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도 모르는 모습을 다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이 세상엔 없다고 생각했다. 이해해 줄 사람도, 보여줄 사람도 존재하지 않아 단지 제한적이고 무뚝뚝하고 화만 잘 내는 내 성격이 그대로 나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내 모습에 관심을 갖지도 않았고, 또 다른 모습을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 남들은 다양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뭐 그리 재밌는지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항상 가식이라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은 가식을 떨쳐낼 줄 모르는 바보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날 진실되고 좀 더 나은 사람인양 생각할 때가 많았다.
연애를 했을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냥 내가 항상 더 성숙하고 세상에 더 많이 치여봐서 어른이라 생각하고, 상대는 항상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잘 웃는 모습은 아직 세상에 치여보지 않고 영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나이도 내가 많으니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내가 좀 더 세상에 그리고 어른에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른에 집착하고 살았을지 모른다.
내가 삶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구나. 깨달았던 순간은 엄마가 아플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을 때였다. 사회에선 말을 거의 하지도 않고 타인과 소통을 그리 잘하지 않던 내가, 엄마 앞에선 사회에서 들었던 이야기, 내가 생각하는 말들을 서슴없이 꺼내놓는 모습을 보고 내가 적어도 이 분 앞에선 내가 나일 수 있구나 했다.
듣기 싫은 말을 억지로 들어가며 억지로 맞장구 칠 필요 없고, 내 말이 상대방에게 오해하게 들리게끔 검열할 필요 없었다. 단지 나도 모르는 나를 그대로 내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이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그 사람과 난 너무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이제 막 사회에 들어가 무너지고 모욕을 받아 견디는 기간과 사회에 일어나는 모든 걸 알고 어느 정돈 내주고 그만큼 받아낼 수 있는 기간, 젊어서 무언갈 차근차근 배워가며 게으른 시간과 점차 예전 같지 않은 체력과 배울 게 아직 더 많다는 걸 아는 시간. 서로 차이가 많은 시간을 살고 있다. 결정적으론 엄마는 아플 수 있다는 것. 어느새 내가 보호자로서 병원에 들어가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도 자식에서 부모였다면 그 반대로 변해가고 있다. 이제 막 말을 할 줄 알게 됐을 때 세상에 궁금한 게 많아지면 당연히 부모님에게 뭐든 물어봤었다. (사실 그렇게 수다를 많이 떠는 애도 아니라서 대부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긴다.) 어릴 때 부모님은 나에게 백과사전, 정보 그 자체였다. 신호등 색깔이 왜 빨 주 녹인 지, 저 사람은 왜 저기서 춤추고 있는지(알고 보니 호객용 사람 모양 풍선이었다고 한다.) 왜 목욕을 해야 되는지, 왜 숙제를 하며 학교에 학원까지 가야 하는지 등등 세상에 대한 모든 걸 부모님을 통해 알게 됐다.
가령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 주문을 하려고 하면 키오스크를 쓸 줄 몰라 어쩔 줄 몰라하는 중장년층의 어르신들이 간혹 보인다. 그게 내 부모님이라면 참 이유 모르게 세상에 서운해진다. 물론 바뀌어가는 세상에 맞춰 적응해야 되는 것도 있지만, 여유 없이 바뀌는 세상에 던져진 어르신들은 모르는 걸 감추기 위해 화를 내시거나 주문을 포기하시거나 용기 내 주문을 부탁하기도 하신다.
우리 엄마도 그렇다. 당장 인터넷으로 뭘 사려고 해도 인증도 해야 되고 카드도 인증해야 되고 회원가입도 해야 된다. 회원가입 안에 또 인증을 해야 되고 확인해야 되는 절차가 많다. 젊은 세대야 귀찮지만 금방 뚝딱하면 되는 일이지만 인터넷과 친하지 않은 세대는 너무나 버겁다.
