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들송이 Mar 16. 2021

그냥 살지 마, 모모

넷플릭스 스토리텔러: 자기 앞의 생

※ 이 리뷰에는 '자기 앞의 생'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목을 되뇌어 본다. 자기 앞의 생, 누구나 자기만의 사정으로 빚어진 삶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과 살면서 가지게 된 것이 만들어낸 사정으로 각자의 삶이 빚어진다. 어느 누구의 삶도 같을 수 없다. 그러니 타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누구나 저의 사정으로 물든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기 마련이니까. 이해하려 하지 않고, 이해받으려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자기 앞에 놓인 길을 걸어가는 게 사는 것 아닐까.



        모모는 12살 어린 아이다. 똑똑하고 영악하다. 동네 인품 좋은 의사 선생님 코엔의 집에 의탁하면서 스스로 살 길을 모색한다. 제대로 보살핌과 교육받지 못한 어린아이가 돈을 벌기 위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모모는 마약 조직의 유통을 맡는다. 그러던 중 코엔의 사정으로 동네의 ‘피난처’를 돌보는 마담 로사의 집에 맡겨진다. 피난처는 동네 사람들이 매춘부의 아이들을 돌보는 로사의 집을 일컫는 단어다. 로사, 그녀 또한 은퇴한 매춘부로 기꺼이 각자 부모의 사정에 의해 쉼터를 잃은 아이들을 거둔다. 그렇게 그냥 사는 어린아이 모모와 제대로 살게 하려는 어른 로사가 만난다.


        영화 내내 로사는 규칙과 규율을 강조한다. 불법체류자의 유대인 아이에게는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식탁에서는 휴대폰을 삼가고, 순서대로 설거지 당번을 정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돈을 벌게 한다.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듯이. 반면, 모모는 엇나간 방법일지라도 확실하고 빠르게 인정받고 돈을 버는 법을 알고 행동한다. 그렇게 다른 두 사람의 관계는 삐걱댈 수밖에 없다.


        마주할 때마다 으르렁 거리는 모모와 로사는 각자의 결핍이 있다. 모모는 온전히 사랑을 줬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로사는 홀로코스트 피해자로 깊은 트라우마를 가졌다. 햇살 아래 춤을 추는 로사에게서 엄마를 보는 모모와 트라우마로 정신을 놓을 때마다 모모의 손에 이끌려 현실로 돌아오는 로사는 시나브로 서로를 받아들이고 가까워진다.


        모모와 로사를 둘러싼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성전환 후 매춘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어린 아들 바부를 키우는 롤라, 가족을 먼저 보내고 외롭게 시간을 보내는 할아버지 하멜, 불법 체류자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린 이오시프까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그들은 챙기고 포옹하며 서로를 품는 장면 장면이 따뜻하다.




        나는 행복에 목숨 걸지 않을 거다.

        행복이 찾아오면 좋지. 안 찾아오면 어때?

        각자 생긴 대로 사는 거지. - 모모


        모모는 마약 유통으로 인정받고 돈을 번다. 그 돈으로 자전거를 사고 거리를 활보하여 짜릿한 기분을 만끽한다. 그 순간 즐거운 것, 그게 로사로 인해 변하기 전의 모모다. 제 방식이 옳다고 여기는 모모를 이끄는 건 ‘그렇게 해선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로사와 하멜이다. 그들의 말에 모모는 점차 흔들린다. 모모가 정말 행복은 뒤로 하고, 그냥 살고 싶었을까? 깊은 눈과 진심 어린 말로 차분히 방향을 짚어주는 어른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마약 조직의 리더는 더 이상 마약 유통을 하지 않겠다는 모모에게 ‘그냥 살면 돼’라고 종용하지만, 모모는 거절한다. 로사와 하멜, 롤라, 이오시프와 함께하며 온기를 나눈 모모는 아마 제대로 살고 싶어 졌을지도 모른다. 규율이나 규칙 처럼 성가실지라도 모모의 엇나감을 혼내주는, 그의 앞에 놓인 생을 똑바로 걸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무언가를 느꼈을지도.




        영화를 보는 내내 모모가 위태로웠다. 어린아이의 순수는 쉽게 물들고 쉽게 삐뚤어진 길에 발을 들였다. 그런 모모에게 '그냥 살지 마'라고 말해주는 단단한 마음의 어른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던지. 극 중 로사는 결국 죽는다. 모모는 로사의 곁을 마지막까지 지킨다.


        TV 프로그램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이런 말씀을 했다.

‘아이들은 '내가 정말 힘들었을 때, 우리 엄마가 꼭 안아줬어' 하는, 그 기억으로 삶을 버텨낸다’

영화의 마지막, 로사가 떠나고 남은 모모를 보고 그 말씀이 떠올랐다. 모모는 괜찮을 거다. 로사가 준 따뜻한 인정과 사랑의 기억을 품고 자기 앞의 생을 똑바로 걸어갈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닭에서 백호가 된 남자, 하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