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 대하여
요즘 들어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유독 눈에 띄고, 가슴 한편에 깊숙이 박힌다. 지나간 인연이든, 지금까지 이어지는 인연이든 그 시절 좋았던 관계가 지금까지도 좋으리란 법은 없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우리는 조금씩 변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과 마음의 결도 달라졌다. 지나간 시간을 더듬다 보면, 한때 따뜻했던 관계가 지금은 씁쓸한 여운으로 남기도 한다.
각자의 기준에서 서로를 판단하고 평가한다.‘다름을 존중하라’는 말을 배우고, 다름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익숙해진 관계 안에서는 그 다름을 인정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
남녀가 연애를 하다 헤어지면, 다시 만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만나도 결국 같은 이유로 헤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이치는 모든 인간 관계에서 마찬가지인 듯하다. 늘 같은 지점에서 부딪히고, 같은 이유로 갈등이 생기곤 하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상대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꽤 괜찮은 사람이라 여겨져도 나와 맞지 않는 성향이라면 결국 부딪힐 수밖에 없다. 소통 방식과 표현 방식, 공감의 깊이, 그리고 대화의 온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속에서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어긋난 대화 속에 피로감만 쌓여간다.
그래도 시절인연이라는 말처럼, 언젠가 함께했던 좋은 추억을 마음 한편에 따뜻하게 간직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인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이가 들수록 더는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에 많은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서로가 서로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에너지 뱀파이어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피로도가 높은 관계는 결국 탈이 나기 마련이니까.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제철 인연을 만들어가고 싶다. 어떤 목적에 의한 만남이나 연락이 아닌 그냥 안부를 묻고, 커피 한 잔을 함께 나누며, 웃고, 따뜻한 대화를 주고받는 일. 그것이면 충분하다.
한때는 오래도록 이어진 관계만이 신뢰와 우정의 깊이를 말해준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람은 변하고, 관계도 익어가다가 자연스레 제 철을 다할 때가 있다는 것을. 그 시절 함께 웃었던 인연이었다면, 그걸로 충분히 고마운 인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