어디를 가려고 해도 버스 노선을 검색해야 되는 일도 어렵다. 나에겐 그저 10초면 어디서 뭘 타고 어디에 내려 어떻게 가는지 알 수 있지만 엄마는 검색도 복잡하지만 검색을 해도 지도상에 찍히는 모든 문자와 문양이 뭔 소리인지 해석하는데 꽤 걸린다. (지금은 다행히 알아서 어디서 뭐 타야 하시는지, 심지어 나한테 알려주기도 하신다.)
노력은 하시지만 항상 나에게 뭘 부탁하기 미안한 말투로 이것저것 사달라고 하신다. 그렇게 미안한 일은 아닌데도 참 마음은 짠하다.
난 엄마에게 첫 번째 자식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자식. 그러니 자식을 대하는 게 얼마나 서툴지 상상이 된다. 막연하게 10개월을 같은 몸에 있었다고 해도 이제 막 엄마 뱃속에서 나온 핏덩이는 참 어색할 거 같다. 갓 태어났을 땐 신기하고 감사하고 감동의 순간일지 몰라도.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저 핏덩이를 감내해야 되는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두렵고도 막막했을진 모르겠다. 그 당시엔 난 울거나 자거나 뻐끔거리는 게 다니까.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다. 밤낮을 가리 지지 않고 돈이 되는 일이면 잠은 나중에 자더라도 밤새 몸을 움직이셨고, 당연히 끼니도 챙기셨다. 건강하다 믿는 몸뚱이 하나 믿고 하나 있는 자식에게 갈아 넣을 자신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2023년 7월 15일 토요일. 엄마 가슴에 있는 혹 하나 때문에 꽤 많이 울었었다. 엄마는 별일 아니라고 하셨다. 웃고 계셨고 얼굴에 주름이 왜 이렇게 많은지 오랜만에 깨달았다. 훈련소를 마치고 퇴소식에 온 엄마의 얼굴이 아직 기억난다. 떨어진 지 한 달 채 안 됐는데 꽤나 주름이 늘어있었다. 훈련소 들어가기 전엔 별거 없을 거라고 오히려 날 다독이던 분이 막상 아들이 없는 세상에선 꽤나 맘 졸이고 계셨나 보다. 그때보다 더 늙을 줄 몰랐는데 점점 늘어난 주름처럼 점점 걱정도 늘어난다. 역시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부지런히 몸을 놀리고 있으니 말이다.
토요일. 그날은 방에서 울고 자기를 반복했다. 며칠 뒤에 가장 친한 친구에게 이걸 털어놨을 때 돌아온 답변은 “지금이 중요하지 않냐.”였다. 그 답변을 바로 들었을 땐 그다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 폐만 끼치는 자식이라는 생각이 날 괴롭히는 때였다.
그 친구랑 헤어진 뒤에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는가. 아니다. 엄마가 진심으로 나 대한 것처럼 나도 진심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다. 최선을 다해 보필하고 슬퍼해야 된다고. 그러고 나서 정말 보내드려야 하는 순간엔 진심으로 감사했다고 인사드리기로 마음먹었다.
만약에 그렇게 나를 나답게, 나로서 살아가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세상에 없다. 무섭다. 내가 나이지만 내가 내가 아닌 날들이 올 거다. 까불까불한 모습도, 허세 부리는 모습도, 맘 편하게 소리 내면서 웃는 날이 없을 거다. 세상에 불만이 많을 때도, 세상이 날 인정해 줘도 불평을 하거나 자랑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무섭지만, 그래도 난 쉽게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이유로 이별을 할지 모르지만, 부디 나도 엄마도 서로에게 진심이었고 그 마지막도 진심이길 바란다. 글을 쓰면서 든 생각이지만 다음엔 내 딸로 살게 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면 나도 내 딸에게 진심으로 대할 테니 말이다.
부디 글을 쓰는 지금보다 훨씬 먼 미래에 일어났으면 한다.