 '페렌치엑'역





'난 방금 천사를 만나고 온 것인가?'



부다에 있는 이민국을 벗어나 페스트로 넘어올 때까지도 내 상태는 '얼떨떨함' 그 자체였다. 

(헝가리 생활 초반에, "이 상황으론 비자를 받을 수 없어, 혹은 거의 어렵지"라고 사람들이 말하던 두 번의 상황에서도 나는 무사히 비자를 취득했었다. 같은 조건에 두 명의 친구는 reject(거절) 당해서 다른 조건을 더 만들어와 겨우 거주증(비자)을 얻을 수 있었다. 단 한 번도 "난 운이 좋아!"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저 감사하고, 더 열심히 살아가야지..라고 고백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나였고, 없는 나이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끌어내 매일을 움직였다. 언젠가 끝이 나는 세상에서의 삶에 지금의 나날들은 시한부 인생과도 같은 것이다, 라는 마음이었다. 하루도 귀하지 않은 날이 있을 수가 없었다. 뭐 그리 거창한가..라고 해도 이것은 굳건한 내 신념 같은 것이기에)




가을빛 완연한 부다페스트



일주일 사이 많이 늙었다. 부다페스트야! 

여름은 꽃다운 청춘, 겨울로 접어드는 가을부터는 중년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부다페스트.

이제 이런 날 조차 즐기는 내가 되다니.. (나에게도 중년의 때가 오겠지.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멋지게 낙엽 흩날리는 가을의 향기가 내게서 풍겨 나오길..)



잿빛 하늘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부다페스트 -






5년 전, "헝가리에 한 달간 다녀올게!"하고 SNS에 글을 남기고 한국을 홀연 떠나왔다. (한 달 후에 돌아갈 거라 생각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들한테 인사도 않고 왔는데, 바로 집을 구하고 비자를 얻고, 나조차도 얼떨떨한 갑작스러운 삶의 변신에 눈에 밟히는 소중한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페이스북, 인스타, 카카오스토리 등 SNS을 총동원해 나의 깜짝 선언과 포부를 남겼었다.



나는 정말 사랑받는 사람이구나.. 느낄 수 있었던 최대의 순간 중 하나였다.

곳곳에서 친구들에게 응원의 전화와 메시지가 날아왔고, 그중 기억에 남는 몇몇 문자를 남겨본다.

지금도 한 번씩 꺼내보는 내 사람들의 마음. 지치고 힘들 때, 이 말들로 힘을 입어 어깨 피고 단단하게 삶을 다져나갈 수 있었다.



대학 친구 Y

언닌 내가 이 내용 캡처해놓고 얼마나 힘을 얻었는지 모를 거야. 고마워요.




K,G,H,M 고마운 내 친구들


짧은 문장들이지만, 그 마음 깊이 전달됨에 고마운 내 친구들.




부다페스트를 떠나는 S가 준 손편지


내 헝가리 초기 생활을 지켜보던 친구. 주재원으로 이곳에 왔다가 2년 만에 돌아가던 때, 나에게 이런 감동의 손편지를 전해주었다.

이런 말 안 하게 생긴 애가 울림을 주는 말을 던져 주어서 한동안 멍했었다. 






다시금 새 날이 허락되었습니다.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니만큼, 오늘도 감사함으로 하루를 열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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