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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난 여전히 서점을 향해 걸어가던 중이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길거리에 홀로 걸어 다녔다. 특히 저녁의 길거리는 화려한 조명과 사람들이 옷 색상이 더욱 화려했다. 어쩌면 이 길거리만 유독 화려한 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대부분 한쌍의 커플이거나 친구들, 단체로 가득했다. 아무래도 번화가이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나만 홀로 걸어 다녔다. 하필 그날은 검은색 옷을 위아래로 입었다. 고독해 보이기 위해선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고독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의도를 했든 안 했든 어쨌든 길거리에 사람들보단 조용하고 고독했다.
이어폰을 꽂고 수많은 인파를 헤쳐 가는 서점의 길은 참 유익하다. 특히 나같이 속이 시끄럽고 겉은 조용한 사람일수록 더욱 좋다. 화려하면 오히려 눈을 두기 좋다. 적당히 앞만 보면 되고 시선이 조금은 어색하거나 이상해도 어차피 사람이 많으니 날 신경 쓸 사람도 없다. 머릿속에서 차곡차곡 생각들을 선에 맞게 접어갈 수 있는 노래를 틀어둔다. 내 내면은 일종의 작업실과 같다. 빛 한 줌 들어오는 채도의 컴컴한 방이고 그 방엔 어떤 재질로 되어있는지 모르는 책상과 의자 하나. 그리고 그 의자에 앉아 책상에 팔을 걸치고 턱을 괸 뒤 아주 천천히 생각들을 접는다. 접는다는 건 나에게 있어서 꽤 중요하다. 하나의 생각을 원하는 모양과 반듯함이 나오도록 최선을 다해 접는다. 아주 느리게 해도 되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처리해도 된다.
주로 노래는 류이치 사카모토 노래가 적당하다.
내 신체는 길거리를 걸으며 노래를 듣지만, 내 내면은 적적한 작업실에서 적당한 속도로 적당한 일정량의 작업을 한다. (어디까지나 내 내면이니 적절한 건 내 기준이다. 그러니 거리낌 없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길거리로 돌아가면 수많은 인파 중엔 장애인도 포함 돼 있다. 주로 내 시야에 들어오는 장애인들은 팔과 다리 한쪽씩 없어 구걸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이 서점에 가는 길엔 가끔 나타난다. 아무래도 사람 많은 곳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한 동안 보이지 않다가 그날, 서점에 가기 위해 발길을 옮겼던 날에 나타났다.
길거리 중앙에 있는 조그마한 화단 옆에 팔다리 한쪽을 지지하고 배엔 바퀴 달린 판을 대고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 뒤 주변을 살폈다. 사람은 여김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기 바빴다. 아무리 바빴다한들 이 모습의 장애인을 못 보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당신도 예감했듯이 하나의 장애물이 돼 있었다. 장애물이란 냉정한 말보단 오히려 작품에 가까웠다. 화려한 거리에 대비 돼 누군가의 작품. 거리에 있는 수많은 행복을 부정하는 몸짓. 그리고 수많은 행복은 그 몸짓을 부정한다. 어쩌면 무관심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난 무관심한 얼굴로 지나갔다. 지나갔지만 의문은 들었다. 그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검은 모자를 눌러쓴 모습이기도 했다. 앞에 수많은 인파를 요리조리 잘 피하기 위해선 엄한 곳에 한 눈 팔 순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다행히 자세히 보진 못했다. 그의 앞엔 작은 조잡한 모금함 같은 게 있었다. 거기엔 낡은 동전과 푸르스름한 종이 몇 장이 먼지처럼 쌓여있다.
‘나도 거기에 동참해야 되나?’
동참한다면 난 뭐가 달라지나 생각해 봤다. 지금의 이 찝찝함을 누르고 다시 생각을 조용히 적절하게 접을 수 있을까. 아니다 이미 내 생각은 저기 저 장애물에 꽂혀있다. 오늘따라 유달리 눈에 스치는 이유가 뭘까. 딱히 별 다른 답이 없었다. 난 다시 서점에 가서 뭘 사야 할지 집중했다. 곧 서점이 보였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공들여 밟았다. 서점은 쾌적했다. 거기엔 비장애인들이 지식을 찾기 위해 힘쓰고 있었다. 밖과는 달리 혼자 있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조용히 자기 취향에 맞는 책을 열심히, 게으르게 찾고 있다. 무슨 이유인진 몰라도 사고 싶은 책은 찾았으니 사진 않고 그 자리에서 대충 훑어보고 다시 제자리에 꽂았다. 난 서점에서 그리 많은 시간을 보내진 않은 편이라 바로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엔 수많은 인파와 화려한 조명과 행복만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핸드폰으로 도파민을 생성해 낸다. 한쪽으로 치우쳐 기울어진 골반과 팔짱 낀 채 한 손으론 핸드폰을 받쳐 들고 무표정으로 한 없이 엄지 손가락만 올렸다 내렸다, 반복할 뿐이다. 그런 모습들로 줄지어진 정류장은 의외로 행복해 보인다.
길거리의 연인들은 서로의 허리춤에 손을 두고 행복하기만 한 얼굴로 길거리를 휘젓는다. 그들에겐 타인이 조금이라도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동성끼리 걷는 사람들은 두 가지로 나뉜다. 오늘 이성을 만나기 위해 아끼는 몸(아끼지 않을 수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옷을 입고 길거리를 걸어 다닌다. 꽤나 위협적으로 밝고 당당한 발걸음은 폭력적이다. 그래야 이성이 그 자극을 맛보고 달려들 테니 참 행복해 보인다.
이 길거리엔 장애물이 없다. 다들 거리낌 없이 자신의 목적지를 위해 걷기 바쁘다. 나 또한 그들에 속해 있다. 엄연히 말하자면 발만 담가둔 편이다.
이 길거리는 눈에 거슬리는 게 없다. 그러기에 더욱 거슬리는 길거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